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맛 대결⑫ 아이스크림]

70년대 급성장...롯데제과·빙그레·해태제과·롯데푸드 경쟁 치열

2조 넘는 시장 잡기 위한 4개 업체 과열 할인 경쟁으로 수익 악화

중장년층 향수 자극과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등으로 활로 모색

롯데삼강의 삼강하드.
[데일리한국 동효정 기자] '석빙고' '앙꼬' 등의 이름을 가진 '아이스케키'를 기억하시나요? 1950~60년대에 설탕을 탄 물에 팥을 넣어 나무꼬챙이를 꽂아 얼린 얼음덩어리는 여름 최고의 간식이었다. 한여름이면 아이스케키라고 쓰인 나무상자를 둘러멘 까까머리 학생들이 팔러다니던 10원짜리 아이스케키는 196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1963년 위생 문제가 거론되자 국내 최초로 믿고 먹을 만한 '하드'가 시장에 나왔다. 투박한 아이스케키와 달리 예쁜 포장에 '삼강하드'라는 이름을 가지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이후 해태 부라보콘·누가바, 빙그레 투게더, 롯데삼강 아맛나 등 별나고 특이한 이름을 갖고, 팥을 벗어난 다양한 맛들이 출시됐다.

10원짜리 케키에서 누가바·메로나까지

1974년 출시돼 2억개 가까이 판매된 국민 아이스크림 투게더. 사진=빙그레
16일 제과업체에 따르면 국내 전체 아이스크림 시장 규모는 약 2조 1,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롯데제과, 빙그레, 해태제과, 롯데푸드 등 4곳이 시장지배적(과점) 경쟁자로 시장점유율 경쟁도 매년 치열하다. 실제로 주류시장만큼 엎치락뒤치락하는 탓에 이들 경쟁 회사별 시장점유율과 관련해 공인된 자료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다.

딱딱한 하드를 넘어 혀끝에서 살살 녹는 부드러움을 가진 국내 최초 아이스크림은 해태 부라부콘이다. 올해 출시 44년을 맞는 부라보콘은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대표적인 장수식품으로 꼽힌다. 2001년 국내 최장수 아이스크림 브랜드로 국내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부라보콘은 "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둘이서 만나요 부라보콘~"으로 시작하는 CM송으로도 유명하다.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맛 본 고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당시 해태제과 공장은 전국 각지에서 부라보콘 대리점을 자청하며 상경한 도매상들로 인산인해를 이뤄 출입문을 봉쇄할 정도였다.

1970년대는 아이스크림 시장에서 획기적인 변화의 시대였다. 빙그레는 정통 아이스크림 개발에 나섰으나 당시 기술제휴를 했던 미국의 퍼모스트 멕킨슨사는 협조하지 않았다. 빙그레는 2년 간 무수한 시행착오를 반복한 끝에 1974년 투게더를 내놨다. 10원짜리 케키가 주류였던 당시 투게더는 600원(800cc 기준)이나 하는 고가 제품이었다. 아버지 월급날 같은 특별한 날에 온 가족이 모여 맛보는 존재였던 투게더는 출시 이후 지금까지 약 2억개가 판매된 국민 아이스크림이다.

펜슬 타입에서 성공을 거둔 설레임. 사진=롯데제과 제공

70년대 해태는 '너무 맛있어서 누가 보기 전에 몰래 먹는 아이스크림' 인 누가바를 선보였고 롯데푸드(롯데삼강)는 쮸쮸바를 내놓았다. 롯데푸드의 아맛나, 빙그레의 비비빅, 해태제과 바밤바 등 지금까지 사랑받는 장수제품들은 모두 70년대 생들이다. 1970~80년대 가장 대중적인 아이스크림은 ‘쮸쮸바’와 우유맛이 강한 ‘서주아이스주’였지만, 당시 어린이들의 로망은 부드러운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초콜릿이 섞인 ‘월드콘’과 ‘구구콘’ 등이었다.

소득이 높아지고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아이스크림의 고급화는 더욱 가속화됐다. 1990년대 이후 원유 함량을 높이거나 견과류와 과일의 비율을 높인 아이스크림이 속속 출현해 국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92년 당시 희귀 과일인 멜론의 맛을 아이스바로 재현한 ‘메로나’는 그해 매출액만 200억원에 이를 정도로 아이스크림 시장을 석권한 뒤 20여년 간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아이스크림도 바로 메로나였다.

변화된 소비자 입맛을 잡기 위해 16일 출시된 마카롱 아이스크림. 롯데푸드 제공
빙과업계 뿌리 흔드는 반값 할인, '가격 정찰제' 시도

빙과업계가 그동안 슈퍼마켓 사이의 경쟁 과열로 '반값 할인' '1+1' 등 지나친 행사에 나선 탓에 아이스크림의 실제 가격을 알기가 어렵고, 같은 제품이라도 대형마트, 슈퍼마켓, 편의점 등 판매처 별로 값이 다르다. 이에따라 아이스크림 시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높아진 상태이다.

올해로 가격정찰제를 시행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이스크림 판매가 가장 많은 동네 슈퍼마켓을 중심으로 여전히 반값 아이스크림을 내세우며 ‘미끼상품’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아이스크림 시장 왜곡이 가속되어 왔고 가격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구심도 커져 왔다.

업체 입장에서는 가격 할인 경쟁이 심해져 제품 공급가가 생산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악순환 고리가 지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각 업체들은 유통 질서를 바로잡고, 아이스크림 가격을 현실화하기 위해 가격정찰제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가장 먼저 나선 롯데제과 측은 “1등 기업이 나서서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권장소비자가격을 책정해야 반값 할인이라는 관행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며 “쉽지는 않지만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2011년 오픈 프라이스제도(자율가격표시제)를 폐지하면서 권장소비자가격 제도를 부활시켰다. 국내 빙과시장에서는 지난 2012년 4월 롯데제과가 일부 품목에 적용하면서 처음 시행했다. 하지만 업체들의의 동참이 좀처럼 이어지지 않으면서 효과는 유명무실해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중에 판매되는 빙과류 제품 대부분이 권장소비자가격을 거의 표시하지 않고 있으며 할인 경쟁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롯데제과는 작년 상반기까지 적용 폼목을 20개로 늘렸다. CU와 GS25,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등 4개 브랜드 편의점을 대상으로 정찰제를 시행하면서 현재 30개 제품에 대해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고 있다. 빙그레와 해태제과는 각각 8개, 10개 품목에 그친다. 롯데제과의 ‘찰떡아이스’, 빙그레의 ‘비비빅’ 등 주요 제품에 정찰제가 적용됐지만 앞으로 얼마나 확대할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전문가들은 가격 정찰제 정착이 쉽지 않아 보여 아이스크림 부문의 적자는 당분간 더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익성 악화로 아이스크림 업계가 가격 표시 제품을 확대하고 있지만 편의점 및 동네 슈퍼마켓 점주의 거센 반발로 가격 정찰제 정착에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LIG투자증권 측은 “아이스크림 할인 경쟁이 심화되면서 해태제과는 2012년 빙과 부문에서 130억원 수준의 적자를 기록했고, 작년 역시 비슷한 수준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해태제과뿐 아니라 주요 매출처인 소매점의 요구로 빙과업체들의 평균 판매단가는 지속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고, 이는 고스란히 빙과업체의 수익 악화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격정찰제 확대는 순탄치 않다. 특히 점주의 반발 때문에 정찰제는 대표 제품에 한정돼 적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표 제품은 정찰제를 적용해도 점주들이 제품을 판매하지만, 인지도가 낮은 제품은 정찰제 시행과 동시에 퇴출시킨다”고 말했다.

업계는 정찰제가 법적으로 의무화되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소비자가격 표시는 권고 사항에 불과해 점주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강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찰제가 의무화되면 왜곡된 구조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이에 부담을 갖는 유통업체의 반발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아이스크림 1위 업체인 롯데제과도 소비 둔화로 인한 시장 악화와 점주들의 반대로 한 발짝 물러난 상황"이라며 "소비자가 체감하는 수준으로 가격을 내리고 점주들과 시장의 불신을 사라지게 하는데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전했다.시장에서 가격정찰제 안착이 미뤄질수록 빙과업계 수익성 악화는 좀 더 심각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소비가 부진한데다 대다수 슈퍼마켓들이 여전히 가격 표시 제품의 공급을 거부하고 있어서 판매량 감소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동종업계의 적극적인 동참도 좀처럼 이어지지 않아 가격 표시 제품 확대에 가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중장년층 향수 자극하고,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으로 공략

업계는 올드팬들의 추억을 사로잡는 ′복고′ 전략을 승부수로 띄웠다. 일본 아이스크림 시장이 고령화와 향수 열풍에 힘입어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에 주목한 것이다. 일본 가정용 아이스크림으로 연간 매출 100억엔을 기록하고 있는 ‘메가 브랜드’는 총 7개. 대부분이 오래 전 출시된 제품들로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는 상품들이다.

롯데푸드의 돼지바는 지난해 30주년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치루고 올해는 월드컵을 맞아 코믹 CF로 올드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롯데제과에서는 월드콘과 더블비안코, 스크류바 등 출시한 지 30여년 가까이 된 올드제품들이 여전히 매출 비중의 50%를 넘어서고 있다. 빙그레와 롯데푸드, 해태제과 등 빙과업계 빅4로 불리는 주요 업체들 모두 70~80년대 탄생한 올드제품들의 비중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빙과업계 관계자는 "기존 인기 제품들을 리뉴얼하는 것이 오히려 소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더 효과적"이라며 "젊은층이 커피와 팥빙수 등 다른 디저트 소비를 늘리고 있기 때문에 올드 브랜드를 기억하는 중장년층의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장수 브랜드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빙과업계가 이처럼 올드제품에 목을 메는 가장 큰 이유는 신제품 개발에 투입되는 비용이 적지 않고 설사 신제품을 출시한다고 해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에 출시돼 자리를 잡고 있는 제품은 롯데제과의 ‘설레임’이 유일하다. 롯데제과의 ‘설레임’은 펜슬 형태의 아이스크림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제품이다. 바나나맛, 밀크, 커피, 쿠키앤크림 등 4종으로 구성됐으며, 지난해 7월까지 출시 10년 동안 누적판매량 10억개를 돌파하는 등 꾸준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2000년대 후반까지는 매년 4~5개씩 신제품 아이스크림을 출시하는 등 그나마 시도가 있었지만 2010년 이후에는 이런 노력마저 사라졌다. 올해 역시 각 회사마다 1~2개 정도의 신제품 출시 계획을 갖고 있지만, 기존 제품을 리뉴얼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이스크림 업계 관계자는 “사업이 적자를 보고 있는데 신제품 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것 아니냐”고 항변한다. 장수제품에 의존하는 상황을 해결하지 않으면 시장을 키워나갈 수 없다는 점을 알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이스크림업체들이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롯데푸드는 프리미엄 디저트 시장을 공략해 프랑스 유명 제과학교 파튀세가 만든 마카롱 아이스크림을 출시했다. 각 사마다 아이스크림 전문점에 대응하기 위한 프리미엄 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빙그레 끌레도르, 롯데제과 본젤라또, 롯데푸드 라베스트, 해태제과 빨라쪼 등은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롯데푸드 관계자는 "계절성을 강하게 타는 빙과업계에서 최근 디저트 라인 강화를 통해 제품 영역을 넓혀가고 수익 창출을 도모하고 있다"면서 "고급 디저트인 퐁듀에서 마카롱까지 출시했고 다음달에는 쿠키오 케이크 샌드를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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