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이었던 판문점 드라마…차기 북미정상회담은 미국 워싱턴일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판문점 회동에서 교착 상태인 북미 대화를 재개하기로 합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것으로,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 앞에서 대화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30일 전격적으로 성사된 남북미 정상 회동은 ‘최초’의 연속이었다.

한국전쟁에서 터진 비극의 총성이 멈춘 지 66년 만에 정전협정 당사국인 북미정상과 분단체제 당사국인 한국정상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곳은 ‘판문점’이라는 아주 특별한 장소였다.

남북 분단의 장소인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환한 미소로 악수를 나눈 역사적인 장면은 전 세계로 타전되며 국내뿐 아니라 주요 외신의 헤드라인을 ‘평화’라는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좀처럼 전개되기 힘든 문구로 장식하게 했다.

특히 미국 대통령이 사상 최초로 군사분계선(MDL)을 월경한 ‘역사적 사건’은 세계의 이목을 판문점으로 집중시켜 한반도가 비핵화로 갈 수 있는 전초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판문점 남북미 정상 회동’으로 한국전쟁 이후 지속돼 온 한반도의 분단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될 중대한 분기점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을 전담 취재하는 출입기자들이 머무는 청와대 춘추관의 30일 오전만 해도 남북미 정상들의 회동 가능성을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었다. 일단 북미 정상의 판문점 만남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희망’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설마 가능하겠느냐”라는 의구심은 춘추관에서 기사를 송고하는 기자들의 긴장감을 한껏 높였다. 하지만 그 같은 의구심이 “가능하겠다”는 확신으로 바뀌는 데는 한미정상회담이 시작된 오전 11시로부터 채 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8번째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판문점 북미 정상 회동’이 공식화됐기 때문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는 양국 정상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 말고도 경제 현안과 주한미군 분담금 문제 등 다양한 현안들을 논의했을 것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예상됐던 합의문 발표도 없이 공동 기자회견 직후 곧바로 DMZ(비무장지대)로 출발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을 판문점으로 내려오게 한 결정적 대목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양자회동 자리에서 “미리 사전에 합의된 만남 아니냐고 말을 하던데 나 역시도 깜짝 놀랐다”면서 “정식으로 만나자고 제안한 것을 어제 오후 늦은 시간에 알게 됐다”며 판문점 이동을 결심한 시간이 한미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 이후였음을 설명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김 위원장에게 판문점 회동을 제안한 정확한 시간은 29일 오전이었다.

그만큼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김 위원장과 소통할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고, 이를 통해 교착 상태에 빠졌던 남북·북미의 대화 및 향후 한반도 비핵화 관련 구상을 나누는 상황을 주요 의제로 일찌감치 낙점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이런 영화 같은 비핵화 대화 과정에서 ‘주연’을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맡기고 ‘조연’을 자처한 문 대통령의 역할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실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에서 만나는 역사적 순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남측 지역으로 넘어온 후에야 자유의집에서 나와 김 위원장과 대면했다. 판문점에서 마주앉은 것도 북미 두 정상이었다. 문 대통령은 비록 전면에 나서진 않았지만, 존재감 하나만큼은 제대로 드러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문 대통령이 존재했기에 김정은-트럼프 두 정상의 만남이 현실화됐다는 여러 전문가의 진단이 이 같은 정황을 짐작케 한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간의 촉진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평가하면서 “우리 정부가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판문점이라는 장소를 제공하는 등 북미대화를 조율하고 있었던 부분은 전 세계적으로 보여주는 메시지가 굉장히 강렬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미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동 이후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김 위원장의 남은 과제는 ‘하노이 노딜’의 빈 칸을 채워 넣는 협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통해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해 한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북미 간에 비핵화 ‘실무협상’ 재개가 합의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2~3주 안에 실무팀을 구성해 북한과 협상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핵시설 폐기 외에도 핵무기 신고·반출 등과 관련한 김 위원장의 구체적인 의지와 실질적인 일정표를 받아내려 할 공산이 크다. 이에 김 위원장은 수차례 밝혀온 대로 영변 핵시설 폐기에 상응하는 납득할 만한 보상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판문점에서 벌어진 양측 간 ‘세기의 이벤트’ 2탄은 현재로선 미국의 심장부인 워싱턴 백악관이 유력해 보인다. 다만 판문점 양자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으로 언제든지 오라며 초대 의사를 밝혔으나, 김 위원장이 확답을 주지 않아 장소를 점치기엔 이른 시점이긴 하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2016년 6월 “김정은이 미국에 온다면 만나겠다. 회의 탁자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면서 더 나은 핵 협상을 할 것”이라고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물론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 조치와 북한이 요구하는 상응조치 간의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으면 북미 간 비핵화 대화는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민정훈 교수는 이에 대해 “이번 한미·북미 정상회담과 남북미 회동은 톱다운(Top-Down) 방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김 위원장도 비핵화만 가지고 대화를 진행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인 만큼 북한도 대화를 통해 원하는 비핵화 방식에 다가가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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