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더스·트럼프 후보, 영국 코빈 노동당 당수… 양극단 돌풍의 주역

아웃사이더 돌풍 배경은?… 경제·정치적 양극화, 진솔한 스타일 선호 등

한국 정치에서도 중도 노선만으론 부족, 양극단 아우르는 생활정치 필요

버니 샌더스(왼쪽부터), 도날드 트럼프, 제러미 코빈.(사진 출처=연합뉴스)
[데일리한국= 김광덕 뉴스본부장 칼럼] 극단의 정치인들이 거센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좌·우 양극단의 아웃사이더(비주류)들이 정치판을 흔들고 있다. ‘이단아’ 취급을 받았던 ‘톡톡 튀는 정치인’들이 당내 선거에서 괴력을 보여주고 있다. 제3세계 주변국가의 얘기가 아니다. 의회민주주의 모델 국가인 미국과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과연 정치적 지각 변동을 가져올 것인가? 전세계 정치분석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의 샌더스·트럼프, 영국의 코빈… '아웃사이더 돌풍'

주인공은 미국의 샌더스와 트럼프, 그리고 영국의 코빈이다. 우선 부동산 재벌인 도날드 트럼프 (69)는 진짜 괴짜다. 그는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초반에 허리케인 이상의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13세 소년 시절 음악 교사에게 주먹을 휘둘러 퍼런 멍이 들게 만들었던 문제아였다. 그는 최근 한국과 관련해 “우리는 군대를 (한국에) 보내고 그들을 방어할 태세를 갖추지만 우리가 얻는 게 하나도 없다”면서 “이는 말도 안되는 마친 짓”이라고 험한 말을 퍼부었다. 그는 이민자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원색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최근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한 장벽 설치 필요성을 역설했다. 트럼프는 일부 여성 인사들에 대한 성차별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당내 유일한 여성 대선후보인 칼리 피오리나가 TV화면에 등장하자 “저 얼굴 좀 봐라! 누가 저 얼굴에 투표하고 싶겠느냐"고 소리쳤다. 그는 지난달에는 공화당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자신에게 '송곳 질문'을 던진 폭스뉴스의 여성 앵커가 마치 월경으로 예민해진 탓에 자신을 괴롭혔다는 식으로 비하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런데도 괴짜 트럼프가 현재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미국 정치인 중 유일하게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소개하는 버니 샌더스(74)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 버몬트주 상원의원인 샌더스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처음 실시되는 지역의 여론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큰 지지율 차이로 추월하고 있다. 지난 13일 CBS 여론조사에서 샌더스는 뉴햄프셔주에서 52%대 30%, 아이오와주에서 43%대 33%로 힐러리를 제쳤다. 그는 1%의 상류층을 겨냥하면서 ‘99%의 세상’이란 슬로건을 외치고 있다. 그는 버몬트주의 벌린터시 시장을 지낼 때는 대형 식료품 체인 대신 소비자가 운영하는 협동조합을 만들어내는 등 친서민 행보를 걸어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대형 금융기관 해체와 자유무역정책 반대 같은 다소 과격한 정책도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와 샌더스는 당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단계이지만 제러미 코빈(66)은 이미 당수 선거에서 ‘혁명’에 성공했다. 지난 12일 실시된 영국 노동당 당수 경선에서 코빈은 1차 투표에서 59.5%를 득표해 새 당수로 선출됐다. 21년 전 1994년 토니 블레어가 노동당 혁명을 추진하면서 압도적 승리를 거둘 때의 득표율(57%)을 웃돈 성적이다. 코빈은 노동당 의원 중 가장 강경한 좌파로 평가받을 정도로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이코노미스트는 코빈에 대해 “노동당 의원 232명 중 가장 왼쪽에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긴축에 반대할 뿐 아니라 철도·전기·가스 국유화, 무상교육, 부유층 대상 세금 인상 등을 주장한다. 그는 또 군주제 폐지, 북아일랜드 독립, 전쟁 반대 등의 주장을 해왔다. 최근 당수 선출 이후 영국의 공식 기념식에서 국가를 부르지 않고 침묵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코빈은 사생활에서도 원칙을 고집하면서 타협하지 않았다. 그는 자동차 대신에 자전거를 타고 의회에 출근한다. 또 육식을 거부하는 채식주의자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을 일반 중학교에 보내야 된다고 주장해 진학 중심의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아내와 갈등을 일으켜 이혼하기도 했다. 코빈은 원칙주의자 이미지 때문에 보수파로부터 이슬람원리주의 조직인 ‘헤즈볼라’에 빗대 ‘제즈볼라’(제러미+헤즈볼라)로 불렸다. 어쨌든 코빈의 등장으로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오랫동안 내걸었던 ‘제3의 길’(실용적 중도좌파 노선)이 폐기될지 여부가 주목된다.

요약하자면 코빈은 ‘비타협적인 맨왼쪽 좌파’이고, 샌더스는 ‘워싱턴 정가의 유일한 사회주의자’이다. 또 트럼프는 ‘막말을 퍼붓는 괴짜 극우파’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러면 극단의 아웃사이더들이 돌풍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코빈이 당수로 당선된 이후 ‘아웃사이더들의 반란’ 배경과 원인을 놓고 정치학자, 정치평론가, 언론인 등과 수차례 토론을 했다. 이들은 돌풍 배경으로 크게 네 가지를 거론했다.

양극단의 아웃사이더 돌풍 배경은?

우선 세계적으로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극단적인 노선이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젊은층과 진보세력 내에서 “99%가 1%로부터 권력을 빼앗아와야 한다”는 구호가 유행했다. 이같은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진보세력들은 말만으로 진보 정책을 주장하는 사람보다는 행동으로 강경 좌파 노선을 실천하는 정치인을 더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보수층은 직설적으로 우파 주장을 하는 정치인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경제적 양극화 심화로 막연한 중도 노선으로는 유권자들의 눈길을 끄는 해법을 제시하기 어렵게 됐다.

두 번째로 정치적 양극화 심화와 진보·보수 이념 대결 정치의 노골화는 극단의 정치 확산에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뒤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층 간의 대립, 인종 간의 갈등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의회에서도 양당의 대결이 극한으로 치닫는 경우가 적지 않아 대화와 타협을 위주로 하는 미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영국에서도 집권 보수당과 야당인 노동당 간의 대결 의식은 첨예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이럴 바엔 차라리 우리 당에서 색깔이 확실한 사람을 밀어주자는 얘기가 확산될 수밖에 없다”고 한 정치학자는 분석했다.

셋째, 정치가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는 가운데 기성 정치에 환멸을 느낀 유권자들이 보다 솔직한 정치인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위에 거론한 세 사람 모두 인간적으로 친근한 모습 또는 사실을 그대로 말한다는 점을 부각시켜온 게 사실이다. BBC방송은 최근 코빈에 대해 “그의 이념에는 동의하지 않아도 그의 인간성을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나 CNN 등은 샌더스의 괴력에 대해 “불평등 해소를 주장하면서 민심과 눈을 맞추는 정치를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블룸버그는 “트럼프의 매력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37%가 ‘사실 그대로를 말한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넷째, 시대 변화에 따른 시대정신, 정치노선 변화로 이들의 득세를 설명하는 시각도 있다. 정치적 이념·노선과 비전은 적정한 주기별로 바뀐다는 것이다. 지난 20~30여년 간 서방세계에서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함께 합리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적 중도주의가 주류를 형성했다. 그런데 이제는 유권자들이 근원적 문제 해결을 해주지 못하는 중도 노선에 식상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도보수 또는 중도진보의 처방 제시 대신 양극단의 불만 표출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웃사이더 돌풍은 실제 지각 변동 가져올까?

그러면 이들의 돌풍은 실제 지각 변동을 낳을 정도로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엇갈린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현재까지는 이들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이 약간 더 우세하다. 당내 선거에서는 '집토끼'를 잡아야 하므로 한쪽의 이념을 분명하게 내세우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지만 전체 국민을 상대로 하는 선거에서는 중도 노선이 확장성을 더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코빈도 영국 총선에서는 현재까지의 강경 좌파 노선을 그대로 내세워서는 집권하기가 쉽지 않다. 또 샌더스와 트럼프도 실제 당내 경선 득표전과 대선 본선에 임할 경우 지금과 같은 양극의 주장으로는 승리하기 어렵다.

또 과거 미국 대선에서 초반 돌풍을 일으켰던 존 앤더슨(무소속) 로스 페로(무소속) 랠프 네이더(녹색당) 게리 존슨(자유당) 후보 등이 모두 고배를 마신 점도 샌더스와 트럼프의 한계를 예측하는 소재로 인용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웃사이더의 돌풍이 단순히 ‘반란’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정권을 잡는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란 주장도 있다. 영국 언론은 “코빈의 일관되고 분명한 정치적 지향이 보수당의 캐머런 총리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트럼프와 샌더스의 지지율 상승세가 ‘반짝 인기’에 그치지 않고 장기화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받고 있다. 한 전문가는 “트럼프와 샌더스는 무소속이 아니므로 만일 내년 초 초반 경선에서 1위를 기록할 경우에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치, 영·미의 '돌풍'에서 뭘 배울 것인가?

아웃사이더들의 돌풍은 한국의 총선과 대선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선 유권자들이 도덕적 흠결이 없고, 진솔하면서도 친근한 후보를 원한다는 것이다. 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은 이런 점을 유념해 공천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그동안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중도층·부동층(swing voter)의 보다 많은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각각 중도보수·중도개혁 노선을 채택해왔지만 앞으로는 단순한 ‘중도 노선’만으로는 해법을 제시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국민통합 차원에서 중도주의를 추구하면서도 좌우 양쪽의 불만과 소외를 구체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맞춤형 공약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일자리 문제로 불만이 폭발할 수 있는 젊은층의 마음을 껴안을 수 있는 구체적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세 번째로 국민들은 실질적으로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정치를 원하고 있으므로 예산 뒷받침이 되고, 실현 가능한 생활정치 공약을 제시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네 번째로 크든 작든 선거 때마다 ‘시대 정신’과 핵심 이슈가 바뀌게 되므로 선거 당시의 시대정신과 주요 이슈를 포착하고 선도적으로 실천하는 정치를 해야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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