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구속 이후 최고가 연이어 경신

현대차·SK·CJ·한화 등도 ‘오너 부재’ 상황서 주가 ‘무탈’

‘탄탄한 실적’ 바탕에 ‘기업 지배 구조 개선’ 기대감 키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부터),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그룹 오너들은 구속 수감 이후에도 해당 기업의 주가가 탄탄한 실적 등을 바탕으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진=각 사 제공
[데일리한국 임진영 기자] 국내 재벌 그룹들을 움직이는 오너들이 구속 등의 위기 상황에 빠지는 ‘오너 리스크’가 발생하더라도 해당 기업들의 주가는 큰 타격을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재벌 그룹들의 경영 시스템이 ‘오너 부재’ 상태에서도 제대로 작동되도록 시스템화를 갖춘데다 투자자들 역시 기업의 실적 등 ‘펀더멘털(기초여건)’을 더 중요시 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2일 코스피 시장 시총 1위인 삼성전자는 212만3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17일 오너인 이재용 부회장이 최순실 게이트와 연관돼 구속되는 초유의 오너 부재 상태를 맞았다. 그렇지만 삼성전자 주가는 한 달 새 10%이상 반등했다.

삼성그룹 79년 역사상 오너가 구속 수감되는 일은 이번 이재용 부회장이 처음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008년 경영권 불법승계와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 돼 검찰조사를 받은 적은 있지만 이재용 부회장처럼 구치소에 수감된 적은 없다.

그마저도 이 회장은 기소된 지 2년여만인 2010년에는 당시 이명박 정부를 통해 특별사면을 받았고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까지 받았다.

2014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기업을 직접 ‘컨트롤’ 하지 못하는 상황은 삼성으로서도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자 증권가는 비짝 긴장했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전체 코스피 시장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일 기준 21.11%이다.

시총 2위부터 12위까지인 현대차, SK하이닉스, 삼성전자우, 한국전력, 네이버, 포스코, 삼성물산, 현대모비스, 신한지주, 삼성생명, KB금융의 시총을 모두 합한 것(21.55%)과 비슷한 수준이다.

삼성 역사상 초유의 오너 구속 수감이 미치는 영향이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국내 주식 시장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우려가 나올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이재용 부회장 구속일인 지난달 17일 189만원에 머물던 삼성전자 주가는 그 후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리다 6일 200만원대를 돌파한데 이어 연이어 최고가를 경신했다.

결국 16일에는 장중 210만원선까지 돌파하며 삼성전자는 210만원대 안착을 눈 앞에 두고 있다.

강한 오너십과 권한을 지닌 오너의 힘이 기업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내 재벌 기업들의 상황을 볼 때 오너의 구속 수감은 악재로 작용할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10여년 전인 2000년대만 하더라도 재벌 기업 오너가 구속되면 기업 주가가 하락하는 현상은 쉽사리 찾아 볼 수 있었다.

지난 2006년 비자금 조성과 횡령한 혐의로 구속 기소 돼 62일간 구치소에 수감 후 보석으로 풀려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 해 4월 28일 정 회장 구속 당시 8만2900원이었던 현대차 주가는 정 회장의 보석 결정이 내려진 같은 해 6월 28일 7만8000원으로 약 6%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서는 재벌 오너 구속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해당 기업의 주가가 폭등하는 경우가 더 눈에 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3년 1월 횡령혐의로 법정구속 된 후 2년7개월의 수감생활 끝에 2015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아 석방됐다. 이 기간 동안 SK주가는 13만500원에서 31만500원으로 약 238% 급등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12년 8월 배임혐의로 법정 구속됐지만 2013년 1월 건강상의 이유로 구속집행이 정지돼 자유의 몸이 됐다. 이 기간 한화 주가는 3만100원에서 3만4250원으로 13% 정도 상승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탈세와 횡령 혐의로 2013년 7월 구속됐다가 지난해 8월 광복절 특별 사면을 통해 풀려났다. 이 회장이 구속돼 있던 기간 동안 CJ 주가는 11만7000원에서 20만1000원으로 71% 폭등했다.

이처럼 국내 재벌 대기업들이 ‘오너 부재’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상승하는데는 ‘실적’으로 대표되는 기업의 펀드멘탈 강화가 오너 리스크를 상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록호 하나금융투자 연구위원은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이 지난해 38조원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사상 최고치인 49조원으로 예상되는데다 삼성전자가 지닌 반도체 업황에서의 높은 기술력 등이 오너 부재라는 상황을 메꾸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실적 발표와 함께 차기 전략 스마트폰 모델인 갤럭시S8의 출시 등 이벤트가 발생하면 삼성전자 목표 주가인 250만원도 달성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재벌 대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서 성장해 오너 1인에 좌지우지 되지 않고 체계적인 전문경영인 체제로 완숙하게 운영돼 ‘오너부재’가 큰 돌발 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재윤 유안타증권 기업분석팀 애널리스트는 “기업 총수가 구속돼도 사업의 방향성에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 국내 재벌 대기업들이 글로벌화가 많이 진행돼 있고 전문경영인 체제도 확실히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경우 휴대폰 사업부에만 실적이 치중돼 있던 과거와 달리 각 사업부별로 균질하게 호실적이 전망되는 등 체질 개선이 이뤄진 것과 하만 인수에 따른 시너지 효과 기대감도 주가 상승의 요인”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내 재벌 대기업 오너들이 구속되는 경우 벌어지는 주가 상승 현상에 대해 기업 지배 구조 개선에 따른 기대감이 반영됐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N증권사 관계자는 “개인 소액 주주 입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은 지주회사로의 전환 가능성 증가로 투자 심리를 자극하는 기대 요인”이라며 “SK나 CJ, 한화 등 다른 재벌 그룹들의 오너 구속으로 인한 주가 상승 역시 ‘오너 부재’로 인한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이에 따른 소액 주주들의 배당금 증가 등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재윤 애널리스트도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재벌 대기업들이 실적 대비 전 세계적으로 저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는데 이에 대한 주요 요인이 부실한 주주 환원 정책”이라며 “오너 리스크 발생 시 주주 환원이 개선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 기대되기 때문에 주가가 오르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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