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당초 입장 번복해 박삼구 회장의 컨소시엄 구성 허용 여부 서면 부의키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데일리한국 이창훈 기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절묘한 ‘타이밍’으로 금호타이어 매각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대통령 선거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호남 민심’의 향배를 가를 주요 이슈로 금호타이어 매각이 급부상하면서, 유력 대선 후보들이 “금호타이어를 중국 업체에 넘겨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당초 입장을 번복해 박 회장의 컨소시엄 구성 허용 여부를 서면 부의하기로 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은 등 금호타이어 채권단은 지난 17일 오후 주주협의회 실무자 간담회를 갖고, 박 회장이 요구한 컨소시엄 구성 허용 여부에 대해 논의했다. 논의 결과에 따라, 채권단 측은 이날 컨소시엄 구성 허용 여부에 관한 안건을 서면 부의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안건에 대한 회신 기간은 22일로, 채권기관별 심의 또는 의사 결정이 지연될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주말쯤에는 최종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 측의 컨소시엄 구성 허용에 대해 그동안 '불허' 입장을 고수해오던 산업은행측이 한 발짝 물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금호타이어 매각과 관련해 산은 등 채권단의 압박에 지속적으로 끌려왔던 박삼구 회장이 절묘한 시점에 매각 절차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고, 법적 조치도 불사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피력하고 나오면서 상황이 반전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대선이 50일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 매각의 절차상 문제점을 거론하고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나선 상황에서 ‘호남 민심’이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야권의 주요 대선 후보들은 일제히 “금호타이어를 중국 타이어 업체에 매각해서는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19일 트위터 등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향토기업인 금호타이어의 상황을 바라보는 호남인들의 마음은 착잡하다”며 “금호타이어가 쌍용자동차의 고통과 슬픔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성 글을 올리기도 했다.

안희정 충남지사측 역시 논평을 내고 “금호타이어는 국내 유일의 항공기용 타이어를 공급하는 방산업체로 해외기업에 매각될 경우, 방산기술과 상표권이 유출될 우려도 있다”며 “(매각이 아니라) 재입찰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명 성남시장을 비롯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나 손학규 후보 역시 금호타이어를 더블스타에 매각할 경우 “제2의 쌍용차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오는 25일부터 호남·광주지역 경선에 돌입하는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유력 후보들은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해 금호타이어 매각건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호타이어는 광주를 비롯해 전남 곡성, 경기 평택 등 3곳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동안 호남지역에서는 금호타이어가 대표적인 ‘향토 기업’으로 인식돼왔다.

국민의당의 한 관계자는 “호남지역에서 금호타이어는 지역과 같이 성장해온 기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다 죽어가던 기업을 살려놨는데, 이제와 중국 업체에 팔겠다고 하니 호남 민심이 들끓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유력 대선 후보들이 호남 민심을 끌어안느라 분주한 시점에 박 회장 측이 금호타이어 매각 절차가 부당하다고 호소하면서 산은 등 채권단이 어쩔수 없이 압박을 받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산은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금호타이어 매각에 대해 우려를 쏟아낸다고 해도, (채권단 측은) 원칙에 따라 매각을 진행할 것”이라면서도 “정치권의 우려가 부담스럽지 않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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