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오너 리스크(owner risk)가 수많은 사람에게 피해 입히고 국가산업의 위상도 뒤흔들어 놓아"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전문가 칼럼=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2월 17일 한진해운의 파산을 선고했다. 40년간 한국을 대표하던 국적 선사인 한진해운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한진해운이 남긴 것은 한마디로 허무함이었다. 협력업체를 포함한 약 1만 명의 실업자, 그리고 휴지조각이 돼버린 주식으로 큰 손해를 본 투자자들이 억울함과 지친 표정으로 한진해운이 남기고 간 어두운 그림자만 망연자실 바라볼 따름이었다. 이번 파산선고는 대마불사(大馬不死) 관행을 깬 역사적 사례라는 점에서 또 한번 이목을 끌었다.

세계 7위의 해운산업 강자가 무너지는 과정은 그야말로 허무 그 자체였다. 1977년 한진해운을 설립한 고(故) 조중훈 회장과 그의 셋째 아들 故 조수호 회장은 주요 항로를 개척하고 국내외 업체를 인수·합병하며 한진해운을 국내 최대, 세계 7위의 해운사로 성장시킨 주역이었다.

하지만 2006년 조수호 회장 별세 후 부인인 최은영 전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으면서 회사에 위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한진해운이 파산까지 이르게 된 결정적 이유를 되짚어 보는 것은 유사 사례 예방차원에서라도 의미가 있다. 2008년들어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해운업 불황 탓도 물론 한진해운 경영위기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경영 경험이 전무한 오너의 판단 오류때문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 전 회장은 2008년 직전의 해운업 호황기 시절 당시의 용선료보다 2~3배 비싼 금액에 장기 용선료 계약을 여러건 체결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이 불황에 빠지면서 용선료가 폭락했다. 이로인해 당시 시세보다 5배나 더 비싼 용선료를 지불하게 됐고, 이는 3년 연속 적자의 길을 걷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이러다보니 파산이라는 파도는 마치 종착역에 도달하듯 한진해운을 덮치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처럼 사태를 키워 온 최은영 전 회장은 도의적 책임을 지기는 커녕 한진해운을 떠날 때 연봉과 퇴직금 97억원을 챙겨갔다.

최 전 회장은 한진해운 자율협약 전 내부정보를 이용해 미리 주식을 처분함으로써 10억 원의 손실을 줄인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재벌의 도덕적 해이의 극치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닐 수 없다.

한계기업의 구조조정 골든타임을 놓쳐 부실을 더 심화시킨 정부와, 부실 경영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은행의 책임도 물론 작지 않다.

특히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직후 선박들이 정상 운항을 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생긴 물류대란을 미리 예상하고 대비하지 못한 것은 정부의 분명한 실수다. 변명의 여지 조차 없어 보인다.

이로써 한국 해운업에 대한 신뢰가 급전직하 추락하게 됐고, 그렇지 않아도 세계 경기침체로 인한 물동량 둔화, 용선료 하락으로 어려운 시기에 있는 해운업계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게 됐다.

따라서 국내 해운 및 항만 산업이 다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자금 지원, 세부 계획수립 등의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어찌보면 반드시 해야할 과제다.

이번 한진해운 사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대통령 탄핵 등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실력 없는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 두눈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한진해운의 경우는 특히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무능력한 CEO로 인한 '오너 리스크(owner risk)'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국가 산업의 위상을 뒤흔들어놓는 결정적 악재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정작 사태의 책임자는 자신의 몫만 챙기고 아무렇지 않은 듯 새로운 일에 매달리고 있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상식적으로 고통 분담은 책임이 큰 순서대로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옳지 못한 일들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새로운 대책을 마련하기에 앞서, 이와 같은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사태를 초래한 책임자의 책임을 철저히 추궁하고 그에 따른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법적인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고, 이에 더해 도덕적 차원에서도 누릴 자격이 없는 이익을 챙겼다면 다시 환원하는 것이 옳다. 기존에 보유하던 자산은 차치하더라도, 부도덕하게 챙긴 이익은 해고로 고통 받는 직원들을 위해 자녀의 교육비 혹은 생계비로 쓸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하길 바란다.

빽이 실력을 이기는 사회, 돈으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사회, 그 뒤처리는 국민들이 하는 상황이다. 지금의 병폐를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끝까지 지치지 않고 국민의 손으로, 유권자의 손으로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바꿔 나가야 한다.

■ 조하현 교수 프로필 :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한국 금융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연세대 상경대학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정치나 국제환경 등 외부 요인과 연계된 경제의 역할에 특히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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