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 vs "안전" 팽팽… '조미양념분' 등으로 애매모호하게 표기
일각선 "소비자 알권리 침해… 성분 이름 제대로 알려야" 지적도

“이 육개장에는 MSG가 안 들어가 있더라고.” 매콤한 국물이 당겨서 동네 마트에서 즉석 육개장을 사 온 김모(35)씨. 식품 안전에 관심이 많은 아내가 인공 조미료를 함유하고 있는지 묻자 김씨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이리 줘봐.” 아내는 김씨가 들고 온 육개장의 포장지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숙주, 파, 고구마 순, 양파, 사골 엑기스, 쇠고기, 비프 엑기스, 옥수수유, 참치조미간장, 고추분, 표고버섯, 쇠고기 농축액…. 육개장 하나 만드는 데 많은 게 들어가는구나. 근데 여보, 원료란 제일 마지막에 적힌 향미증진제가 뭐야?” 아내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김씨가 버벅거리기 시작한다. “향미증진제? 그런 것도 들어가? 난 처음 듣는데…. 향과 맛을 증진하는 원료겠지.”

인공조미료의 대명사는 MSG로 잘 알려진 L-글루타민산나트륨이다. 맛에 관한 한 MSG는 ‘마법의 조미료’다. 일단 뿌리면 대부분의 음식이 맛있어진다. 문제는 아미노산 계열의 조미료인 MSG가 ‘인공’이라는 점이다. MSG가 많이 들어간 중국음식을 먹은 뒤 몸이 이상해졌다는 주장이 나온 뒤부터 MSG는 인체유해 여부를 놓고 무수한 논란을 불렀다.

MSG가 유해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MSG를 과다 섭취하면 알러지나 무력감, 두통, 답답함 등의 증상이 유발된다고 말한다. 반면 조미료 회사는 MSG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항변한다. 너무 쉽게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주는 재료라는 게 죄라면 죄라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글루타민산은 유제품ㆍ육류ㆍ어류ㆍ채소류 등 단백질 함유 식품에 존재하고 있는데 식품첨가물인 L-글루타민산나트륨의 생리 반응은 글루타민산과 동일하다”면서 “L-글루타민산나트륨을 섭취할 경우 일시적 과민반응으로 메스꺼움ㆍ두통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일부 연구가 있으나 이 같은 결과를 국제적으로 수용하고 있진 않다”고 밝혔다. MSG가 유해하다는 주장과 안전하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소비자들이 MSG를 멀리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린 식품회사들이 묘안을 짜냈다. ‘MSG 무첨가’ 마케팅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마케팅의 관건은 MSG를 넣지 않고도 똑같은 맛을 내는 제품을 내놓는 데 있다. 그래서 나온 조미료가 ‘향미증진제’다. MSG가 아니면서도 MSG와 비슷한 감칠맛을 낸다는 점에서 향미증진제는 MSG의 친척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향미증진제에는 5-리보뉴클레오티드이나트륨, 5-리보뉴클레오티드칼슘, 5-아데닐산, 5-시티딜산, 5-시티딜산이나트륨, 5-구아닐산이나트륨, 5-우리딜산이나트륨, 5-이노신산이나트륨이 있다. 아미노산 계열의 이들 식품첨가물은 MSG가 아니면서도 비슷한 감칠맛을 낸다. 식품 회사들은 이들 첨가물에 천연 재료를 섞어 햄맛 엑기스, 조미양념분, 혼합양념분말, 조미소고기분말 등의 희한한 이름을 부여하기도 한다.

라면업체는 ‘MSG 무첨가’ 마케팅을 누구보다도 대대적으로 벌였다. 농심과 삼양식품 팔도가 모두 스프에서 MSG를 뺀 때문에 MSG가 들어 있는 라면을 사는 게 더 어려워지게 됐다. 실제로 4년 전 한 마트에서 판매하는 자체상표부착 라면에서 MSG가 들어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유해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당시 한 식품회사와 손잡고 해당 라면을 개발해 판매한 마트 측은 MSG를 넣은 라면이 가장 맛있다면서 다른 업체들도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렇다면 향미증진제의 문제는 뭘까. 일단 소비자들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많다. MSG는 널리 알려진 성분인 만큼 유해성 여부가 수없이 논란에 부쳐졌다. 하지만 MSG가 아닌 향미증진제의 유해성 여부에 대한 연구는 MSG만큼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소비자들로선 원료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식품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향미증진제 이름을 조미양념분 등으로 알쏭달쏭하게 적으면 소비자들에게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식품’이라는 인식도 심을 수도 있다. 또 어떤 성분을 식품에 사용했는지 모르게 함으로써 과학자들의 향미증진제 유해성 연구를 막을 우려도 있다. 주부 김모(53)씨는 “향미증진제가 인공조미료인지 천연조미료인지 어떻게 알겠느냐”면서 “식품회사는 소비자들에게 어떤 인공조미료를 향미증진제로 사용했는지 정확히 뭔지 알려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매년 10월 16일 세계소비자연맹이 정한 ‘화학조미료 안 먹는 날’에 맞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환경운동연합은 향미증진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구희숙 서울환경운동연합 여성위원장은 “식품업계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식품회사와 식약처는 ‘MSG가 전혀 건강에 해롭지 않으며 설탕처럼 걱정 없이 먹어도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상품 겉면엔 ‘MSG 무첨가’를 홍보한다. MSG가 건강에 유해하지 않다면 왜 떳떳하게 ‘MSG 첨가식품’이라고 표기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 위원장은 “식품업계가 묘안으로 짜낸 향미증진제도 MSG와 같은 첨가제일 뿐”이라며 “소비자는 첨가제가 덜 들어간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은 건데 기업은 소비자 건강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해 첨가물을 넣고 있다”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