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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한국 이민형 기자] 서울 종로구에서 인쇄업을 하는 윤모(58)씨는 최근 사업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가족들이 사는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2억원을 대출받으려 했다. 그러나 은행 직원은 새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면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에 따라 원리금을 갚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매달 200만원씩 갚아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결국 원리금 상환 부담이 없는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연 3%대인 은행 이자의 배에 달했지만 원금을 나눠 갚을 필요가 없었다.

정부가 가계부채 대책으로 내놓은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이 시행된 지 4개월이 지났다. 지난 2월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시행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으로 은행 문턱이 높아지면서 가계부채는 둔화됐지만, 제2금융권을 찾는 서민들이 늘며 부담이 가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31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작년 신규 취급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62%가 비거치식·분할 상환이다.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이 시행된 올해 2월에는 이 비율이 77%까지 올랐다.

실제 제2금융권의 가계 대출은 급증하고 있다. 3월 말 상호저축은행의 가계 대출 잔액은 15조223억원으로, 2006년 말 이후 9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신용협동조합도 32조529억원으로 사상 최고치의 가계 대출 잔액을 기록했다. 상호금융의 가계 대출도 155조768억원에 달했다.

특히 자영업자들의 '대출 절벽'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소득이 일정치 않은 자영업자의 경우 분할 상환에 대한 부담이 클 것"이라며 "대출 상담을 받으러 왔다가 그냥 가시는 분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한국은행의 2015년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전체 금융권의 자영업자 대출(농림·어업 포함)은 작년 6월 말 기준으로 574조5000억원에 이른다. 자영업자의 약 63.6%(330조5000억원)가 기업 대출과 가계 대출을 중복으로 받아 대출 규모가 컸다.

이 가운데 가계 대출만 받은 자영업자의 부채는 질적인 측면에서 위험 채권으로 분류된다. 약 16%가 저신용등급(7~10등급)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또 여러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도 2010년 318만명에서 작년 6월 344만명으로 증가했다.

문제는 자영업자들 상당수가 경기에 민감한 업종에 종사한다는 것이다. 작년 9월 기준 자영업자 대출은 부동산임대업 34.4%, 음식·숙박업 10.2%, 도·소매업 16.9% 등 경기 민감 업종에 집중돼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경기 변동에 쉽게 영향을 받는 자영업자들이 비싼 이자에 의존할 경우 신용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미국이 앞으로 금리를 인상하면 국내 대출금리도 올라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금융당국은 자영업자들의 부채를 좀 더 세밀하게 관리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여신 심사 가이드라인의 예외 조항을 보완해 집단대출 등 가계대출 규제의 사각지대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며 제2금융권 대출 대책과 자영업자 대출의 건전성 관리 강화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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