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양극화는 경제·사회·정치 문제의 주범… 청년 고용과 경제성장 저해

세계 시장 급변하는데 한국은 1980년대 고용 법제… 임금피크제 검토해야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 필요… 갈등 막기 위해 '노사정 대타협' 을 시도해야

정부와 청와대, 새누리당은 경제 활성화와 청년 실업 문제 해결 등을 위해 '노동개혁특별위원회'(노동개혁특위)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데일리한국 이민형 기자] 노동시장 구조가 다시 개혁의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와 청와대, 새누리당은 경제 활성화와 청년 실업 문제 해결 등을 위해 '노동개혁특별위원회'(노동개혁특위)를 구성해 강력한 노동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지난 4월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노사정위원회의 협상이 결렬된 지 3개월여 만이다.

당·정·청(黨·政·靑)은 22일 저녁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열린 고위 협의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4대 개혁'(공공·노동·금융·교육)을 완성하기 위해 새누리당 내에 4개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여권은 첫 번째 과제로 노동 분야를 선택해 노동개혁특위부터 발족할 예정이다. 위원장은 노동부 장관을 지낸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이 맡게 된다.

노동시장의 5대 양극화로 청년 실업·저성장 초래

현 시점에서 당·정·청이 한목소리로 노동시장 개혁을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노동시장의 양극화 문제를 지적한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최근 노동시장의 격차가 많이 벌어져 가장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녀 간의 성별, 고졸·전문대졸·대졸 간의 학력별, 청년·장년·고령층의 세대별 등 노동시장의 5대 양극화가 경제는 물론 사회·정치 분야 문제의 주범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는 청년 고용 문제를 비롯해 빈부 격차, 저출산·고령화, 노사 갈등 문제 등이 얽혀 '저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원인 중에는 노동시장 양극화를 빼놓을 수 없다. 일단 노동시장 구조에서 비롯된 빈부 격차는 소득분배 구조를 악화시키며 소비 부진을 초래해 내수가 살아나지 못하도록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경제 성장을 저해하게 된다.

사회적으로는 양극화로 피해를 보는 다수의 국민이 고용 불안과 소득 불안정을 경험하고, 취업을 하지 못한 청년들은 결혼이나 출산을 포기한다. 극단적으로 극빈층들의 생계형 범죄까지 발생하면서 계층 간 갈등이 확산되고, 사회 통합은 어려워진다. 정치적으로는 급격한 변화나 체제 전복을 바라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사회가 불안해질 수 있다. 김 학장은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면서 "노동시장 개혁을 하지 않으면 한국은 경제·사회·정치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도 노동시장 개혁은 불가피하다. 21세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많아야(고용률이 높아야)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명제가 대표적인 경제 논리로 자리잡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비롯한 국제기구는 물론 각국의 정부들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프로젝트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박근혜정부 역시 고용률 제고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정부가 2017년까지 고용률을 OECD 평균 수준인 7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표한 것도 이러한 정책 기조의 일환이다. 일단 70%의 고용률을 넘어서면 어느 정도 국가 경제가 안정적 궤도에 오른다는 전문가들의 중론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고용 문제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올해 6월 통계청 고용 동향에 따르면 15∼64세 고용률(OECD 비교 기준)은 66.0%를 기록했다. 1년 전보다 0.3%포인트 높아졌지만 목표치에 도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마저도 청년층의 취업률이 개선됐다기보다는 노년층의 취업률이 높아진 덕분이다. 올해 들어 60~64세 취업자 수는 지난 1월 작년 동기에 비해 10.7% 상승한 이후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반면 청년 고용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청년 실업률은 2012년에 7.7%, 2013년에 7.9%에서 2014년에 9.5%, 급기야 올해 6월에는 10.2%로 두 자릿수까지 뛰어올랐다. 1999년 6월 11.3%를 기록한 이후 1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사실상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른 직장을 구하는 취업준비자와 입사시험 준비생을 합치면 체감실업률은 11.3%에 달한다.

세계 시장은 급변하지만 한국은 과거 고용 법제 답습

세계 시장은 급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1980년대 고용 법제를 답습하고 있다. 고용 환경은 악화되기만 하고, 청년들이 고용시장에 끼어들 틈은 자꾸 좁아지고 있다. 김 학장은 "현재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는 과거 정규직 중심의 고용 법제에서 오늘날 상황이 바뀌는 것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통상임금 문제가 대표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노동 개혁은 대기업 정규직을 둘러싼 과도한 보호막을 거두고 청년 실업자나 비정규직들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핵심은 두 가지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임금이 삭감되는 '임금피크제'의 민간 부문 확대와, 정규직 근로자의 해고 요건을 완화해 기업이 손쉽게 인력을 운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 밖에 통상임금 범위나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근로시간 단축, 기간제 사용 기간 연장, 최저임금 기준 결정 등도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최근 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1단계 노동개혁 과제로 임금피크제 도입, 통상임금과 노동시간 단축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2단계로 인력의 배치·전환, 근로계약 해지 관련 가이드라인 등 노동 유연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노동개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야권이나 노동계의 반발이 크지만 여권이 노동 개혁을 계속해 몰아붙이는 이유는 하루라도 빨리 한국 경제의 근본 체질을 바꿔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의 노동시장을 바꿔야 하고, 그러기 위해 먼저 경직적인 노동시장 구조를 깨뜨리고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 분야는 제도가 바뀌면 비교적 빨리 눈에 보이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더군다나 내년부터는 정년이 60세로 연장된다.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 기업은 신규 채용을 줄이려 할 가능성이 높다. 청년층 '고용 절벽'이 심해지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이를 막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어떤 방식으로든 임금피크제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임금피크제는 근로자가 일정 나이에 오르면 임금이 낮아지는 체계를 의미하는데, 이 제도를 도입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임으로써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데다 대통령 임기 3년 차여서 여권에서는 사실상 올해 하반기가 국정과제를 추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강력한 노동 개혁 드라이브 필요… "노사정 대타협이 좋은 모델"

문제는 노동 개혁을 실제로 성사시킬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이다. 그것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노동 개혁을 둘러싸고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뚜렷한 입장 차이를 보이면서 대립할 경우 자칫 사회적 갈등이 더 증폭될 수도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녀 간의 성별, 고졸·전문대졸·대졸 간의 학력, 청년·장년·고령층의 세대별로 입장이 다른 노동시장 개혁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다. 어려운 과제를 추진하는 것이므로 노동 개혁의 주체들은 강하게 노동 개혁의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이와 함께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의 소통과 대타협이 필요하다. 가장 바람직한 모델은 노사정의 대타협을 통해 노동 개혁이 진행되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개혁 사례를 무작정 쫓는다거나 강압적으로 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이미 지난 4월에도 협상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사례도 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노동시장의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노사정이 충분한 대화를 거쳐 다각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각자의 이익만을 추구하기보다, 양보를 통해 서로가 뭘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