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맛대결⑥ 홍삼]
환자·노인 보양식품에서 어린이 성장음료까지
전매제도 폐지·웰빙 열풍으로 홍삼 업체들 "우후죽순"
"영원한 선두 없다"… '프리미엄 홍삼'에 '반값 홍삼' 도전

홍삼을 조직 선별 중인 선별사(왼쪽)와 직원들이 수삼 세척하는 모습. 사진=KGC인삼공사 제공
[데일리한국 동효정 기자] 한 기업의 홍보팀 여직원 이씨는 연말이 다가오면 잦아지는 술자리 때문에 홍삼을 더욱 꾸준히 챙겨먹고 있다. 직장 생활 3년 차에 접어들면서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고 자주 감기에 걸리는 이씨는 아침저녁으로 홍삼 엑기스를 마신다. 홍삼을 먹을 때면 보약을 먹는 느낌이 들어 기력을 회복하고 잔병도 사라지는 기분이다. 이씨가 입사한 첫해인 3년 전만 해도 홍삼 액기스에 빨대를 꽂아 챙겨 먹는 젊은 여직원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하지만 이제는 워낙 홍삼이 대중화돼서 아침마다 서로에게 "홍삼 챙겨 먹었냐"고 묻기도 한다.

암환자 치료제에서 어린이 성장식품까지

홍삼은 원래 국가에서 관장하는 전매품 중 하나였다. 조선 후기 왕실은 재정 강화를 목적으로 1899년 홍삼 사업을 관장하는 내장원 삼정과를 설치해 나라에서 직접 관리했다. 홍삼은 일본이나 중국과의 교역 수단으로 사용됐으며 국내에서 찾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1970년대 전까지는 생산량의 대부분을 수출해 국내 홍삼시장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등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해외여행객들이 늘어나면서 면세점등을 중심으로 홍삼 소비가 늘기 시작했다.

1996년 홍삼 전매제도 폐지로 국내 소비자들도 쉽게 홍삼을 접할 수 있게 되면서 홍삼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홍삼은 초기엔 비싼 가격과 아픈 사람이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노년층이나 암 환자와 같은 특수한 계층에서 인기가 높았다. 2000년대 들어서며 사회적으로 개인의 건강과 안전에 주목하는 웰빙 열풍이 불어 명절 선물 시장에서 홍삼이 급부상하게 됐다. 특히 40~50대 주부들이 남편의 보약으로 홍삼을 선택하면서 중년 남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홍삼 등록제가 시행되자 쉽게 구할 수 없었던 홍삼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이 몰렸으며 다수의 기업이 홍삼 사업에 뛰어들어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들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정관장 홍삼을 생산하는 KGC인삼공사 뿐만 아니라 기존 식품업체와 제약업체들도 홍삼을 활용한 건강기능 식품을 시장에 선보이면서 홍삼시장 규모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후 KGC인삼공사에서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도입하고, 어린이와 청소년을 겨냥한 홍삼 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성장기 어린이와 수험생의 필수 영양제가 됐다. 또 국군복지단 산하 충성클럽/마트(PX)에서 식음료 부문 5년 연속 판매금액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군인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영원한 선두는 없다"… '반값 홍삼'의 기습

이렇게 커진 올해 홍삼시장의 규모는 1조3,000억원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2007년 홍삼시장 점유율 9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보였던 정관장은 2011년 70%대 후반으로, 2014년 현재 65% 수준으로 내려간 상태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정관장의 아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2005년 CJ제일제당을 시작으로 2006년 롯데헬스원, 동원F&B가 뛰어들었고 뒤를 이어 웅진식품, 풀무원, 오뚜기 등이 홍삼시장에 진출했다.

여기에 이마트를 필두로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의 유통업체들도 홍삼시장에 진출하면서 홍삼시장을 잡기 위한 혈투가 벌어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더욱 치열하다. 지난 6월 오뚜기가 ‘고려호삼농축액 진’으로 약국을 통해 진입했고 CJ제일제당이 지난 7월 프리미엄 홍삼인 ‘구증구포 한뿌리 흑삼진액’를 통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외에도 해태음료가 2월 ‘영진 홍산진액’을, 광동제약이 홍삼진액 ‘귀한삼’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가운데 대형마트에서 자체 상품으로 내놓은 저가형 홍삼 상품이 시장에서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작년 10월 첫선을 보인 이마트의 '반값 홍삼'은 1년 간 150억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PB(자체 브랜드) 상품으로서 홍삼 마케팅에 성공했다.‘반값 홍삼’은 지난해 이마트가 종근당건강과 손잡고 자체 브랜드로 9만9,000원짜리 홍삼정을 내놓으면서 화제를 모았다. 이 제품은 출시 6개월도 채 안돼 8만3,000여개나 팔렸다. 이에 롯데마트도 지난 1월 자체 브랜드인 ‘통큰 홍삼정’을 9만원에 내놓았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이마트 제품 중 일부에서 기포가 발견되는 등 문제가 발생하면서 ‘반값 홍삼’에 대한 의구심도 높아지고 있다. 업체들은 ‘제품 안전성과 효능이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홍삼 품질의 기준이 되는 진세노사이드 함량의 경우 우리 제품이 시중의 프리미엄이라고 자부하는 제품들보다 높다"며 "또 정부에서 인증한 시험기관을 통해 229가지 성분 안전성 검사와 잔류 농약 검사를 거쳤다"고 말했다.

인삼공사의 시장 장악력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계약재배 형식으로 생산 단계에서부터 가격 주도권을 갖고 대리점 유통 위주로 판매하다 보니 같은 등급의 제품 가격이 높게 형성됐다는 게 후발업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또 홍삼정 원료는 통상 ㎏당 3만원 내외인 3등급 이하 수삼으로 만들기 때문에 제조 과정을 거쳐도 원가가 5만원이 채 안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인삼공사 측은 ‘반값 홍삼’과 기본적으로 품질부터 다르며 프리미엄 시장이 따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소비자가 겹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인삼공사 관계자는 "토양 관리부터 시작해 7~8년 간 농가와 미리 계약을 해서 매년 6년근 수삼의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며 "20년 이상의 베테랑 사원으로 구성된 홍삼 선별사 제도를 운영하기 때문에 품질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반값 홍삼의 원료가 6년근이 맞고 잔류 농약 등 여러 성분에 대한 확인을 거쳤다면 효능 면에서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단순한 효용만 갖고 가치를 따질 수 없다"면서 "홍삼시장 규모가 커지고 다양한 가격의 홍삼 제품이 나오면서 소비자 선택권이 확대된 것은 긍정적 측면"이라고 말했다.

KGC인삼공사의 1910년대 제품(왼쪽 위부터), 롯데마트의 통큰 홍삼, 해외 시장을 노린 다양한 제형의 홍삼 제품. 사진=KGC인삼공사/롯데마트/일화 제공

국내 홍삼시장 주춤, 이제는 해외시장 개척 경쟁

지난해까지 홍삼 시장은 불황의 직격탄을 맞으며 고전했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먹고사는 문제가 급급해진 소비자들이 건강까지 신경 쓸 여유를 갖지 못하자 홍삼시장은 위축됐다. 인삼공사는 2011년 연매출 9,400억원을 기록하며 한때 ‘1조 클럽’에 대한 꿈을 키웠다. 하지만 불황의 여파로 지난 2012년에는 전년보다 1,100억원 급감한 8,3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다시 500억원이 줄어 7,800억원으로 더 하락했다. 이른바 ‘홍삼의 눈물’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지난 2년 간 홍삼시장은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다시 가족과 건강, 면역력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신규 고객들이 홍삼을 많이 찾으면서 설날, 추석 선물로 각광받았다. 또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쇼핑 리스트에서도 빠지지 않고 있어서 홍삼시장은 요우커 등 외국인 관광객 증가와 함께 탄력을 받고 있다.

이에 업계는 수출 경쟁으로 해외 시장 확보에 본격 돌입했다. 홍삼을 찾는 연령층이 점차 넓어지고, 다양한 국가에서 찾고 있는 만큼 젤리, 캡슐, 앰플 등 보다 먹기 쉬운 제형의 아이디어 제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일화는 전세계 40여개 국에 홍삼 제품을 수출하고 있는 만큼 홍삼을 간식으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홍삼젤리’, ‘홍삼캔디’ ‘고려홍삼양갱’ 등을 개발했다. 농협한삼인은 공진단의 주원료인 녹용, 당귀, 산수유에 6년근 홍삼분말과 홍삼농축액 및 침향을 배합해 프리미엄을 높여 ‘심의환’을 출시했다.

'홍삼+스파' '홍삼+카페' 등 결합 서비스를 통해 중국인·일본인의 기호를 사로잡는 업체도 있다. 인삼공사는 홍삼을 몸에 바르고 스파를 즐기는 '스파 G' 강남 대치점이 인기를 끌자 작년 6월 일본인·중국인 관광객을 타깃으로 명동 2호점을 열었다. 8월에는 농협한삼인이 인근에 배우 정준호가 운영하는 '해피 카페' 1호점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홍삼 라떼, 홍삼 아메리카노, 홍삼 머핀, 홍삼 절편 쿠키와 파운드 케이크를 판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나 일본 이외의 해외에서 홍삼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아직은 한인이나 중국인 등 아시아계 이민자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 있다. 또 홍삼은 건강식품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각 나라마다 의약품 수준의 제품 등록을 요구하는 국가가 많아 소요되는 시간도 길고 비용도 많이 든다.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은 홍삼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홍삼이 무엇인지, 어떻게 즐기는지, 효능이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한 꾸준한 홍보와 마케팅이 필요하다.

홍삼 업계 관계자는 "동남아 등에서도 삼은 재배되지만 홍삼 제조 기술이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만의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가치를 서서히 인정받고 있다"면서 "외국의 현지인 공략이 쉽지 않지만 미국에선 에너지 드링크를 선보이는 등 나라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도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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