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소멸시효 지났으면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금감원 "약관에 명시됐으면 보험사는 약속 지켜야"

생명 '빅3' 등 6곳 "시효 지났다" 2000억원 지급안해

사진=유토이미지
[데일리한국 조진수 기자] '자살보험금' 지급과 관련, 대법원의 판결과 금융당국의 입장이 엇갈려 시장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보험금 미지급의 피해는 고스란히 가입자에게 돌아오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2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9월 말 교보생명이 고객 A씨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소송 상고심에서 “보험사가 자살보험금을 주기로 특약을 체결했더라도 소멸시효가 지나도록 가입자가 이를 청구하지 않았다면 주지 않아도 된다”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즉 소멸시효가 완성된 자살보험금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대법원의 판결과 관계없이 보험사들이 소멸시효가 완성된 자살보험금도 지급해야 한다며 압박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법적 의무와는 별개로 보험업법에 따른 제재는 예정대로 추진할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것임을 재차 강조했다.

이와관련,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3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살보험금을 미지급한 보험사는 양정 기준에 따라 엄정히 행정제재를 처리해 나가겠다”고 강한 의지를 밝힌바 있다.

진 원장은 이날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살보험금을 미지급한 생보사들에 대한 고강도 행정제재를 이어갈 예정이냐”고 묻자 “고강도 행정제재라는 표현은 과도하다”면서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 하지만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미지급한 보험사들은) 양정 기준대로 처리해 나가겠다”고 언급, 자살보험금 미지급 보험사에 대한 행정제재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달 30일 보험회사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어 13일에는 보험 약관에 자살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규정했다면 보험사가 약속대로 이를 지급해야 한다는 기존 판례를 재확인하기도 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선동 새누리당 의원은 임종룡 금융위원장에게 “금융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인만큼 생보사들의 자살보험금 미지급 상환과 관련해 우려와 실망을 감출 수 없다”며 이에 대한 금융위의 입장을 따져물었다.

김선동 의원의 질의에 임 위원장은 “대법원의 판결은 존중돼야 한다”며 “법원측 질서 문제와 소비자 보호 문제가 충돌된 케이스”라고 답했다.

이에 김 의원은 “자살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보험사가 스스로 해석을 달리하면서 이익을 챙기려는 행위는 잘못됐다”고 지적하면서 “금융위나 정무위에서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자살보험금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의원은 또한 “소멸시효가 완성된 자살보험금 지급을 위해 소멸시효 특례를 적용하는 재해사망 보험금 청구기간 연장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임 위원장은 “특별법안이 발의되면 구체적인 내용을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처럼 대법원과 금감원 입장이 엇박자를 거듭하자 보험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생보사의 한 관계자는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에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하니 답답할 뿐”이라며 “삼권분립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 아니냐”며 볼멘 소리를 내기도 했다.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는 모 생보사의 관계자는 “ING생명 등 일부 보험사는 자살보험금을 지급했고 또 지급하기로 한 생명사도 각 사의 입장일뿐”이라며 “그로 인해 우리도 꼭 지급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올해 2월 기준으로 14개 보험사가 지급하지 않은 자살보험금은 2465억원(지연이자 포함)에 이른다. 이 가운데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만 78%(2003억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소멸시효와 관계없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한 보험사는 ING생명, 신한생명, 동부생명, 하나생명, DGB생명, 메트라이프, 흥국생명, PCA생명 등 총 8곳이고 반면 '빅3'인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을 포함해 알리안츠생명, KDB생명, 현대라이프생명 등 6곳은 아직까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과 관련한 대응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자살보험금 지급 생명사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자살보험금 이슈와 관련해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이후 내부적으로 긴 논의를 거친 끝에 고객신뢰 측면에서 회사가 책임을 다하기로 최종 결정했다”면서 “보험금 청구 소멸시효와 무관하게 모두 지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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