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데일리한국 산업2부 기자.
[데일리한국 이창훈 기자] 한국전력공사가 지난해 2000억원이 넘는 적자가 탈원전 정책 탓이 아니라고 해명한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한전은 지난해 실적 발표(22일) 다음날인 23일 지난해 영업손실은 탈원전 탓이 아닌 국제 연료가격 급등 때문이라는 내용의 해명자료를 냈다. 기업이 적자 원인에 대해 해명 자료를 낸 것도 드물지만, 국제 연료가격만을 콕 집어 주된 적자 원인으로 지목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그런데 한전의 해명과 달리 실제 한전 실적과 국제 연료가격의 추이를 보면, 국제 연료가격 상승이 한전 실적 악화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가 더러 있다. 대표적인 해가 2013년과 2014년이다.

국가에너지통계 종합정보시스템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2014년 LNG(액화천연가스) 수입 가격은 2013년보다 올랐는데, 같은 기간 한전의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4조원 이상 급증했다.

국제 원유 수입 가격은 2013년 배럴당 108.27달러에서 2014년 101.24달러로 소폭 하락했으나, 같은 기간 LNG 수입 가격은 톤당 768.2달러에서 848달러로 10.4% 올랐다. 그런데 이 기간 한전의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1조5190억원에서 5조7876억원으로 증가해 4조원 넘게 불어났다.

흥미로운 점은 원전 이용률이 2013년 75.5%에서 2014년 85%로 9.5% 늘었다는 것이다. LNG 수입 가격 상승에도 원전 이용률이 증가하면서 한전 영업이익이 4조원 이상 급증하는 ‘마법’이 벌어진 것이다.

국제 연료가격 상승이 한전 실적 악화로 이어지지 않았던 해는 또 있다. 2011년과 2012년이다. 원유 수입 가격은 2011년 배럴당 108달러에서 2012년 112.79달러로 올랐고, 같은 기간 LNG 수입 가격도 톤당 657.5달러에서 761.2달러로 상승했다.

그런데 한전은 2011년 1조205억원의 영업손실을 2012년 8179억원까지 줄여 약 2000억원의 손실을 개선했다. 한전이 지난해 적자를 국제 연료가격 탓으로 몰아가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한전이 지난해 적자 원인을 탈원전이 아니라 국제 연료가격 급등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한전의 소비자이자 주인인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한전이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해도, 한전과 발전 자회사에 종사하는 수십만 근로자와 전력 수급과 관련된 각종 기업들을 고려하면, 한전은 대통령의 ‘입’만 보고 움직이면 안 된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원전 가동을 전면 중단한 일본도 최근 들어 원전 사용량을 늘리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일본이 재가동 한 원전은 9기에 달한다. 지난해 일본의 원전 사용량은 2017년 대비 86.2% 급증했다. 일본은 올해 2기의 원전을 추가로 재가동할 계획이다.

끔찍한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이 원전 재가동에 돌입하는 것은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국가 에너지 수급은 이상이 아닌 현실이기 때문이다. 급진적인 탈원전 정책에 속도 조절이 필요한 이유다.

탈원전 정책의 문제점을 거론할 때마다 국민 안전을 내세운 반론이 뒤따른다. ‘위험한’ 원전을 이용하다가 일본·독일 등에서 벌어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사고가 일어나 국민 안전이 심대한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럴싸한 말은 문제의 본질을 감추고 감정을 부추긴다. 실제 우리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11월 안드레이 바비쉬 체코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40년 원전 무사고에 대해 강조한 바 있다.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반대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국민은 한전의 경영 악화, 원전 수출 위축, 전기요금 인상 등 급진적인 탈원전 정책에 뒤따르는 수많은 부작용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다. 한국원자력학회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10명 중 7명은 원자력 이용에 찬성한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한전이 정부 눈치보기에 급급해 지난해 적자를 탈원전 탓이 아니라고 해도, 국민은 다 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하늘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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