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료' 과자, 대용량 생활용품·화장품 불티

화장품 브랜드 비오템이 출시한 대용량 제품들.
[데일리한국 신수지 기자] 서울 용산구에 거주하는 대학생 임모 씨(24·남)는 대용량 과자 마니아다. 사료 포대처럼 어마어마한 양을 자랑하는 과자를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해 두고두고 먹는다. 임 씨는 "요새 과자 가격이 너무 비싸 자주 구매하기가 부담스러웠는데 훨씬 저렴한 가격에 좋아하는 과자를 마음껏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 씨(29·여)는 요즘 이른바 '짐승 용량'이라는 200ml짜리 한정판 수분크림을 구매해 쓰고 있다. 언니와 함께 생활하고 있어 화장품 줄어드는 속도가 어마어마하던 차에 자주 찾던 브랜드의 대용량 사이즈 제품이 출시됐기 때문이다. "어차피 계속 쓸 제품이라 고민없이 결정했다"면서 "한동안은 갑자기 화장품이 떨어져 난감할 일도 없을 것 같고, 가격이 저렴하면서 용량도 많아 정말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렇듯 경기 불황 속에 대용량 제품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대량으로 포장되어 있는 동물 사료를 연상시킨다 하여 '인간사료'라 불리는 대용량 과자부터 양을 늘린 화장품, 과거 업소용으로나 여겨지던 4,000㎖ 샴푸까지 제품군도 다양하다. 이러한 제품들은 용량이 늘어난 대신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대용량 과자·생활용품 불티

23일 온라인 쇼핑몰 11번가에 따르면 최근 한 달(2014년 12월15일~2015년 1월14일)간 일명 '인간 사료'라 불리는 대용량 과자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96% 증가했다. 30인분 분량에 이르는 대용량 라면수프 매출도 34%나 늘었다.

대용량으로 판매되는 과자 제품은 중량이 500g에서 많게는 4㎏에 이르지만 가격은 1~2만원을 넘지 않아 과자업계의 과대포장에 실망한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다. 대용량 라면수프의 경우 가격은 285g에 2,000원 정도로 대용량 라면사리와 함께 구매해 저렴하게 라면을 먹으려는 자취생들이 많다. 대용량 수프를 라면 조리뿐 아니라 각종 음식 양념으로 이용하기 위해 구매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같은 기간 G마켓에서도 과자·참치·라면 등의 대용량 식품 매출이 30% 올랐다. 도어훅·자바라옷걸이, 스펀지클리너 등 벌크형 생활용품 매출도 각각 70%, 20% 늘었다. 벌크제품은 품질은 정품과 동일하지만 대용량으로 유통경로와 포장 패키지 등을 최소화해 저렴하게 판매하는 상품이다. 양이 많다보니 주로 업소용으로 분류되었으나 최근에는 20~30대 젊은층들의 반복구매가 높아 일반 가정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생활용품인 샴푸의 경우 가정에서는 보통 1,000㎖ 이하 제품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용량이 4,000㎖에 달하는 대용량 제품도 인기를 얻고 있다. G마켓 대용량 샴푸 후기란에는 "항상 쓰는 제품이라 대용량을 구매해봤는데 매번 새로 구매하지 않아도 되고 저렴해 만족스럽다"는 등 소비자들의 후기가 줄을 잇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늘어나는 1인 가구를 중심으로 소용량 제품 소비가 증가하고 있는 반면, 불황 속에서 대용량 제품 수요도 함께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물가 상승에 따라 가성비가 높은 제품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창고형 할인매장과 온라인 구매처가 늘어나면서 대용량 상품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도 대용량 제품의 인기가 높아진 이유다.

'짐승용량' 인기에 양 늘리는 화장품

용량을 늘린 식품·생활용품뿐 아니라 대용량 화장품의 인기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화장품은 보통 스킨·로션은 200㎖, 크림은 100㎖ 이상일 때 대용량 제품으로 분류되는데, 인터넷쇼핑몰 11번가는 이러한 대용량 화장품들의 판매액이 최근 크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16일부터 한 달간 11번가의 전체 스킨·로션 판매액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3% 늘어난 데 비해 대용량 스킨·로션 판매는 62%나 늘었다. 대용량 크림 판매 증가율은 87%, 대용량 에센스 판매 증가율은 84%로 전체 크림 판매 증가율(42%)과 에센스 판매 증가율(46%)을 훌쩍 넘어섰다.

개별 제품별로 보면 키엘의 인기 수분 크림인 '울트라 훼이셜 크림' 중 50㎖ 제품은 작년 7월부터 지난 21일까지 35%의 판매 증가율을 보였지만, 125㎖ 제품은 판매가 68%나 늘었다. 크리니크의 대표 로션인 '드라마티컬리 디퍼런트 모이스춰라이징' 역시 125㎖ 제품은 판매가 21% 늘어난 반면 200㎖ 제품은 52% 늘었고, 피지오겔 크림도 대용량인 150㎖ 제품의 판매 증가율(79%)이 75㎖ 제품(42%)을 훨씬 앞섰다.

상황이 이렇자 각 화장품 업체들의 대용량 제품 출시에 불이 붙었다. 과거에는 주로 저가 브랜드들이 이른바 '짐승 용량'을 내세우며 소비자 관심을 끌었다면, 최근에는 국내 중고가 브랜드나 해외 브랜드도 기존 제품보다 용량을 늘린 제품을 추가로 출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프리메라는 기존 용량보다 2배로 업그레이드된 '알파인 베리 워터리 크림 리미티드 에디션'을 최근 선보였다. 남성 전문 스킨케어 브랜드 랩 시리즈도 이달 '인스턴트 모이스춰 젤'을 기존 용량의 두 배로 늘린 제품을 한정판으로 출시했다. 용량이 기존 제품의 두 배인 100ml란 점을 감안하면 ml당 단가는 본품의 30% 가까이 할인된 수준으로 낮췄다.

또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비오템은 라이프 플랑크톤TM 에센스(200㎖), 아쿠아수르스 수분 크림(125㎖) 등 인기 보습 제품의 대용량 버전을 최근 출시했다. 모두 기존 제품보다 양이 1.6-2.5배 늘어난 제품들이다. 특히 아쿠아수르스크림은 50㎖에서 125㎖로 양이 2.5배 늘었지만, 가격은 5만 4,000원에서 8만 2,000원으로 1.5배만 올라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각 업체들의 대용량 제품 출시가 기존 고객들의 재구매율을 늘리는 동시에 신규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풀이했다. 이 관계자는 "합리적인 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저렴한 대용량 제품 출시는 충성도가 높은 기존 고객들의 재구매율을 높이고 이탈을 방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더불어 "(대용량 제품은) 주로 한정판으로 출시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어 홍보효과가 높다. 기존보다 싼 가격으로 출시되더라도 판매량 증가 효과 등을 감안하면 화장품 업체 입장에서도 크게 손해볼 일이 없는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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