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맛대결 ⑧ 우유]
'저지방 우유'를 위기 극복 위한 구원투수로 활용
값비싼 '고품격 우유' 품질 차별성 논란
가격 저렴한 PB우유 급증 비결은?

한때 건강의 보고로 알려져 귀한 대접을 받았던 우유는 몇 해 전부터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했다.
[데일리한국 이민형 기자] 딸 하나를 키우는 주부 김모(32) 씨는 매번 우유를 구입할 때마다 갈등한다. 두 팩의 우유가 묶여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는 기획팩을 살 것이냐, 단품을 구입할 것이냐. 결국 김씨가 집어든 것은 1,000㎖ 단품. "조금 비싸더라도 먹을 만큼만 사야지 괜히 저렴하다고 덜컥 기획팩을 구입했다가 먹을 사람이 없어서 결국 쓰레기통행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계산대로 향한다.

한때 건강의 보고로 알려져 귀한 대접을 받았던 우유는 몇 해 전부터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했다. 원유 소비가 감소하면서 신선한 우유는 저장 기간을 높이기 위해 분유로 만들어져 창고 속에 쌓이고 있고, 보관 및 관리비만 눈덩이처럼 불어나 국내 우유업계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3일 낙농진흥회와 업계에 따르면 9월 국내 원유 재고량은 18만7,664톤으로 지난 1월 13만7,236톤보다 5만톤 가량 늘었다. 분유 재고량도 9월 1만4,970톤으로 지난해 말 7,328톤보다 2배 가량 늘었다. 분유 재고량은 2002년 이후 최대치다.

정부는 원유 재고가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 현지에서 낙농가 및 유업계와 공동으로 '2014 한국 유제품 페스티발'을 개최하는 등 우유 수출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지난 5월 중국 수출이 중단된 이후 우유업계는 중국 수출 재개를 통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얼마 전 올해 안에는 중국 수출 재개가 어려울 것이라는 정부 발표가 나오면서 풀이 꺾여 버렸다.

1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중국 국가인증인가감독관리위원회(CNCA) 소속 실사단의 한국 방문 일정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면서 "실사단 방문 이후 수출 재개까지 한 달 이상 걸리는 만큼 중국 수출 재개는 해를 넘길 전망"이라고 밝혔다. 그러면 국내 우유 생산을 포기해야 하는가.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된다"는 게 우유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우유는 수입 제품과의 경쟁에서 우리 시장을 지켜온 유일한 1차 식품이기 때문이다. 우유 시장의 경쟁 구도를 살펴보면 서울우유가 36~38%의 점유율로 약간 앞서고 있고,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이 각각 24% 전후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저지방 우유 경쟁 치열… 성장 가능성도 높아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저지방 우유가 떠오르고 있다. 우유 경쟁이 이제는 웰빙 바람을 타고 지방 줄이기에 집중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2010년 한국영양학회가 발표한 '한국인 영양섭취 기준'에 따르면 하루 지방 섭취 권장량은 유아 210~420㎉, 성인 315~525㎉ 등이다. 우유를 하루 2잔(500㎖)만 마셔도 하루 권장량의 50%에 육박한다.

국내 소비자들의 저지방 우유 선호도는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08년 전체 시장의 4%에 불과했던 저지방(무지방 포함) 우유는 2년 뒤에 12%까지 점유율을 키웠고, 올해는 19%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전망되는 흰 우유 시장 규모가 1조4,000억원대로 저지방 우유는 이 가운데 2,700억원 가량을 차지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저지방 우유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는 저지방 우유 점유율이 75%를 차지하고 있으니 국내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매일유업은 저지방 우유에 대한 수요를 미리 잡기 위해 최근 '저지방&고칼슘2%'를 출시하고 무지방(0%)부터 저지방(1%), 일반우유(오리지널 ESL, 4%) 등으로 흰 우유의 지방 함량을 세분화하고 나섰다. 매일우유 '저지방&고칼슘2%'는 유지방 함량을 일반 우유의 절반으로 낮추고, 칼슘 함량은 2배로 높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우유는 지방 함량 1% 제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서울우유의 저지방 우유는 원유의 지방을 1/4로 줄이고 칼로리도 40%까지 낮췄다는 점을 강조한다. 남양유업도 맛있는 우유 GT 라인에서 나뉜 저지방 우유를 선보이고 있으며, 파스퇴르와 푸르밀 역시 저지방 우유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우유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 선진국 사례를 조사한 결과 흰 우유 제품이 지방 별로 세분화되어 판매되고 있어서 지난 10월 업계 최초로 저지방 2%우유가 개발됐다"며 "2세부터 저지방 우유를 마시기 시작해 성인까지 저지방 우유를 마시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초 칼슘 우유, 중반에는 검은콩 우유로 우유 트렌드는 계속 변화해왔다"면서 "결국에는 다시 클래식한 흰 우유로 트렌드가 돌아왔는데, 저지방 우유가 일반 우유를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은 섣부른 감이 있다"고 전했다.

가격 높은 '고품격 우유'… 비싼값 할까

매일유업이 운영하는 커피전문점 '폴 바셋' 매장에는 '상하목장 아이스크림' 매장이 동시에 운영되고 있다. "아이스크림이 맛있다"라는 입소문을 타고 폴 바셋은 10월 말에 매장 수가 35개로 확대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폴 바셋이 판매하고 있는 아이스크림은 백색으로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상하목장 우유로 만들었다는 말에 힘입어 인기를 끌고 있다.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기도 했다.

매일유업의 상하목장 우유는 2011년 농민들과 함께 출자해 전라북도 고창군에 설립한 상하농원에서 유기농 사료와 유기농 목초를 먹고 자란 젖소들을 통해 생산된다. 2008년 6월 매일유업은 상하목장 우유를 출시하며 국내 유기농 시장 개척과 한국 농업 동반 성장모델을 만들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결국 지역 농가와 협력해 고품격 우유를 생산해 내겠다는 매일유업의 계획은 매출 증대로 이어졌다. 상하목장 우유는 출시된 이후 꾸준히 유기농 우유 매출 1위를 기록하며 유기농 우유의 보급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그 뒤 서울우유도 '청정목장 이야기 우유' 출시했고, 남양유업도 '맛있는 우유 GT 유기농 우유'를 내놓았다.

유기농 우유가 일반 우유보다 가격만 비쌀 뿐이지 품질 면에선 별 차이가 없다는 논란도 있다. 실제 2011년 사단법인 소비자시민모임이 유기농 우유와 일반 우유의 품질과 가격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 유기농 우유는 항생제와 농약의 잔류량, 칼슘 함유량 등에서 일반 우유와 별다른 차이가 없으나 가격 차이는 약 2배에서 2.7배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고품격 우유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보통 자연 방목과 같은 유기농 방식을 적용했거나 저온살균 공법을 써서 영양 손실을 줄였거나, 초유 면역성분 등 좋다고 알려진 성분을 추가한 제품들을 고품격 우유라고 부른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생산의 한계가 가격을 높이는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업계 관계자는 "방목에 따라 젖소의 운동량이 늘어날수록 우유 생산량은 줄어들고 날씨에 따라서도 생산량의 변동이 생기는 만큼 생산량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설명했다. 방목에 필요한 넓은 토지와 관리 인력 때문에 관리비용이 늘어나다 보니 높은 가격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유시장의 위기 대안으로 저지방 우유가 떠오르고 있다. 사진=남양유업/서울우유/매일유업 제공

가격 경쟁력 갖춘 PB우유… 저렴한 이유는

장기 불황으로 소비자들의 실속 소비 경향이 강해지면서 대형마트 자체 브랜드(Private Brand·PB)우유가 우유 업계들의 상품 판매량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부터 지난 3월까지 판매량 조사업체 닐슨코리아가 홈플러스·이마트·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PB우유 판매량을 집계한 결과 홈플러스 우유가 636만개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심지어 대형마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우유 가공업계의 우유 503만개 보다도 26.4%나 많이 팔렸다. 홈플러스 PB우유 가격은 1,700원으로 서울우유보다 30% 이상 저렴하다.

우유업체 입장에서는 대형마트에 PB우유를 공급하는 게 최선의 선택은 아니지만 재고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품질 면에서 PB 우유와 일반 우유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도 제조업체가 같기 때문이다. 반면 가격은 PB우유가 10~20% 가량 저렴했다. 매일유업이 제조한 이마트 우유와 동일 제조사의 일반 우유을 비교하면 칼슘, 비타민 함유량 등 품질이 비슷했음에도 가격은 이마트 우유가 22% 정도 저렴했다.

제품 온도를 10℃ 이하에 맞춰야지… 유통 기한 맞췄다고 신선한 우유일까

우유는 유통 기한이 짧은 제품이다. 우유는 다른 어떤 식품보다도 신선도가 중요하다. 신선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제조일자 및 유통 기한 확인이 필수인데, 우유업계들은 유통 기한만으로 우유의 신선도를 확신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법적으로 우유는 0~10℃를 유지하라고 되어 있는데,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 열려 있는 냉장고를 사용하고 냉장 온도를 10℃에 맞추다 보니 유통 기한이 만료되기 전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유통 기한을 엄수했다고 신선한 우유를 선택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유의 신선도를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우유팩을 잡았을 때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는지 여부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종종 우유팩이 부풀어 오르는 경우도 볼 수 있는데, 이는 미생물 등이 변질돼 세균이 증식했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구입한 우유는 가능한 빨리 마시는 것이 좋다. 또 남은 우유를 냉장 보관하는 일이 생겼을 경우, 우유는 냄새를 빨아들이는 힘이 강하므로 입구를 완전히 막아 다른 음식물의 냄새가 스며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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