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김영삼 정부 시절, 수출 경제 성장과 함께 한류 문화도 발전

IMF 경제위기와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도 드라마 수출은 크게 늘어

최근 한류 영역 확대되면서 마침내 경제가 문화 한류의 옷 입기 시작

박장순 홍익대 영상대학원 교수
[데일리한국= 박장순 홍익대 영상대학원 교수 칼럼] 자칫 큰 일 날 소리다. 그러나 경제 없이 문화는 없다. 경제적 여유가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88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인 1987년 우리나라 수출 규모는 470억 달러였다. 올림픽이 열린 1988년의 수출 규모는 전년 대비 27.7% 성장한 600억 달러였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993년 820억 달러, 2년 뒤인 1995년1,200억 달러 수출을 달성한다. 전년 대비 30.2%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꿈의 1천억 달러 수출 시대를 연 것이다. 1987년은 우리나라가 방송 사상 처음으로 TV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수출한 방송콘텐츠 수출의 원년이다. 1993년은 드라마를 처음으로 수출한 드라마 수출의 원년이다. 1995년은 수출 프로그램의 장르가 애니메이션에서 드라마로 확대되는 한류 정착기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의 수출이 백억대에서 천억대로 그 규모를 확장해가는 시기에 문화 수출도 기본적인 확장의 토대를 마련한다.

경제는 문화에 선행한다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행 중이던 1964년 1억 달러 수출 고지를 달성하고, 그로부터 31년 만인 1995년 최단 기간에 1천억 달러 수출국가 대열에 합류하게 된 그 시절은 우리의 자부심이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세계화의 토양이 되었다. 또 예술과 사상, 학문이 꽃피는 백화제방(百花齊放) 시대를 여는 문화 번성의 기제가 되기도 한다. 노태우정부(1988~1993), 김영삼정부(1993~1998)로 이어지는 시기는 대통령을 풍자 대상으로 삼는 탈권위주의를 허용하고, 반정부적 성향의 작품과 언론의 사회적 비판 기능을 허용했다. 정치적으로 탄압받던 많은 문인과 언론인들을 감형하거나, 석방했다. 때론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이 같은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가 오늘의 한류를 있게 한다.

경제 위기 속에서 빛난 문화 수출 가능성

우리나라는 1997년 말 사상 초유의 IMF(국제통화기금) 국가 부도 위기 사태를 맞는다. 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고, 온 국민은 혼란의 도가니에 빠진다. 실업자가 속출하고, 가족의 해체와 가정의 붕괴가 이어졌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해외 시장에서는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MBC)가 13억명 중국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한국 드라마 붐을 일으키고 있었다. 드라마 수출 1천만 달러 시대를 견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 경제의 종속변수로만 여겼던 문화 수출이 IMF 경제 위기 속에서 우리의 미래 먹거리인 국가 전략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문화 수출의 독립적인 행보는 그 후 10년 뒤인 2008년 미국의 리먼 브라더스 사태에서 비롯된 세계 금융 위기 상황에서도 그대로 다시 재현된다. 이 시기 한국 경제는 1998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130억 달러의 입초(入超)를 기록한다. 금융 위기의 여파가 경제 펀더멘탈이 튼튼하다고 자랑하던 한국을 출초국가에서 입초국가로 전락시키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상반되게 드라마 수출은 세계 금융 위기 속에서도 전년 대비 13.5%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1억7천만 달러의 수출을 기록해 문화 수출이 더 이상 경제의 종속변수가 아님을 확인시켜준다.

뱅코우처럼 작지만 큰 문화 한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하나인 <맥베드>의 1막은 노르웨이군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맥베드와 뱅코우가 병사들을 이끌고 당컨 왕이 있는 본진으로 복귀하던 중 벌판에서 세 명의 마녀들과 조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때 마녀(3)은 맥베드에게 “장차 왕이 되실 분”이라는 엄청난 예언을 한다. 이 말을 들은 동료 장군 뱅코우는 “너희들이 시간 속에 있는 씨앗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나의 미래도 예언해 보라”고 명령한다. 그러자 마녀(1)과 (3)이 “맥베드보다는 작지만 크신 분”, “장차 왕의 조상이 되실 분”이라는 예언을 한다. 왕이 되는 맥베드보다는 작지만, 맥베드의 뒤를 잇는 ‘왕의 조상이 되실 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뱅코우는 분명 맥베드보다 큰 인물이다.

문화 수출 규모는 뱅코우처럼 작다. 2013년 기준 49억2,300만 달러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 규모는 같은 해 기준 세계 7위로 2조2,100억 달러에 이른다. 언감생심 문화 수출의 비중을 따질 수도 없는 형편이다. 0.19%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 한류는 수치로 계산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10~20대 청소년층부터 70~80대 노년층까지 아시아를 포함해 미주·유럽·중남미·아프리카·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 여섯 개 대륙에 걸쳐 넓게 분포되어 있는 문화 한류의 소비 주체들로부터 나온다. 이들이 갖고 있는 문화 한류에 대한 충성도는 우리 경제의 미래를 떠받쳐줄 힘의 원천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뱅코우처럼 작지만, 문화 한류는 한국 경제보다 더 큰 가치이며 실체일 수밖에 없다.

문화 한류의 옷을 입기 시작한 한국 경제

이런 문화 한류의 가치를 경제 주체들이 조금씩이나마 새롭게 인식해가고 있다는 것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도 다행스런 일이다. 서비스 한류, 특히 관광 부문에서는 서비스 주체들이 드라마 촬영지 방문과 같은 기존의 단순 관광 형태를 코스화·지역 네트워크화해서 이를 정교한 문화상품으로 다시 재가공하고 있다. 유통 한류 분야에서는 백화점과 대형 마트들이 연예기획사와 손잡고 한류 아이돌 스타들을 이용한 이전과는 다른 차별화된 형태의 문화 사업화를 시도하고 있다. IT, 전기 및 전자, 자동차를 비롯해 화장품, 섬유, 식음료, 잡화 등 생산 한류 분야에서도 이 같은 새로운 형태의 문화 한류 옷 입히기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드라마와 K-pop에서 시작된 문화 한류는 이제 온라인게임, 영화, 만화, 출판, 웹툰, 한글, 한식, 한복, 패션, 스포츠, MICE(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 K-뷰티 등 그 영역을 확장해가면서 마침내 경제가 문화를 입는 문화 한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박장순 홍익대 교수 프로필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미국 알리안트 국제대 연출 석사, 서강대 영상학 박사-EBS 편성기획 차장·PD, KBS미디어 국제사업부장, 위성방송 스카이 겜TV 대표이사, 부산콘텐츠마켓 공동집행위원장- 홍익대 영상대학원 교수(현) 국제미래학회 미래한류문화위원장(현) 한국방송비평학회 학술담당 부회장(현)/<한류학 개론> <전환기의 한류> <한국 인형극의 재조명> 등 저서 1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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