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서베를린 찾아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 연설로 감동 줘

해외 순방이 지지율 상승으로 연결되는 호재 되려면 세 가지 필요

국내 정치 스캔들 부재, 국내 경제에 긍정적 파장, 좋은 순방 이미지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데일리한국=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칼럼] 20세기 서방 세계의 가장 극적인 지도자를 꼽으라고 하면 누구보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떠올리게 된다. 많은 훌륭한 지도자들이 있지만 케네디 전 대통령은 미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의 지도자들과 다른 모습이었다. 권위적인 태도는 찾을 수 없었고 새로운 정신을 부르짖는, 젊고 역동적인 지도자의 이미지 그 자체였다. 쿠바 미사일 문제를 놓고는 소련의 후르시초프 서기장과 대치할 때는 강경한 리더로서의 얼굴을 연출했고, 국민들에게는 뉴프런티어 정신을 노래했다. 임기를 시작한 지 불과 채 3년이 되지 않는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 전 대통령은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이 사라지듯 미국인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된 채 떠나갔다. 아직도 그의 죽음에 많은 미스터리적 요소가 있는 데는 그만큼 케네디를 그리워하는 미국인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미국 갤럽이 트루먼 대통령 이후 측정한 평균 대통령 지지율에서 70.1%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인기가 꽤 높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지만 그의 첫 번째 임기 평균 지지율은 47%에 머무는 수준에 불과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재임시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여성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케네디, "나는 베를린 시민" 연설로 양국 국민 마음 잡아

냉정하게 평가하면 케네디 재임시의 미국 경제는 ‘대박’ 상황은 아니었다. 당선 직후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국민총생산(GDP)지표가 상승했지만 곧장 추락하고 만다. 평화봉사단(Peace Corps)을 위시하여 미국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가져온 건 사실이지만 경제전문가는 아니었다. 실업 감소, 인플레이션 축소, 달러 안정화, 금환본위제 유지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난관에 부딪혔다. 경제적 난제 그리고 국내 정치 갈등에도 불구하고 케네디 전 대통령이 지지율을 고공 행진 시킨 요인은 외부에 있었다. 쿠바 미사일 이슈로 소련보다 강한 이미지를 구축하며 ‘젊고 힘있는 지도자’ 로 국민들에게 각인되었다. 그 다음은 외교였다. 잘 생긴 얼굴에 웬만한 방송 진행자를 넋 놓게 만드는 언변은 국민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사실상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었고, 국민들의 자부심과 만족감은 체감 경기에 상관없이 커졌다. 서베를린 방문이 그 절정이었다. 2차 대전에서 총부리를 겨누었던 적국 독일의 시민들 앞에서 케네디 전 대통령은 투박한 독일어로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라는 말로 미국 국민과 독일 국민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적국이었던 서독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해외 순방이었지만 유럽에 대해 문화적 열등감이 있었던 미국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으며 톡톡히 ‘순방 효과’를 누렸다.

대통령 해외 순방이 지지율 상승으로 연결되기 위한 세 가지 카드

임기 후반으로 접어드는 시점에 경제, 북한, 개혁과 절대적으로 얽혀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대통령 지지율엔 어떤 영향을 줄까. 해외 순방이라고 무조건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임기 후반기 대통령 지지율이 낮아진 상황에서 성과 없는 해외 순방은 약이 되기는커녕 국정을 챙기지 않고 외유만 일삼는다는 핀잔이나 듣기 십상이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이 지지율 상승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3가지 매직카드는 확보되어야 한다.

우선 대통령 부재시 국내 정치 문제가 불거지지 않아야 한다. 특히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가 연루된 이슈는 치명적이다. 해외 순방이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국민과 관련된 경제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 대통령의 국정을 평가하는 주체는 국민이다. 순방으로 인해 우리 경제에 실질적인 보탬이 된다고 국민들이 느꼈다면 외국 방문은 대성공이다. 마지막 매직카드는 ‘순방 이미지’와 관련이 있다. 정상회담, 주요 기념 장소 방문, 학교 강연, 산업시설 시찰, 상공인 미팅, 교포사회 격려 등으로 구성되는 순방에서 어떤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각종 영상, 스토리 등이 국내로 전달되면서 국민들은 대통령 순방에 대한 전체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된다. 좋은 순방 스토리텔링은 긍정적 이미지로 전달된다. 순방 장소에서의 깜짝 이벤트 역시 방문국의 국민들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에게도 인상적인 기억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대통령 해외 방문 기간에 국내 정치 스캔들 벌어지지 않아야

해외 순방 지지율 상승의 첫 번째 매직카드는 단언컨대 국내 정치 안정과 신중한 인사 관리이다. 정국이 혼란하면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평가는 결코 좋을 리 없다. 국내 현안이 산적해 있고 지지율이 정체되거나 하락 국면에 있을 경우(대체적으로 임기 후반기) 해외 순방은 지지율 상승의 모멘텀이 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는 대통령 임기 후반기의 현상이지만 정치적 사안의 크기에 따라 임기 전반기에도 예외가 없다. 외국 방문 전후와 도중에 대통령과 관련 있는 정치권 또는 정부 인사의 비리나 추행 등의 논란이 있는 경우 외국 방문 효과는 사라지고 만다. 임기 초 국무총리 인선 문제로 난항을 겪었던 박 대통령은 미국 순방으로 돌파구를 만들어나가려고 했다. 2013년 5월 초 미국 순방에 대한 ‘주목 효과’로 박 대통령 지지율은 60%에 육박했다. 그러나 대변인과 관련된 성추행 논란이 빚어지면서 지지율은 50%초반으로 고꾸라졌다. 단순히 순방 효과를 사라지게 한 것뿐 아니라 이를 기점으로 박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인 ‘인사 트라우마’가 작동되었고 부정 평가 비중이 30%에 근접하는 ‘이중적 딜레마'(Double-Dilemma)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환상의 호흡을 만들어냈지만 봄날의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나버렸다.

임기 초 순방 도중 추행 사건이 미국 방문 도중에 발생한 인사관리 문제라면 임기 중반 중남미 순방 때는 ‘리스트 파문’이 ‘순방 효과’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2015년 4월 16일부터 중남미 순방을 앞두고 대통령 지지율은 조금씩 상승 국면을 보였다. 국내에서는 김영란법을 통과시켜 부정부패와의 대결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낸 순간이었다. 국외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 효과'(Halo Effect)를 부각시킨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의 장례식 참석이 있었다. 모든 상황이 해외 순방을 앞두고 순조로워 보였다. 그러나 순방을 앞두고 ‘트라우마’가 고개를 들었다. 새누리당 의원이기도 했던 성완종 전 의원의 죽음과 함께 ‘리스트’가 정국 전면에 등장했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대통령의 중남미 순방은 출발부터가 삐걱거렸다. 모든 국민들의 눈과 귀는 전대미문의 리스트 파문에 쏠렸고 대통령의 순방은 잊혀졌다. 대통령의 순방이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국민들이 많을 정도였다. 대통령 지지율에도 지체없이 영향을 주었다.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 40%선에서 유지되었던 지지율은 35%이하로 내려갔다. 부정 평가는 60%에 가까울 정도였다(그림1). 급기야 중남미 순방 중에 총리까지 사의 표명을 하면서 대통령의 해외 순방은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메르스 사태로 정국이 혼란하고 온 국민이 불안에 사로잡힌 상황에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연기되었다. 메르스로 신음하는 국민과 우왕좌왕하는 정부와 정치권을 남겨 놓고 순방을 감행할 경우 득보다는 실이 훨씬 많을 것이라는 현실적 고려에서 비롯되었을 터이다. 해외 순방의 대박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는 국내 정치 안정과 주변 인사 관리라는 첫 번째 매직카드를 먼저 빼들어야 한다.

해외 방문이 국내 경제에 긍정적 파장 가져올 수 있어야

해외 순방 ‘대박 효과’를 위해 두 번째 꺼내야 하는 매직카드는 국내 경제와의 연결이다. 순방이 아무리 화려하고 눈길을 끌어도 대통령의 이미지 과시에만 머무른다면 지지율로 연결되지 않는다.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경제 효과로 이어져야 한다. 문화외교를 내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정상회담의 의제는 경제와 안보로 구성된다. 방문하는 국가이든 방문을 받는 국가이든 먹고사는 문제가 1순위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전통적인 미국과의 우방국이 몰려 있는 서유럽에 진출하여 글로벌 영향력을 노리는 중국이 가지고 있는 최대 무기는 경제력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프랑스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환영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올랑드 대통령의 환한 웃음 뒤에는 천문학적 구매력으로 에어버스 항공기 수십대를 한꺼번에 사가기로 약속한 뒤였다. 무려 11조원 어치였다. 연관 산업의 규모가 대단히 크고 종사하는 관련 인력이 수백, 수천명에 달하는 항공산업 중흥은 올랑드의 경제적인 협상력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임기 초반 유명 여배우와 엽기 행각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올랑드 대통령이었다. 그렇지만 프랑스 국민 경제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 중국과의 관계 설정은 국민들의 지지로 그리고 올랑드에 대한 선호로 옮겨가게 되었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중동 순방 사례는 더 극적이다. 높은 실업률로 올들어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반전 기회는 중동 해외 순방이었다. 카타르에 프랑스산 라팔 전투기 24대를 팔아치웠다. 단순한 판매 협상이 아니라 미국의 록히드마틴과 보잉과의 치열한 경쟁을 따돌린 쾌거였다. 프랑스 국민들은 열광했고,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에서도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경제적 성과를 올렸다.

미국과 일본의 관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4월 미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미국 보잉의 항공기부품 3분의 2를 일본이 생산하고 가와사키 전철이 미국산인 점을 강조했다. 일본 국민들에게는 미국 항공산업이 일본에 대규모로 진출해 있음을, 미국 국민들에게는 일본의 핵심 교통 및 운송 수단인 전철이 미국산임을 강조했다. 경제적인 성과에 대해 일반 국민들에게 충분히 전달되기를 노린 고도의 전략이었다.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궁극적으로 거둬들여야 할 성과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이 여기에 있다.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가는 방문인만큼 국민 경제에 꽃바람이 불 수 있는 희소식이 전해져야 지지율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한국갤럽이 자체 조사로 지난달 18~20일 실시한 조사(전국1003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에서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에 대한 참석 여부’에 대해 물어본 결과 ‘참석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10명 중 7명 정도 수준인 69%로 압도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직업별 분류의 자영업층 환영이 더욱 두드러졌다. 수년 내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 관광객 천만명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중국과 관련된 경제에 민감한 자영업층에서는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에 대한 긍정 여론이 10명 중 8명에 가까운 76%였다. 가정주부층(67%)보다는 10여%포인트 더 많은 것이고, 학생층(58%)에 비하면 20여%포인트나 많은 수치이다. 민생 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한중 ‘경제’ 정상회담이라야 지지율로 연결되는 게 가능하다.

스토리텔링과 인상적 이벤트로 좋은 '순방 이미지' 만들어야

문화적 스토리텔링과 깜짝 이벤트는 해외 순방이 지지율 대박으로 연결되는 마지막 매직카드로 손색이 없다. 해외 순방에서 많은 경제적 성과를 올리는 만큼이나 좋은 이미지 형성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임기 초 박 대통령은 영국을 방문해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났다. 특별히 경제적 성과가 부각된 방문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대통령의 지지율은 올라갔었다. 여왕과의 만찬이라는 특별한 형식과 영국 왕족이 주는 독특한 분위기로 박 대통령은 한국 대중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의 영국 방문에 관심을 표했고, 여왕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더욱 궁금해졌었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은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관심사다. 일종의 공공외교를 통해 상대 국민들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더욱 좋아진다면 그 또한 성과에 속한다. 1998년 두 번째 임기 중에 있었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었다. 미국 대통령들의 한국 방문은 통상적으로 매우 짧은 편이고 응당 주한미군부대와 판문점 정도를 방문하는 수준에 그친다. 별 감흥이 없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1998년 한국 방문은 달랐다. 미국 국내에서 르윈스키 스캔들로 위기에 부딪쳤고 마치 가족에 불성실한 사람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한국을 방문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반전 매직카드는 가족 간의 좋은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었고 형식은 깜짝쇼에 가까워야 했었다. 방문 중 동생 로저 클린턴이 공연 중인 KBS열린음악회에 깜짝 출연을 한 것이다. 함께 공연 중이었던 가수 조영남도 화들짝 놀랐지만 관중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외신을 통해 미국 뉴스로 알려졌고 인간적인 형의 이미지와 한국 대중들에게 박수 받는 장면은 지지율 상승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해외 순방 효과를 오롯이 누리는 대목이다.

한중 관계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한국 리얼미터와 중국 환구시보의 공동조사(리얼미터 7월29~31일 전국1000명 유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에서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이 서로에 대해 얼마나 호감을 가지는지와 일본인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파악해 보았다. 한국인들의 중국인에 대한 호감도는 10점 만점에 5.7점이었다. 중국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는 5.9점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한중 국민들의 일본인에 대한 호감도는 각각 4.2점과 3.8점으로 낮은 편이었다(그림3). 남북 고위급 회담의 극적 타결로 지지율이 상승한 가운데 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는 것이어서 ‘장밋빛 청사진’ 일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치 안정과 주변 인사 관리, 서민들의 생활에까지 도움을 주는 경제적 성과, 문화적 스토리텔링과 인상적인 이벤트라는 해외 순방 효과의 3대 매직카드는 유효하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한때 적성국이었던 베를린을 방문해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로 유럽과 미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케네디 광풍’으로 전세계를 뒤덮었다. 박 대통령은 무슨 말로 우리 국민과 중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한중 정상회담의 결과가 궁금해진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서울대 국제대학원, 고려대 행정학과 박사과정 수료-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길리서치 팀장-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이사,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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