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을질이 퍼지면서 '막장'되는 조직 늘어… 절대빈곤 시절 참았던 게 폭발

작은 기업 인턴으로 재취업한 70세 전직 대기업 사장 얘기 담은 영화 '인턴'

'인턴'에서 을질 대책 실마리 발견… 리더의 따뜻한 가슴과 자신의 경험 전수

천영준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데일리한국= 천영준 연세대 책임연구원 칼럼] ‘갑(甲)질’과 ‘을(乙)질’은 왜 자꾸 반복되는 것일까? 가진 사람은 자꾸 힘을 행사하려고 하고, 그에 대해 ‘개기고 저항하는’ 부하들이 조직 안에서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갑질·을질로 막장되는 조직들… "과거 참았던 게 폭발"

얼마 전 필자의 지인 중 전자제품 회사에서 임원을 지내고 있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경영층 인사 평가 가운데 조직 장악력에서 현저히 낮은 점수를 받았는데, 가만 돌이켜 보면 개념 없는 젊은 직원이 우리 부문에 너무 많은 것 같다.’ 사실 임원이 할 소리는 아니다. 부하 직원들의 업무 태도나 일상을 돌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확한 정황 판단도 아닐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임원은 바로 밑의 부·차장급 중간 관리자들에게 보고를 받고 부서의 목표와 성과를 점검한다. 따라서 그들의 눈과 귀로 들어온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단한 계약직’ 신분인 임원의 입장에서 일 이외에 신경 쓸 수 있는 것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해이해진 기강을 염려하고 있다면, 그 장면은 사실 실무 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갑질’과 ‘을질’의 반복으로 인해 포착된 것일 수 있다. 스스로 노력한 것 이상으로 성과를 쥐어짜고 권력을 향유하려는 중간 관리자들과 그에 대해 개념 없고 절도 없는 태도로 태만하게 임하는 사원들 간의 갈등 말이다.

왜 이렇게 조직이 막장이 되었냐고? 이유는 단순하다. 예전에는 우리 모두가 가난했다. 한국인이 월급쟁이 생활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에 대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사람을 뽑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산업 현대화로 인해 인적자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절대빈곤을 벗고 사람들의 일상 속에 여유가 넘치게 되면서 교육에 의한 인적자본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 머리가 굵은 대학 졸업생이 많아진 것이다. 게다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 이후 전체 경제 체제의 구조조정을 경험하면서 기업 경영 논리가 대거 서구화됐다. 조직의 체질은 개선됐지만 문화는 건조해졌다. 회사의 정체성과 자신의 정체성을 동일시하지 않는 세상이다. 따라서 자신의 시간, 권한, 복지와 같은 요소들을 둘러싼 '지대 추구적 갈등'(rent-seeking conflict)이 회사에서 넘쳐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옛날에는 ‘그래도 우리 회사인데 뭐’라며 서로에게 참아주던 게 이제는 폭발하는 상황이다.

‘을질’ 원인은?… 자신의 능력에 비해 회사가 덜 보상한다고 생각

그렇다면 회사 안에서 갑질과 을질의 얽히고 설킴으로 인한 역학 관계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을까. 일단 갑질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루었으므로 생략하기로 하자. 그렇다면 을질의 원인에 대해 진단해봐야 한다. 우선 앞서 이야기한 대로 경제 성장으로 인해 젊은이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진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자신의 노동에 대한 기대 가치가 상승하면서 반대급부로 회사에서 실망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불안한 고용 구조도 한몫한다. 일반적인 대학 졸업생은 대기업 정규직이 되지 않으면 월봉 200만원 이상을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게다가 줄어들고 있는 조직 안에서의 정년, 노동개혁으로 인해 보다 유연화된 임금 구조 등이 사실상 조직 충성에 대한 동기를 저하시킨다. 과거에는 자신의 가난을 벗게해준 회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힘들어도 꾹 참고 5-10년을 버텼다. 그리고 점점 나이가 차고 직급이 올라가자 그 회사에 인간이 맞춤화되어 이직이 힘든 ‘직무 특수적 투자’(job-specific investment)의 심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나 요즘은 개인이 취득할 수 있는 정보가 너무 많고, 스마트폰으로 인해 회사 안에 있으면서 직원들이 자유롭게 ‘딴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다양해졌다. 조직의 사활에 촉각을 곤두세울 만큼 집단주의적 가치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연히 젊은 직원들은 태생적인 불만을 안고 조직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자신의 능력·인격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데 회사가 그만큼 대가를 지불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대학 졸업생의 70%가 우리나라 대기업이 원하는 사원의 인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겠는가. 이런 풍토에서 을질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열심히 일해봐야 부서장의 이해관계에 의해 성과는 온데간데 없고, 자신에게는 또 다른 명령과 감정적 복종만이 요구되는 공간을 개인이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급기야는 공무원 못지 않은 느슨한 업무 처리 방식이 팽배하게 된다. 이런 현상이 누적될수록 조직은 위기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을질의 대책은 따뜻한 관심과 학습밖에 없다

그렇다면 을질에 대한 대책은 어디 있을까? 방법은 한 가지다.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1960-70년대 생 회사원들이 태어나면서 겪었던 사회문화적 환경과 다른 공간에서 자란 90년대 생들에게 똑같은 행동 양식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고 무작정 회사 차원에서 교육 프로그램에 투자하는 것도 어렵다. 당장 필요한 것은 멘토-프로티지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상사, 감성적으로 부하의 관심을 이끌 수 있는 리더의 배려다.

영화 ‘인턴’에서도 그런 실마리가 발견된다. 70세의 전직 대기업 부사장 벤 휘태커(로버트 드 니로 분)는 노인들의 재고용 프로그램을 통해 인터넷 쇼핑몰 기업에 재취업한 ‘인턴’이다. 그는 자신이 과거에 일했던 회사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조직에서 30살의 대표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 분)을 상사로 모신다. 벤은 여러 가지로 회사와 어울리지 않았다. 혁신적인 IT 기업에서 항상 정장으로 일했고, 맥북을 바탕으로 한 작업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벤은 남다른 센스와 업무처리 능력으로 ‘시키지 않아도 일을 잘하는 인턴’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능력은 동료 직원들의 감정을 살필 줄 알고, 그들이 심리적으로 필요로 하는 조언을 제공할 수 있는 멘토의 덕망이었다. 전사적인 전략을 짰던 경험도 있지만, 직원들의 마음을 두루두루 헤아리는 경험도 해본 사람이었으니, 220명 수준의 회사 직원들이 속 편히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꿰뚫고 있는 셈이다.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 속에서 회사의 창업자 줄스는 CEO의 자리를 내려놓고 전문 경영인이 그 자리를 대체하도록 요구받으며 슬럼프에 빠진다. 그 가운데서 70세의 인턴 벤은 가장 따뜻한 위로와 조언을 제공한다. ‘1년 반 전 작은 기업을 220명 규모의 쇼핑몰로 성장시킨 사람이 누구인지 잊지 말라’며. 영화 인턴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앞으로의 시대에 필요한 조직 관리력은 똑똑한 리더의 따뜻한 가슴,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부하들에게 흔쾌히 전수해줄 수 있는 학습 구조(learning structure)라는 것이다. 이것이 어린 직원들의 대책 없는 을질에 대한 해법이기도 하다.

‘회사는 당신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러니 당장 일하라’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재 교육 부서가 촘촘히 짠 재교육 커리큘럼이 업무에서도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의지가 있는 리더가 직접 자신의 고민과 지식을 차분히 들려주는 암묵지(tacit knowledge)의 전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조직원들이 어떤 심적 상태를 갖고 있는지 이해하고 배려하는 상사, 보다 효과적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리더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구조도 절실하다.

■천영준 책임연구원 프로필
연세대 경영학과- 연세대 정보산업공학 석사, 기술경영협동과정 박사- 다음소프트 연구자문역- 합창단 Chantez a dieu, 오페라단 '청 ' 자문위원-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현)/저서 <직장인 4대 비극> <바흐, 혁신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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