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남북정상회담 방법·시기, 원포인트·비공개 진행 등 다양한 시나리오

성사 여부는 4~6월 한반도 둘러싼 미중일러 정상외교 일정 따라 유동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두고 손을 내밀고 있다. 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4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4·27판문점선언 1주년이 근접한 시점까지도 북한 측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문 대통령의 일방적인 구애를 김 위원장이 애써 외면하는 듯한 모양새다. 자연스레 남북정상의 만남과 방향에 대해 숨 고르기를 하고, 차분하게 따져봐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7차 한미정상회담에서 남북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밝힌 것은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간 비핵화 회담의 불씨를 되살려 항구적 평화 정착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견고한 목표 인식이 배경에 깔려 있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 여부는 결국 북미 간 비핵화 회담의 성과에 달려있는 셈이다.

하지만 대미접촉을 통해 북미·대북 채널을 열어보려는 우리 정부의 노력에 김 위원장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문 대통령이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11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3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여지를 남겨두면서도 대북제재 해제에 목말라 ‘집착’은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을 향해 남북문제의 ‘당사자’가 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간 문 대통령이 자임해온 북미 관계에서의 중재자 또는 촉진자 역할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기능을 요구해온 것이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청와대 내에서는 대북 접촉 채널을 놓고 이미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앞두고 한 고위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대북특사 문제를 언급할 수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 이슈를 포함해 대통령의 언급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지만 그 직후, 다른 관계자가 “대북특사 파견과 관련한 구체적 언급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전혀 상반된 의견을 내놓은 것이 그 방증이다.

지난해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9·19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이뤄졌던 ‘대북특사’ 파견 문제를 놓고 북측과 여전히 조율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읽히는 대목이다.

이는 앞선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뤄진 ‘선(先) 특사 파견 공개, 후(後) 정상회담 추진’이라는 패턴과 달리 이번에는 문 대통령이 직접 정상회담 추진 의사부터 공개적으로 밝힌 것과 맞물려 남북 간 소통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지난 15일 장소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으며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추진하겠다고 밝힌 까닭으로도 풀이된다. 이는 애초 예상됐던 대북특사를 건너뛴 사실상 정상 차원의 ‘직접 제안’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만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여전히 난망한 가운데 문 대통령 자신의 판문점과 평양 재방문 가능성을 열어둔 파격적인 제안으로 평가되면서도 김 위원장이 답방 약속을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다시 평양에 가야 하는 점은 부담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어 보인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미정상회담으로 물꼬를 튼 만큼, 남북정상회담 등의 후속조치를 통해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 재개의) 토대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4차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여부는 4~6월 사이에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일러의 굵직한 정상외교 일정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5월과 6월 연거푸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다. 나루히도 일왕 즉위와 관련해 5월26일 방일 계획이 잡혀있고, 6월28~29일에는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재차 방일할 예정이다. 특히 문 대통령이 지난 11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방한을 요청한 만큼,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방문을 계기로 한국도 찾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당장 오는 26~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예정된 일대일로(一帶一路) 포럼을 전후해 김 위원장과 북러정상회담을 갖을 것으로 관측된다. 우리 정부로서는 김 위원장이 북러정상회담을 마치는 대로 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안을 구상할 수 있어 보인다.

특히 7차 한미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전달할 ‘비공개 메시지’가 있었다면, 이를 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다시 김 위원장의 입장을 5월이나 6월 방한 가능성이 제기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되는 시나리오가 유력시된다.

4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경우엔 2차 남북정상회담처럼 의전을 최소화하는 ‘원 포인트 회담’ 형식이 가능성 높아 보인다. 당시처럼 ‘비핵화 방법론’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 모두 대대적으로 의전을 갖춰 정상회담을 갖기에는 부담스럽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만일 남북 실무 접촉에서 북미관계와 비핵화 방법론 등에 대한 의견 조율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에는 역시 2차 남북정상회담처럼 비공개 진행한 뒤 회담 결과를 ‘사후 공개’하는 형식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한편으로는 4·27 남북정상회담 1주년인 오는 27일을 전후해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언급되지만, 시기적으로 한미정상회담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준비 기간이 부족한 대목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물론 북한이 우리 정부의 남북정상회담 제안을 당분간 아예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원하는 대북제재 완화에 대한 완고한 입장을 누그러뜨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김 위원장 입장에서 ‘빈손’이 될 가능성이 높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기대치가 그다지 높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경우,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하는 시기 이후로 남북정상회담을 미룰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4차 남북정상회담의 성사와 시기, 개최 방법 그리고 그 결과 등은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일러에서 정상 차원의 움직임이 계속 이어질 6월까지 지속적인 관찰 대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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