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부 주현태 기자
[데일리한국 주현태 기자] 골든 타임(golden hour)은 방송·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용어다. 요즘에는 ‘응급 상황 시 생존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간’으로 통한다.

여러 응급상황 중에서도 ‘급성 심정지’에는 골든 타임이라는 용어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심정지는 특히 생존율이 현저히 낮아 70세 이상 고령에서 발병할 경우 살아서 병원문을 나서는 퇴원 생존율은 3.7%에 불과하다.

소방 관계자들은 심정지 환자를 살리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현장 응급처치라고 강조하고 있다. 구급요원 도착 전 심폐소생술 시행이나 자동심장충격기 사용 여부가 환자의 생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심정지의 특성상 60~80%는 가정, 직장, 길거리 등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처음 목격하는 사람은 가족, 동료, 행인 등 주로 일반인일 확률이 높다. 이는 즉 심정지 환자에게 구세주는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가족이나 직장동료 또는 행인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은 국민은 과연 얼마나 될까. 통계청은 지난해 13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방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물었다. 놀랍게도 심폐소생술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국민은 17.4%에 그쳤다. 응급처치의 존재만 알고 있는 국민도 36.6%에 불과했다. 나머지 46%에 달하는 국민은 심폐소생술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다.

그나마 절반 이상의 국민이 심폐소생술에 대해 알고 있는 데에는 병무청에서 필수적으로 군인들에게 가르치는 응급처치와 소방청 및 지자체의 꾸준한 노력 덕분일 것이다. 그 덕분인지 우리나라의 일반인 심폐소생술 시행률은 2008년 1.9%에서 2017년에는 21%로 약 11배 증가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진한 부분도 있다. 심정지 환자를 살리기 위해 마련된 자동심장충격기 사용률은 채 1%에도 못미쳤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심정지 사망률이 가장 높은 어르신들이 즐겨 찾는 전국 경로당에 ‘자동심장충격기’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실질적으로 사용법을 모르는 어르신한테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난 주 동네 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에게 자동심장충격기의 사용법에 대해 물었지만 서로 눈빛만 교환하며 ‘모른다’는 대답이 대다수였다. 어르신들께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을 설명했으나 남의 일인듯 관심이 없어 보였다. 정부가 지원하는 자동심장충격기의 사용법을 모르기에 경로당은 여전히 심정지 취약지구에 머물러있는듯 싶다.

다른 누군가의 불행을 그저 모른 척, 방관하는 사회는 미래가 어두울 수 밖에 없다. 다만 국민이 모르거나 무지해서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나서 중재자나 교육자 역할도 해야 한다.

서울 마포구의 응급처치 교육행정은 그런 점에서 단연 돋보인다. 지난 16일 마포구민체육센터 직원과 주민의 심폐소생술 응급처치로 40대 남성의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미담이 소개된 바 있다. 마포구민체육센터에서 운동을 하던 한 남성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이를 목격한 센터 직원과 주민이 급히 다가가 기도를 확보하고 심장충격기와 심폐소생술을 번갈아 실시했다는 것이다.

직원과 주민은 약 5분에 걸쳐 응급처치를 실시했고 그 사이 119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하면서 심정지 상태의 40대 남성이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미담이다. 의식을 잃은 한 사람을 위해 민·관 모두가 힘을 합친 대목은 다른 지자체에서도 귀감이 될만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마포구는 올해 2월부터 구청 1층에 심폐소생술 교육장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마포구는 5개월간 1만3027명의 교육수료자를 배출했다. 특히 구청 교육장에서의 교육은 물론 각급 학교와 시설 등에 직접 찾아가는 현장교육도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도 유동균 마포구청장을 비롯해 구청 의회 공단 등 전 직원들이 모두 심정지 환자를 구한다는 일념으로 ‘구조 및 응급처치 교육’을 수료했다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마포구는 사후 대처가 아닌 사전 대비를 위해 탁상행정이 아니라 찾아가는 심폐소생술·자동심장충격기 교육에 나섰고, 그러한 노력이 실질적 효과로 나타나고 있어 구민들의 자긍심을 키우고 있다.

물론 마포구뿐 아니라 다른 지자체도 보건지소에 심폐소생술 상설 교육장을 열고, 자체 행사나 체험부스 등을 통해 심폐소생술 실습교육을 시행하는 등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행정을 펴고 있기는 하다. 대가가 따르지 않아도 심폐소생술 교육을 손쉽게 받을 수 있도록 지자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국민 개개인이 ‘심폐소생술을 몰라서’ ‘경로당처럼 자동심장충격기가 설치됐지만 사용법을 몰라서’ 등의 이유로 급성 심정지에 빠진 우리의 이웃을 구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은 없었으면 한다.

아무리 많은 예산과 시간도 생명보다 소중할 수는 없다. 단 하나의 귀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수십 수백번의 훈련도 결코 헛고생은 아닐 터이다. 탁상 교육이 아닌 ‘찾아가는 심폐소생술·자동심장충격기 교육’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마포구처럼 찾아가는 행정이 전국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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