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되는 집회로 인해 ‘새로운 광화문광장’, 집회장소 키워주기 오명까지

종로거주 주민의 생활권 침범에도 ‘제21조 제1항’ 근거 집회의 자유역시 국민의 기본권

"집회가 자주 열리는 곳에 고속도로 방음벽처럼 소음방지 시설물을 설치…검토해볼만"

광화문 광장에서 집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주현태 기자] 최근 종로구 광화문에서 열리는 집회가 잇따라 열리는 바람에 서울시민의 원성이 자자하다. 이 같은 불만은 자연스레 빗발치는 민원으로 표출되고 있다.

집회의 사전적 의미는 '많은 사람이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함께 모여 벌이는 운동'이다.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집회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적 목적으로 인해 집회가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열리면서 집회의 자유가 사회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역설적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정치적 의사를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명소'로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가 급부상하면서 이곳 주민들은 시도때도 없는 소음과 교통체증 등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만 해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퇴 과정에서 등장한 촛불집회,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집회, 생계와 직결된 택시노동조합 집회,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요구 집회 등 다양한 집회가 이어졌다.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나름의 이유로 광화문을 찾아 큰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거나 주장을 펴면서 '광장의 자유'를 만끽해온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집회가 줄기차게 이어지면서 종로구민은 물론 종로구를 경유하며 출퇴근하는 수많은 시민들의 일상생활까지 침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19일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광화문 일대에 신고 된 거리행진 건수는 2015년 26건에서 2018년 592건으로 무려 22배나 껑충 뛰었다. 시위나 집회가 일상화된 셈이다.

이에 ‘새로운 광화문광장’을 모색해온 서울시에도 비상이 걸렸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7일 집회와 교통체증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주민들은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토론회를 마련했다. 박 시장은 이 자리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민들과 소통하며, 집회로 인한 교통문제 등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시장은 이 자리에서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과 관련해 광화문 일대에서 집회가 열릴 때, 광화문 자하문로(경복궁역~통인시장~경기상고~상명대) 노선을 운행하는 전용 버스를 만들기로 했다”며 “집회 시에는 세종대로 측면에 임시 버스정류장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다만 발표 이후 진행된 토론회에서도 집회 관련 문제점 등을 해결할 수 있는 특별한 방안은 제시되지 못했다.

기존의 '새로운 광화문광장' 구상은 세종대로 왕복 10차선을 6차선으로 축소하고 이에따라 늘어난 4차선을 광장으로 활용해 시민들의 보행로를 확대한다는 계획이었다.

계획안에는 지하 보행로 설치와 더불어 지하철 1·2호선 시청역을 지하로 연결하고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A노선 역사까지 신설해 총 5개 노선을 품은 초대형 ‘광화문 복합역사’를 만들 예정이었다.

하지만 광화문 일대에서 집회가 일상화되면서 이같은 구상이 되레 ‘집회장소 키워주기’나 ‘지옥의 교통체증 만들기’라는 엉뚱한 화살로 돌아오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늦은 밤 광화문 광장에서 집회가 진행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시민의 자유를 위해 또 다른 시민이 자유를 빼앗겨야 하나?

지난 8월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관련해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와 집회가 수개월간 이어지면서 인근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불만섞인 목소리도 비례해서 커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같은 시기에 ‘청운효자동·사직동·부암동·평창동 집회 및 시위 금지 주민대책위원회’는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서 집회로부터 자신들을 지키는 침묵시위를 벌인바 있다.

이들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지켜달라”며, 일상을 침해하는 도를 넘어선 집회와 시위를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시위가 일상이 된 동네, 살고 싶으신가요?’, ‘교통감옥 해소’ 등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기도 했다.

이에 종로구가 지역구인 정세균 의원(전 국회의장)과 종로구의회 유양순 의장을 비롯한 의원들도 서울지방경찰청을 찾아 과도한 집회시위를 자제해달라는 종로구민의 호소문을 전달했다.

이들은 경찰청 관계자에게 “광화문 인근 주민들이 과도한 집회시위로 인해 큰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며 “집회가 열릴 때 종로구민이 불편을 느끼지 않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교통·안전대책을 마련하고 집회시위를 최대한 자제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실제로 이 지역 주민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 집회 때문에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종로구 당주동 거주자 신대섭(33)씨는 “회사와 가깝다는 이유로 이곳에 방을 잡은 것 자체가 실수였다”며 “집회 소음 때문에 잠을 잘 수도 없고, 지인을 만나기 위해 집에서 나설 땐 버스도 없고 택시도 보이지 않아 빙빙 돌아서 5호선 광화문역이나 3호선 경복궁역을 이용해야 한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서울의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집회로 인해 파생되는 교통체증도 서울시민들의 최대 불편사항으로 꼽힌다. 광화문에서 집회가 생기면 서울시민이나 서울 방문 관광객들은 내부순환도로, 강변북로로 내몰리며 그때부터 교통체증의 피해자가 되기 마련이다.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조대희(31)씨는 “토요일마다 벌어지고 있는 집회 때문에 도심으로 가지 못하고 강변북로로 운전해 한남동으로 출근한다"면서 "문제는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강변북로도 꽉 막혀 홍은동부터 한남동까지 1시간을 넘기기 일쑤"라고 불편을 호소했다. 조 씨는 “집회로 도심이 마비되다시피 하는 일이 되풀이되면서 정말 스트레스 받아 못 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집회로 인해 일반 시민들의 광화문 유입이 주춤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당주동에서 식당 영업을 하는 김모(52)씨는 “시위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크게 줄었다”면서 “매주 토요일마다 광화문역 모든 출구마다 노점상과 푸드트럭이 여기저기서 등장해 장사를 하는데 이것도 관리를 못 해주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그는 "장사하다가 망하면 보상을 받을 방법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 광화문을 집회-시위장소에서 보행지역으로 되살릴 해법은?

“‘집회 및 시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법규를 살펴보니 자정부터 일출 때까지 ‘행진’은 법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집회는 24시간 가능하다. 이는 헌법 ‘제21조 제1·2항’이라는 헌법의 보호 아래 집회가 진행되므로 사실상 집회에 따른 시민의 불편함을 해소할 방법을 찾기가 마땅치 않다.

다만 ‘집시법 제14조’에 따르면 소음이 일정 기준을 초과해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정도라면 경찰이 나서 필요한 조처를 할 수는 있다.

종로구청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집회 주최자가 배려의 마음으로 사회적 합의의 지점을 찾아가고자 하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오로지 집회 개최측이 ‘우리의 행동이 다른 시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성찰을 통해 집회를 자제하고 소음발생을 최소화는 것인데 그것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광화문 광장 인근으로 2년째 출퇴근을 하고 있다는 한 회사원은 경험을 토대로 그럴듯한 방안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안모(38)씨는 “시위로 인한 해결책은 도의적으로 당부하는 방법과 시설물을 통한 강제적인 소음 해소 등 크게 두가지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운을 뗐다.

안씨는 “우선 집회를 주도하는 조직이나 단체를 상대로 집회사 소음 등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사실상 현실성이 낮아 실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고 전제한뒤 "다만 시설물 설치 방법이 가능한데 , 고속도로 같은 곳에 주택가 방향으로 소음방지 벽 같은 것을 설치하는 것처럼 집회가 주로 열리는 곳에 소음방지 시설물을 설치하는 방안을 강구해볼만 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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