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송곳’, 현대 조직의 피로 보여주는 드라마… 주인공 이수인은 'No맨'

'낭중지추'는 다양성에 기여한다… "송곳 같은 인물 보면 다양성 생각하라"

천영준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데일리한국= 천영준 연세대 책임연구원 칼럼] "뭐, 그런 친구가 다 있어. 술자리에서 한 잔도 안 마시고 말이야." 흔히 말하는 조직에서 ‘높은 사람들’도 뒷담화를 한다. 특히 자기 밑에 있는 사람들과 관련된 뒷말을 할 때 그 파급 효과가 크다. 아랫사람들이 리더를 욕할 때는 불만을 공유하는 수준에 그치지만, 윗사람들이 하급자와 관련된 부정적인 정보를 나누게 되면 실제 인사나 업무 배치에 반영되기도 한다.

어떤 리더들은 유능한 부하들만 데리고 있지만 자기 밑의 사람들을 의심하는 경향이 습관처럼 박혀 있다. 그래서 ‘뒷말’을 듣고 그들 간의 충성 경쟁을 유도하여 힘빼기를 하거나 서로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즐기기도 한다. 그런데 유난히 직언을 자주 하며, 모두가 ‘Yes’라고 하는데 ‘No’라고 눈치없이 자기 주장을 하는 부하가 있다고 치자. 그는 아마 상사들의 대화 속에서 ‘단골 메뉴’가 될지도 모른다. 설사 그가 가장 능력 있는 직원이라 할지라도 쉽사리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송곳’, 현대 조직의 피로 보여주는 드라마

작년 이맘때 방영되었던 tvN 드라마 ‘미생’이 조직 안의 정치와 비합리성을 그리는 작품으로 유명했다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송곳’(JTBC, 토요일 밤 9시40분 방영)은 회사들의 다양성 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이수인(지현우 분)은 유통업체 대리다. 그러나 유난히 불의를 참지 못하고, 경영 합리화라는 목적 하에 조직을 좌지우지하는 경영자들에게 ‘대드는’ 송곳과 같은 존재다. 그는 원래 육군사관학교 출신 생도였다. 10대 때부터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담임선생에게 차별받은 경험이 있는 수인은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출세밖에 없다는 각오로 열심히 공부해 육사에 진학했다. 그러나 군대는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선이 굵고 강직한 조직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송곳 속 사관학교 집행부는 때때로 젊은 장교들에게 특정 정당에 투표하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당당하게 ‘기권’을 선언하는 수인은 일종의 ‘송곳’ 같은 존재처럼 여겨졌고, 결국 학교에서 완전히 문제아로 찍힌 상태에서 장교의 길을 포기하고 만다. 육사는 졸업했지만, 고급 군인으로서의 탄탄대로는 포기해야 하는 게 수인의 운명이었다.

시청자의 시선으로 보면 주인공 수인은 유난히 윤리적 결벽증이 심한 측면도 있는 인물이다. 꼭 부패한 사람만 존재하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단면을 지닌 조직에 소속되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어디 가서 할 말은 하고 살아라’라고 했던 노동자 출신 아버지의 어린 시절 기억을 똑똑히 안고 있는 수인은 결국 출세 길을 포기했다. 그리고 유통업체 직원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평범한 삶 속에서는 부패나 비윤리적 행위 따위에 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그가 속한 유통기업 소속 마트도 비정규직 대 정규직, 경영자 측 대 노조 간의 갈등으로 인해 정치적 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생활인으로서 조직에 순응해 살아가고자 하는 유혹과 깨끗한 시민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신념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한다. 결국 수인이 선택한 것은, 일반적인 회사원들과는 다른 ‘송곳’과 같은 길이었다. 수인은 노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부당해고 이슈가 발생했을 때 상대적 약자의 편에 서기로 한다. 어쩌면 그는, 엘리트 사회 속에서 한쪽 길을 바라보며 살아가도록 훈련 받은 인재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드라마 송곳은 지금껏 우리 기업과 조직들이 빠르게 성장하다 보니 좀처럼 눈여겨보지 못했던 ‘을(乙)들’의 이야기를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현대 조직의 ‘피로’(疲勞)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낭중지추'는 사실 다양성에 기여하는 인재다

낭중지추(囊中之錐·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라고 했던가. 유난히 송곳 속 수인처럼 능력은 있지만 모두와 조화하여 살아가지 못하는 공동체 구성원을 지칭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사실 수인의 윤리적 결벽증은 상사들을 피곤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수인 같은 인물들은 조금만 눈감고 넘어가도 될 일을 굳이 키우는 성향이 있다. 그리고 성과에 민감한 리더들에게는 ‘시끄러운 일’이 자기 부서 안에서 일어난다는 인식 때문에 눈엣가시처럼 여겨지기 쉽다. 어디 그뿐인가, 기분 좋게 상사에게 듣기 좋은 말 한마디면 일사천리로 해결될 사안을, 굳이 다양한 각도로 분석해 가며 의사결정자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눈치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머리 꼭대기 위에 올라서 순종하지 않으려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수인 같은 유형이 정말 보기 싫은 상사들은 그가 공동체 안에서 왕따를 당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특히 충성 경쟁이 심한 부서에서는 강직한 조직원은 ‘시범 케이스’처럼 홀대를 당하기도 한다. 윗사람에게 대들었다가는 어떤 말로를 당하는지 똑똑히 보여주는 마루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기성 세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 20대 중·후반의 수많은 초급 직장인들이 조직 안에서 부적응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 말이다. 선배 세대에 비해 유난히 잘 배운 그들은 상사의 눈치를 보며 행동해야 할 시점에 "왜 그런데요?"라고 물어보기도 하고, 조직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부드럽게’ 처리해야 할 사안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들을 가리켜 기성세대는 전체를 생각하지 못하는 행동 방식, 조직의 관점이 결여된 처신이라고 비판하기 쉽다. 그렇지만 때때로 리더들의 정치적 이익 때문에 대의(大義)가 희생될 때, 젊은이들이 할 말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잠깐 동안 프리랜서가 되기를 무서워하지 않는 이들은 과감하게 퇴사를 하기도 한다.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또라이’로 인식되기 쉽지만. 송곳의 주인공 수인처럼 시대의 아픔 속에서 자라지 않았다 하더라도 조직 안에서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는 젊은이들이 꽤 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막연하게 낭중지추 같은 인물들을 위험분자 또는 관리 비용(governance cost)을 발생시키는 원인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송곳 같은 인물 봤을 때는 다양성 생각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목소리와 색깔을 가진 사람들을 조직에서 감싸 안아야 하는 이유는 있다. 바로 조직 다양성 때문이다. 한쪽 생각만 가진 조직은 위기 때 매우 취약하다. 국민적인 존경과 지지를 받았던 기업이 성추행이나 부당해고와 같은 개인윤리적 이슈 때문에 무너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평소에 낭중지추 같은 조직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 여유와 포용력만 있어도 쉽사리 발생하지 않을 만한 스캔들이다. 조직의 집행부가 "뭐야, 이상한 놈"이라고 그들을 밀어낼 게 아니라, 유별나고 예민해 보이는 그들을 탄광 속 카나리아처럼 여길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내부자의 윤리적 제보를 가시돋친 말처럼 이해할 게 아니라 다양성 전략의 일종으로 받아들이는 게 현명하다. 한쪽 상황으로 조직이 기울었을 때 과감하게 자기 할 말을 하는 ‘악마의 변호인’ 같은 존재들처럼 말이다. 직급 낮은 직원들뿐 아니라 최고 리더와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의사결정자들도 한번쯤 돌이켜볼 일이다. 모두가 상사의 의중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예스맨'이 되어갈 때, 그의 사업에 대한 충정과 사랑으로 가끔 ‘No’라고 할 수 있는 용기는 없는지.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 리더들은 꽤 직언을 잘 하는 부하들을 몇 명씩은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좀 더 기를 펴고 조직에서 살아갈 수 있게끔 도와준다면, 다양성을 바탕으로 우리 기업들이 구글(Google)이나 애플(Apple) 못지 않게 훌륭한 기업 문화를 갖는 것도 꿈은 아닐 것 같다.

■천영준 책임연구원 프로필
연세대 경영학과- 연세대 정보산업공학 석사, 기술경영협동과정 박사- 다음소프트 연구자문역- 합창단 Chantez a dieu, 오페라단 '청 ' 자문위원-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현)/저서 <직장인 4대 비극> <바흐, 혁신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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