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국민들의 엇갈리는 여론 데이터로 분석해보니"

3가지 치명적 시선은 '기대감' '신뢰도' '비핵화' …비핵화 해법은 북미정상회담쪽으로 옮겨가는 모양새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데일리한국 전문가 칼럼=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2018년 4월 27일은 대한민국 역사에 기록될 날이다. 분단이후 세 번째 남북 정상이 만나는 날이기도 하지만 이 날의 모든 장면은 파격 그 자체였다. 오전 9시를 넘어 두 정상이 처음 판문점에서 만나는 장면은 훗날 두고두고 재현되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전만 하더라도 남북한 관계는 악화일로였다. 북한은 거침없는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전 세계를 위협했다. 미국 본토를 사정거리로 두면서 북한의 위협은 더 이상 가정이 아닌 현실이 됐다. 미국을 중심으로한 국제 사회의 압박과 제재 수위는 높아졌고 끝장을 볼 기세였다. 마주보고 달리는 자동차처럼 한반도는 ‘치킨게임’의 한복판에서 몸부림쳤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국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평화의 시작을 알리는 ‘판문점 스타일’을 가감없이 보여줬다.

중립국 공동경비구역(JSA)의 좁은 공간에서 12시간 동안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 것 자체가 놀라울 지경이다. 두 정상은 만나자마자 11년 간의 충돌과 대결의 구원을 깨끗이 털어내기라도 하듯 굳게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세계인들이 깜짝 놀란 장면은 바로 그 뒤에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손을 이끌고 판문점 북쪽 땅으로 넘어갔다. 소위 월경 또는 월북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진 셈이다.

리서치앤리서치가 데일리한국의 의뢰를 받아 지난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4월 28~29일 실시하고 5월 1일 발표한 조사(전국1009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12.9%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정상회담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순간’이 언제였는지 물어본 결과 ‘남북 정상의 판문점 첫 만남’ 순간이 57.5%로 절반을 넘었다.

10명 중 6명 가까이가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는 순간을 꼽은 것은 성과를 떠나 이번 정상회담은 만남 자체가 너무 소중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성과로 생각될 수 있는 ‘판문점 선언 발표’는 12.9%로 극적인 효과면에서 두 정상의 첫 만남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흥미롭게 지켜봤던 두 정상의 식수 행사와 정상회담 만찬 그리고 판문점 광장 환영식도 기대 이상의 훈훈한 장면이었지만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의 감동과 흥분을 넘어서진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남북정상회담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는 칭찬 일색이다. 야당의 비판과는 달리 다수 국민들이 지켜본 감동의 여운은 아직 가시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남북정상회담 직후 실시된 여론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회담에 대한 평가와는 달리 북한에 대한 시각과 비핵화에 대한 전망은 온도 차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를 아우르는 기대감,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신뢰도, 북미정상회담까지 이어지고 앞으로도 남북관계의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비핵화 등 세 가지의 시선으로 풀어보았다.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첫 번째 치명적인 시선은 기대감이다. 지금까지 남북관계를 보면 희망 이른바 기대감을 갖기는 매우 어려웠다. 분단이후 남과 북은 심각한 체제 경쟁을 해왔다. 멀게는 김신조 무장공비 일당으로부터 시작해 가깝게는 2010년의 천안함 폭침에 이르기까지 북한은 대한민국 체제를 시도 때도 없이 흔들어 왔다.

특히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은 남북 관계에 대한 기대감을 갖기는커녕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감으로 연결됐다. 물론 평화의 기운이 남북한 사이를 이어준 역사적 사건들은 여러 번 있었다.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의 역사적인 평양 방문으로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널리 퍼졌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았다. 북한은 노무현 정부 들어 핵실험을 감행했고 국제 사회를 혼란에 빠트렸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사이에 평화 정착을 강조했지만 북한의 태도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선택이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남북 관계를 되돌려 보겠다는 열정의 산물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 회담에서 남북관계의 장밋빛 청사진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남북 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이후 지난 연말까지 북한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미사일 쇼’로 우리 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의 공적으로 내몰렸다.

하지만 올들어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 관계 개선을 강조했고 평창올림픽이 지렛대가 되어 4.27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이번 정상회담을 보고난 후 우리 국민들의 기대감은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데일리한국 창간 기념 조사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85.8%는 긍정 평가를 내렸다. 부정적으로 보는 비율은 고작 7.2%에 그쳤다. 전체 응답결과보다 주목해야할 대상은 보수 성향이 강한 계층의 평가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남북정상회담을 ‘위장평화 쇼’로 주장하고 있다. 과연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이같은 부정적 평가가 보수층을 결집하는 데 도움이 될까.

60세 이상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는 80.6%로 다른 세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념 성향별로 보수층이라 응답한 계층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긍정평가가 70%를 넘었고 중도보수층은 무려 80%를 넘었다.

심지어 자유한국당 지지층 내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긍정평가는 3명 중 2명 수준인 66.4%였고 부정적인 평가는 20.2%에 그쳤다.

이 결과만 보더라도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에 대한 평가절하는 보수층 결집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첫 번째 치명적인 시선은 ‘기대감’이다. 역대 어떤 남북 상황과 비교해 보더라도 12시간의 판문점 드라마는 우리 국민들의 시선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너무 현실처럼 보이지 않아 꿈을 꾸는 것 같다는 시민들의 발언도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두 번째 치명적인 시선은 '신뢰도'다. 결국 얼마나 북한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평가와는 다른 의미다. 한국전쟁이후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을 비롯해 남북한 사이에 여러 차례의 합의가 있었다. 먼저 남북한이 최초로 통일과 관련하여 걸음마를 뗀 7.4 남북공동성명의 내용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희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만나지 못했을 뿐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평양의 박성철 제2 부상은 비밀리에 여러번 접촉을 가졌고 마침내 7개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공동성명 내용만 놓고 보면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문인 ‘판문점 선언’과 크게 다른 내용이 없다. 7.4 남북공동성명은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적인 해결과 무력행사를 배제한 평화적 방법을 강조한다.

상호 중상 비방을 하지 않고 무장 도발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서울과 평양 사이에 상설 직통전화를 개설하고 남북조절위원회를 설치하고 운영한다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되고 있다. 7.4 남북공동성명 내용을 보면 당장이라도 통일될 것 같은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8월에 모든 남북관계는 중단되고 말았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내용도 북한을 완전히 믿기엔 어려운 과거를 보여준다. 노태우 정권인 1990년부터 진행된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합의에 이른 결과물이 1991년의 남북한 기본합의서다. 이 합의서에 서명한 인물이 남한은 정원식 국무총리였고 북한은 연형묵 북한정무원 총리였다.

비중이 꽤 높은 인물들이라 합의서에 대한 무게감이 남달랐다. 남북한기본합의서로 만들어진 해빙무드는 이듬해 한반도 비핵화 선언으로 이어졌다. 이때는 최고 통치권자인 김일성 주식이 아직 건재할 때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6개항만 제대로 이행되었다면 사실상 지금의 북핵 위협은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비핵화 공동선언은 서문에서 ‘남과 북은 한반도를 비핵화 함으로써 핵전쟁 위협을 제거하고 우리나라의 평화와 통일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며,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목적을 밟히고 있다.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논했던 북한이 북핵으로 현재 유엔의 엄청난 제재를 받고 있는 국가가 되어 있는 현실이 너무나 역설적이다.

1994년에도 남북정상회담은 열릴 예정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개최 제의를 수락까지 했지만 상대인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한동안 대결 구도를 면치 못했던 남북관계가 다시 희망을 품게 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함께였다. 2000년 6월 김 대통령의 평양 방문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과의 만남으로 남북협력의 생명이 되살아났다.

6.15남북공동선언은 아주 구체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선언문 말미에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 약속이 담겨 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판문점 공동 선언문’에도 2000년의 데쟈뷰처럼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 내용이 포함돼 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사이의 협의 내용도 기존의 선언과 근본적인 차이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두 정상간 만남의 산물인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 내용은 2000년 남북공동선언문과 비교해 볼 때 큰 맥락의 차이가 없다. 심지어 서문 내용의 핵심이 6.15 공동선언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을 정도다. 즉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로 별다른 실천이 없었다는 점을 재확인하는 내용이다. 2007년의 합의 내용은 구체적인 현안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이행 방법까지 적시되어 있었지만 거의 실천되지 않았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언급한 백두산 관광에 대해서도 2007년 선언문에 잘 나타나 있다. ‘남과 북은 백두산 관광을 실시하며 이를 위해 백두산-서울 직항로를 개설한다’는 내용이다. 모두가 아는 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결국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기대감은 매우 높지만 북한에 대한 신뢰도는 획기적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데일리한국의 창간기념조사에서 ‘정상회담의 합의를 이행하는데 있어서 북한을 신뢰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물어본 결과 ‘신뢰할 수 있다’는 의견이 42%였고 ‘신뢰할 수 없다’는 응답이 43.3%로 팽팽했다.

완전한 신뢰를 아직까지는 북한에 주기 힘들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과거에 비하면 신뢰도는 많이 높아진 것으로 보이지만 불신의 벽 또한 여전히 높은 편이다. 특히 세대별로 보면 20대는 10명 중 6명 정도가 ‘정상회담의 합의를 북한이 이행할지’ 신뢰하기 힘들다는 의견으로 나타났다. 50대는 신뢰와 불신이 비슷했고 60세 이상은 불신 의견이 더 많았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 후한 점수를 준 50대와 60세 이상 세대지만 정작 북한을 신뢰할 수 있는지 물어본 결과 대답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의 한 축인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 반신반의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세 번째 치명적인 시선은 비핵화다. 공동선언문에서 비핵화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세가지 시선 중 기대감은 충만했다.

북한에 대한 신뢰도는 절반으로 나타났다. 마지막 치명적인 시선인 비핵화는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게 된 것으로 보인다. 공동선언문에서 비핵화에 대한 언급은 몇 차례 등장하지만 완전한 비핵화의 길로 가는 기간과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앞서 있었던 정상회담 합의와 선언들에서도 구체적인 비핵화 단계나 기간을 명시하는 내용은 없었다. 얼어붙었던 관계를 복원하는 첫 출발선에서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비핵화 과제에 대한 해법은 북미정상회담쪽으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리서치앤리서치가 수행한 데일리한국 창간기념조사에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의미가 큰 합의가 무엇인지를 물어본 결과 ‘올해 종전 선언 및 평화협정 전환 추진’이 36.7%로 가장 높았다. ‘한반도 비핵화 노력’이 29%였다. 비핵화 관련 내용보다 실현가능성이 높은 ‘종전 선언 및 평화협정 전환 추진’을 가장 의미있는 합의로 보고 있다.

비핵화에 대해서도 해결 기준이 아닌 ‘비핵화 노력’에 대한 의미 부여다. 결국 비핵화 의지에 대한 평가를 한 것이지 비핵화 해결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특히 통일세대로 이야기되는 20대는 더욱 현실적인 시선으로 비핵화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20대가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한 합의 사항은 ‘올해 종전 선언 및 평화협정 전환 추진’으로 거의 절반에 육박했다. 그 다음으로는 ‘이산가족 및 친척 상봉’이 16%로 뒤를 이었고 ‘한반도 비핵화 노력’은 15.5%였다. 현실적 판단 성격이 강한 20대는 ‘한반도 비핵화 노력’을 ‘이산가족 및 친척 상봉’ 정도의 수준으로 의미부여를 하는 격이다.

즉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 과제는 해결되지 못한 성격으로 보아도 무방해 보인다. 그렇다고 비핵화와 관련한 북한의 태도와 의지가 거짓이라고 보긴 어렵다. 북한이 처해있는 국제적 상황을 보아도 그렇고 김정은 위원장의 말처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면 한반도 정세는 파멸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비핵화에 대한 실질적인 진전이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12시간 동안 보여준 김정은 위원장은 태도를 본다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조사에서 ‘정상회담의 결과가 한반도 비핵화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본 결과 충분하다는 의견이 3명 중 2명정도 수준인 64.1%였다. 부족하다는 응답은 4명 중 1명 정도인 25.5%였다.

충분하다는 의미는 문제 해결은 아니지만 남북정상회담에서 할 수 있었던 수준으로 충분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즉 남북정상회담장에서 비핵화에 대해 할 수 있는 노력은 할 만큼 했다는 평가로 이해된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이제부터로 이해된다. 비핵화 과제는 북미정상회담으로 공이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해 얼마나 진전된 결과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우리 국민들의 기대감 그리고 북한에 대한 신뢰도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전설적인 듀오 가수 사이먼과 가펑클은 팝 애호가들의 마음을 녹이는 명곡을 많이 만들어냈다. 공전의 히트를 친 명음반도 여러장이다. 그 중에서 우리 국민들에게 특히 많이 알려진 곡은 ‘Bridge over Troubled Water(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라는 노래다. 이 노래가 많은 이들을 감동시킨 이유는 우리 인생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가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친구 하나 찾을 수 없을 때 험한 세상을 건너는 다리가 되어 드릴께요’라는 가사 내용은 힘들고 지칠 때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다. ‘견디기 어려운 저녁이 찾아오면 제가 위로해 드릴께요, 그대의 편이 되어 드릴께요’라는 후반부 가사는 더욱 진정성이 느껴지는 구절이다. 지난달 27일 중립국 위원회로 향하는 푸른색의 도보다리(풋브릿지)를 함께 산보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동행은 우리 국민들이 가장 기대하고 희망하는 모습이었다. 한반도에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대한민국과 북한의 지도자는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역사를 이끌어가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뉴스를 통해 접했던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의심을 다 털어내기는 쉽지 않다. 불과 몇 년 전에 고모부를 비롯해 반동분자를 고사포로 처형했다는 소식은 지금 생각해도 섬뜩한 이야기다. 지난 연말까지만 하더라도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를 얼어붙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김 위원장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북한의 인권을 거론하며 김 위원장의 진위를 의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은 평화의 시작을 알리는 첫걸음이었다. 문 대통령의 표현대로 100% 신뢰가능한 ‘길동무’로 거듭날지 여부는 오롯이 김 위원장에게 달렸다. 남북정상회담은 한 편의 드라마였고 한 편의 평화 축제였다. 우리 국민들을 비롯해 지켜보는 전 세계인들의 감동을 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큰 박수와 환호를 보내더라도 지극히 당연한 반응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발 더 들어가 남북정상회담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치명적인 서로 다른 세 개의 시선과 마주하게 된다. 하나는 남북정상회담의 계기로 한반도에 봄바람이 불고 미소 짓는 가을바람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한편으로 이런 기대감 속에 북한에 대한 신뢰는 냉탕과 온탕을 오락가락하는 현실이다. 반신반의하는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난 수십년간 북한이 보여온 말바꾸기와 벼랑끝 전술에 따른 피로감 때문으로 해석된다. 12시간의 남북정상회담은 축포를 쏘아 올렸지만 큰 과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바로 비핵화 문제다.

비핵화 문제를 바라보는 치명적인 시선은 아직 훈훈한 미소로 바뀌지 못했다. 북미정상회담에서 어느 정도 해결될지 가늠조차 쉽지 않다. 섣부른 낙관이나 어설픈 우려는 문제 해결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난 수십년 간의 남북관계를 되돌아볼 때 말잔치는 풍성했다. 결국 진정성 있는 이행만이 우려를 불식시키는 만병통치약 역할을 할 것이다. 아직도 남북정상회담의 파격적인 장면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끊어진 한반도를 하나로 이어주는 사이먼앤가펑클의 ‘Bridge(다리)’가 되어주길 소망한다.

■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를, 고려대에서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길리서치 팀장에 이어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치밀한 분석력을 겸비해 정치 판세를 읽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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