이윤희 데일리한국 금융부 기자
“공공기관 임원들의 임금 반납 행렬이 미담인지 잘 모르겠다. ‘월급쟁이’로서는 ‘곧 내 차례’라는 생각에 불안할 따름이다.”

한 증권사 직원의 말에서 전염병보다 큰 공포감이 느껴진다.

지난 달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고통 분담을 하겠다며 대통령을 비롯한 장,차관들이 4개월간 급여의 30%를 반납하겠다고 했다. 공공부문 고위직의 임금 반납이 이어졌고 금융권도 이를 따랐다. '자의반 타의반'의 동참 행렬이다.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을 때에는 늘 있어왔던 매뉴얼 아닌 매뉴얼이다. 신선하지도 않고, 감흥도 없다. '쌍팔년도'에나 있었을 아이디어를 다시 보는 건 그리 유쾌하지 않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 등을 시작으로 코스콤, 캠코, 주택금융공사, 서민금융진흥원, 신용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중소기업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유관기관들이 임금 반납을 선언했다. 민간 회사인 이베스트투자증권도 선제적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대표를 비롯한 임원진 보수 일부를 반납하기로 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민간에 더욱 확산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증권예탁결제원은 전직원의 임금 10%를 반납한 바 있고, 공공기관의 자발적 임금 반납은 민간기업으로 가면 임금 삭감 요구로 변질됐다. 이후 하나대투증권, 미래에셋증권, 우리투자증권 등 민간 회사들도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하고 임금삭감과 인원 감축을 단행했다.

정부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고정임금을 ‘건드려도 된다’는 메시지는 노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경제 주체들의 소비를 더욱 위축시킨다.

공공기관에서 급여 반납을 통해 마련한 재원은 기부처로 전달돼 영세 자영업자 등 지원사업에 활용한다고 한다. 영세 자영업자는 얼마 되지도 않는 임시 기부금으로 연명할 수 없다. 근로자들의 임금을 사실상 임금반납 형식으로 삭감할 것이 아니라 임금을 제대로 주고 소비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경제를 이해한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맞다. 이제는 보여주기식의 잘못된 관행과 관례, 구태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정부는 이 전염병의 광풍 속에서 사각지대 없는 재정 정책을 지체없이 수립하고 펼치기를 고민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웠던 정부가 공무원과 공기업 임직원의 처분 가능 소득을 줄이다니, 이런 아이러니도 없다. 정부는 누구의 지갑을 열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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