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이민형 기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도 지난달 열린 정례회의에서 '한국형 양적완화'를 놓고 팽팽한 찬반논쟁을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형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인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한은이 산업은행의 산업금융채권(산금채)과 주택금융공사의 주택담보대출증권(MBS)을 직접 인수한다는 내용이 주로 언급됐다.

한국은행이 4일 공개한 지난달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A금통위원은 한국형 양적완화와 관련해 "기본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한은이 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냈다.

반면 B금통위원은 "중앙은행이 발행시장에서 채권을 직접 인수하는 것은 과거처럼 유통시장 자체가 없거나 신용경색 등으로 시장 소화가 어려운 경우에 한해 용인될 수 있는 것"이라고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B금통위원은 "현재 채권시장 수요 등을 감안할 때 이들 채권이 시장을 통해서도 충분히 소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주요국 사례 등에 비춰보면 우리나라 구조조정 추진 과정에서 국고채 발행 등 정부의 역할이 더 강조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런 주장을 제기하는 자체가 그동안 중앙은행의 기능이나 역할 등을 국민에게 충분히 알리지 못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커뮤니케이션 활성화 등에 대해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경기 부진에 대한 해결책에 대해서도 금통위원들의 의견이 갈렸다. C금통위원은 외국 경제학자의 '소극성 함정' 주장을 소개한 후 "경기침체가 길어질 경우 추후 정책체계의 변화를 시도하더라도 시장의 신뢰성 확보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극성 함정이란 정책 당국이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충분치 못한 정책을 펼치는 현상을 의미한다.

C금통위원은 "우리나라도 기대 인플레이션이 정체돼 있고 국내총생산(GDP)이나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횡보하는 만큼 경제주체들의 경기 회복에 대한 미세한 기대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D금통위원은 일본이나 유럽과 국내 상황이 다르다면서 "이들 국가의 완화적 통화정책을 근거로 우리도 과감히 통화정책기조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높지 않아보인다"고 반박했다.

지난 금통위 회의 이후 금통위원 7명 중 4명이 교체됐다. 절반 이상의 구성원이 바뀌며 새로 논쟁이 시작된 금통위에서 한국형 양적완화에 대한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굴러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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