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데일리한국 이창훈 기자] 금호산업 이사회가 금호타이어 상표권 사용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산업은행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금호산업이 산은이 제시한 상표권 사용 조건을 거부하면서, 산은과 더블스타와의 금호타이어 매각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기류가 강하다. 이에 따라 산은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경영권 박탈 카드를 꺼내들 것이라는 관측이 새나오고 있다.

19일 금호산업은 이사회를 열어 금호타이어 상표권 사용과 관련해 산은에 제시한 기존 조건을 재확인했다. 금호산업 측은 이번 결정에 대해 “‘금호’ 브랜드 및 기업 가치 훼손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조건으로 산정된 원안을 아무런 근거 없이 변경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산은은 금호산업과 어떤 사전협의나 조율 없이 임의로 더블스타와 상표권 관련 합의를 진행한 뒤, 지난 5일 금호산업에 △5+15년 사용(단, 더블스타에서 언제라도 3개월 전 서면통지로 일방적 해지 가능) △20년간 연 매출액의 0.2% 고정 사용 요율 △독점적 사용 등을 조건으로 상표권 허용을 요구했다.

이에 금호산업 이사회는 지난 9일 △사용기간 20년 보장 △매출액 대비 0.5% 사용 요율 △독점적 사용 △해지 불가 등을 조건으로 금호타이어 상표권을 허용하겠다고 결의한 후, 이를 산은에 공식적으로 회신했다.

이에 대해 금호산업 측은 “합리적 수준으로 상표 사용 요율을 확정하는 차원에서 0.2%에서 타 사의 유사 사례 등을 고려해 0.5%로 인상하는 안을 제시했고, 산은에서 20년의 사용 기간을 먼저 요구해왔기 때문에 20년 사용은 허용하되, 더블스타의 일방 해지 조건은 불합리한 조건이므로 계속 사용을 전제로 수정 제시했다”고 밝혔다.

금호산업이 산은의 상표권 사용 조건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더블스타와 금호타이어 매각을 진행하던 산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산은이 제시한 상표권 사용 조건은 더블스타와 맺은 주식매매계약(SPA) 상의 선행 조건이며, 해당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더블스타와의 금호타이어 매각은 물거품이 된다.

더블스타 측 관계자는 “더블스타가 공식적으로 상표권 사용 조건에 대한 입장을 밝힌 바는 없다”면서도 “상표권 사용 협상은 채권단과 금호산업이 풀어야하는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산은이 더블스타와 합의한 상표권 사용 조건을 관철하지 못하면, 더블스타가 금호타이어 매각에서 발을 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에 따라 산은 등 채권단이 조만간 열리는 주주협의회에서 박 회장과 박세창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장이 금호타이어 차입금의 담보로 제공한 금호홀딩스 지분 매각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산은이 금호홀딩스 지분 매각으로 박 회장의 경영권을 박탈해 ‘압박 수위’를 높이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산은 등 채권단이 주주협의회를 통해 기존의 입장을 재차 피력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박 회장 부자가 제공한 담보물의 성격 등을 고려하면 채권단이 일방적으로 담보권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 회장 부자는 금호타이어 경영 정상화와 신규 자금 차입을 위해 2015년 11월 보유하고 있던 금호홀딩스(당시 금호기업) 주식(지분율 40%) 전량을 제공했는데, 당시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에서 벗어난 상태여서 담보제공 의무가 없었고, 박 회장 개인 주식을 담보로 냈기 때문이다.

박 회장도 이날 서울 광화문 금호아시아나 사옥에서 기자들과 만나 금호홀딩스 지분 매각을 통한 경영권 박탈 가능성에 대해 “법적으로 할 수 있으면 하겠지”라고 언급했다. 산은이 법적으로 담보권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둔 답변인 것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산은 등 채권단이 이달 말 만기가 도래하는 1조3000억원의 금호타이어 차입금 만기 연장을 거부해 금호타이어를 법정관리로 보낼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이다. 채권단 내부에서도 법정관리만은 피하자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금호타이어 매각을 놓고 산은과 박 회장이 법적 분쟁에 돌입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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