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맛 대결 ③ 커피 편]
1조3,000억원 커피믹스 시장… 독주에서 치열한 경쟁 체제로
동서식품의 ‘맥심’ 압도적 선두… 남양·롯데네슬레 맹추격
국내 시장 포화 상태여서 해외 시장으로 활로 모색도

식후 포만감을 느끼며 마시는 커피믹스 한 잔은 달콤하다. 국내 커피믹스 시장이 동서식품의 막강한 선두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한 후발업체의 시도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사진=장원수 기자
*편집자 주= 인터넷한국일보가 발간하는 데일리한국은 최근 가전 제품과 주류 제조 업체의 치열한 생존 경쟁을 다룬 '가전 전쟁' 과 '주류 천하' 기획 시리즈 기사를 잇따라 연재했습니다. 데일리한국은 이어 식품과 음료수 분야의 대결을 다루는 '맛 대결'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맛 대결'에서는 라면과 치킨에 이어 커피, 빵, 햄버거, 우유 등 10여 가지 분야의 살아남기 경쟁을 다루게 됩니다.

[데일리한국 장원수 기자] 경남 창원에서 가방 매장을 운영하는 강경자(50·여)씨는 하루에 커피믹스 5잔 이상을 마신다. 과하다 싶어도 손님이나 이웃 가게 주인들이 매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권하는 것이 커피믹스다. 스스로 ‘인이 박혀 이제는 끊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할 정도로 달달한 맛에 중독된 느낌이다. 항상 점심 식사 후 오후가 되면 달콤한 맛을 잊지 못해 정수기에 종이컵을 대고 뜨거운 물을 내린다.

사무실이나 가게에서 커피믹스를 타서 먹는 사람들이 많다. 기사식당 앞이나 재래시장에서도 점심 식사 후에 커피믹스를 홀짝거리면서 수다를 나누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더욱이 커피믹스는 스틱형 구조 덕분에 휴대하기 간편하고, 보관하기 쉽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지 마실 수 있다. 값이 싼데다 뜨거운 물만 있으면 손쉽게 마실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인기 제품이다.

‘커피믹스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국민적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의외로 시장 진입 벽은 높다. 국내 유명 대기업이 새 먹을거리 사업으로 진입을 시도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할 정도다. 이는 커피믹스가 고객 충성도가 높은, 시쳇말로 쉽게 뚫을 수 없는 ‘갈색 알갱이 장벽’이기 때문이다.

AC닐슨 집계에 따르면 올 8월 말까지 커피믹스 시장점유율은 동서식품이 81.15%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뒤로 남양유업이 12.5%, 롯데네슬레가 3.9%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2∼3위 순위는 뒤바꿔진 적이 있지만 맥심으로 대변되는 동서식품의 시장점유율은 큰 변화가 없다.

1968년 설립 이후 40여년 동안 커피 전문기업으로서 우뚝 선 동서식품은 시장점유율 등락은 있었지만 한 번도 1위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사진=동서식품 제공

40년 장수 '맥심' 커피믹스의 비결은… 한국인 입맛 선점

동서식품은 1조3,000억원가량의 커피믹스 시장에서 절대 강자 자리를 지켜왔다. 조그마한 커피믹스, 일명 봉다리 커피로 동서식품이 한 해 벌어들이는 돈은 1조원가량 된다. 동서식품은 1976년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를 선보인 뒤 시장점유율 등락은 있었지만 한 번도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동서식품이 이렇게 선두를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한국인 입맛을 선점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동서식품의 맥심 커피믹스는 커피의 쓴 맛보다 부드럽고 깔끔한 맛과 향으로 ‘한국인의 입맛에 가장 맞는 커피’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 커피 판매 1위인 네슬레가 국내에서 ‘테이스터스 초이스’라는 브랜드로 동서식품에 도전했지만 벽을 뚫지 못하고 퇴장한 데는 한국인의 단맛 선호를 잡지 못했다는 평이 많다.

두 번째는 선점 효과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연구하면서 변화에 적응해왔다는 점이다. 동서식품은 매년 100건 이상의 시장조사를 실시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분석해 맛과 향, 패키지 디자인까지 업그레이드하는 변화를 시도한다. 실례로 인스턴트 원두커피 시장에 진출할 때 주위의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소비자 시장조사를 통해 원두커피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젊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부산 중구 광복로에 인스턴트 원두커피 팝업스토어를 열고 입소문을 유도했다.

마지막으로 저인망식 마케팅을 꼽을 수 있다. 동서식품이 글로벌 회사 네슬레나 대기업 롯데, 유통 강자 남양유업을 따돌리고 업계 1위를 차지하는 데에는 동네 슈퍼마켓까지 관리하는 철저한 마케팅에 있다. 일반적으로 유통업체는 대형마트나 중간도매상까지만 신경을 쓰는데, 동서식품은 판촉 행사 지원 등을 통해 소도시나 동네 슈퍼마켓까지 꾸준히 관리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업계 관계자는 “동서식품은 커피믹스 시장뿐 아니라 인스턴트 원두커피 시장에서도 시장점유율 80% 이상을 기록하며 평정했다”며 “커피 시장은 브랜드 충성도가 강해 롯데네슬레나 남양유업이 새로 시장을 뚫기가 결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남양유업은 자연에 가까운 식품을 만들고자 하는 카제인나트륨과 인산염을 뺀 커피믹스를 만들었다. 앞으로도 식품첨가물 제로에 도전하기 위해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남양유업 제공

후발 주자 남양유업, 인체 무해 첨가물로 승부수

경기도 김포에 사는 황성연(35·남)씨는 커피믹스 애호가이다. 아침 출근 후에 커피믹스를 한 잔 마시면 멍한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을 느낀다. 그가 즐겨먹는 커피는 남양유업의 프렌치카페 프리미엄. 카제인나트륨 사태 이후 맥심에서 커피를 바꿨지만 최근에는 인산염을 뺀 천연식품원료로 만들었다고 하니 더 믿음이 간다고 한다. 회사 사무실 커피믹스도 맥심에서 프렌치카페로 바꾸도록 지원팀을 설득해 지금은 두 회사의 커피믹스가 나란히 구비돼 있다.

남양유업의 주된 사업은 본래 우유류와 분유류였다. 올 상반기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회사 제품 비율에 있어서도 우유류와 분유류가 각각 50.3%, 24.4%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갈수록 떨어지는 출산률과 1인당 유제품 소비량 감소로 유가공 사업이 성장 한계에 부딪히자 2010년 커피믹스 사업 진출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 커피믹스 시장에서는 동서식품이 독과점식으로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네슬레가 15% 안팎의 점유율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접근법으로는 기존의 벽을 뚫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남양유업은 카제인나트륨을 꺼내 들었다. 남양유업은 카제인나트륨이 인체에 좋지 않으며 대신 무지방 우유를 넣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 결과 시장점유율을 단숨에 1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최근에는 커피크리머에서 인산염을 뺀 신제품 ‘프렌치카페 카페믹스 누보’를 선보이며 입지를 넓히고 있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커피믹스 시장은 오랫동안 두 외국계 기업(맥심과 네슬레)의 과점 구도가 지속되면서 제품 개발이나 가격 경쟁 등이 없었던 시장이었다"면서 "그로 인해 동서식품의 영업이익율은 식품업계 평균의 4배에 가까운 15∼20%에 육박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남양유업의 커피 시장 진출 이후 우유 넣은 커피믹스, 인산염을 뺀 커피믹스, 원두커피 믹스 등 신제품들이 개발되고 할인 경쟁이 일어나는 등 커피믹스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고 전했다.

남양유업은 최근 국내 시장보다는 해외 시장 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동서식품이 동업자인 미국의 식품기업인 크래프트푸드와의 관계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에 해외 진출에 제약이 없는 남양유업은 지난해 말 커피 전용 제조 공장을 완공해 해외 진출에 시동을 걸었다. 2,000억원을 투자해 세워진 전남 나주의 커피 전용 공장의 연간 생산량은 국내 커피 소비량의 50%를 충당하고도 남는다.

그 결과 최근 폴란드의 인스탄타사와 약 1,000만달러 규모의 원료형 커피믹스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으로 공급하게 되는 물량은 연간 500톤 규모이다. 이는 남양유업 커피공장 연간 생산 능력의 15%에 해당하며, 약 3억 잔의 커피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유럽 커피 시장은 커피 산지인 남미와 함께 가장 경쟁이 치열한 지역"이라며 "이 시장에서 한국의 신생 업체가 오직 품질력만으로 글로벌 제조사들을 제치고 계약을 따낸 것은 극히 이례적인 성과”라고 평가했다.

네슬레+롯데 연합군, 시너지 효과 기대하며 추격

롯데네슬레코리아(이하 롯데네슬레)가 아직까지는 커피믹스 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롯데네슬레는 한국네슬레와 롯데푸드가 각각 지분 50%를 투자해 설립한 회사다. 네슬레는 1987년 국내 시장 진출 후 동서식품과 함께 커피 시장을 주도해왔으나 남양유업이 2010년 커피 시장에 진출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바람에 2위 자리를 빼앗겼다. 네슬레는 한국 시장에서 철수를 고민할 정도로 시장점유율이 추락하자 호시탐탐 커피믹스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던 롯데와 전격적으로 손을 잡았다.

당시 한국네슬레는 커피믹스 시장에서 고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유통망 부진이라고 판단하고, 유통의 강자인 롯데푸드와의 합작으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합작에 따른 시장점유율 상승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커피 사업의 경우 유통이 중요한데 네슬레의 경우 유통비용이 많이 나가서 적자였는데 롯데가 유통 노하우를 살리고 매출을 늘리면 흑자로 돌아설 수 있다”며 “앞으로 고객의 입맛에 맞는 커피믹스 개발이 성장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내 커피믹스 시장에서의 동서식품 점유율은 아직까지는 철옹성이다. 2010년 카제인나트륨, 지난해 인산염 커피 첨가물 논쟁으로 잠시 시장점유율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이내 곧 회복했다”며 “남양유업과 롯데네슬레도 고객의 요구에 발 빠르게 대처하면서 해외 시장을 적극 개척한다면 동서식품의 대항마로 떠오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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