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기획 > 전문가 칼럼
  • [전문가 기고] 김동명 "대북 확성기 방송은 김정은 정권의 아킬레스건 건드리는 '음향 미사일'"
  • 기자김동명 독일문제연구소(RIGA) 소장 승인시간승인 2015.09.02 15:58
북한 정권은 왜 확성기 방송을 두려워할까?… 백두혈통 허상까지 건드려
확성기 방송의 안보 가치… 도발 억제, 협상 지렛대, 북한 민주화 기여 등
남북 합의문 중 확성기 방송 재개 조건인 '비정상적 사태' 를 구체화해야
  • 김동명 독일문제연구소장
[데일리한국= 김동명 독일문제연구소장 기고]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에 대한 보복 조치로 대북 확성기 방송이 11년 만에 재개되었다. 이에 북한은 고사포와 76.2mm 평·곡사포를 동원해 대북 확성기를 겨냥한 도발을 감행했고, 남북한은 일촉즉발의 긴장 국면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갑작스런 북한측의 대화 제의에 따라 남북 고위급회담이 개최되었고, 북측의 유감 표명과 남측의 대북 방송 중단을 골자로 한 '8·25 남북 합의'가 도출되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입증된 사실은 확성기를 통한 대북 심리전 방송이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강력한 수단이 됐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왜 대북 확성기 방송을 두려워할까? 또 대북 확성기 방송은 남북관계에서 어떤 전략적 안보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김정은 정권은 왜 대북 확성기 방송 두려워할까?… 백두혈통 허상 폭로 등

1950년대 말부터 남북한은 휴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을 실시했다. 우리측은 80년대까지는 주로 북한 공산·독재체제의 참상과 모순을 폭로했고, 90년대 이후에는 한국의 경제·사회발전상, 그리고 민족 동질성 회복 관련 내용을 주로 홍보했다. 북측은 김일성·김정일 체제를 홍보하고, 남한 체제를 비방하거나 월북을 권유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그러나 동서 냉전이 서방측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 90년대 초부터 북한은 체제 와해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대북 심리전 방송은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당시 김정일의 최대 숙원 사업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시키는 일이었다. 대북 방송 중단이란 김정일의 집요한 요구는 노무현 정부의 포용 정책과 맞물려 결실을 보았다. 2004년 6월 4일 제2차 남북한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에 따라 대북 확성기 방송이 중단되었고, 확성기마저 철거되었다. 남측이 방송을 중단하는 대신 북측은 서해에서의 무력 충돌 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 합의를 어기며 2010년 3월 천안함을 피격하고, 11월 연평도를 포격했다. 한국은 천안함 폭침의 보복 조치인 '5·24조치'에 따라 대북 심리전 방송을 재개하기로 방침을 세운 뒤 군사분계선 지역 11곳에 확성기 방송 시설을 다시 설치했다. 이제까지 한국 정부는 혹시나 북한에게 국지 도발의 빌미를 줄까 두려워 대북 방송 시행을 유보해 오던 중이었다.

최근 남북 대치 상황 이전 15일 간 시행된 대북 심리전 방송의 주요 내용은 ① 인권 탄압을 포함한 북한 사회 실상과 김정은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 ② 한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과 발전상 홍보 ③ 민족 동질성 회복 ④ 아이유의 ‘마음’과 빅뱅의 ‘뱅뱅뱅’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등 K-팝 ⑤ 날씨 등 실생활 뉴스로 구성돼 있다.

8월 10일 한민구 국방장관은 대통령의 결심을 받아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그는 대북 확성기 방송이 겨우 보복 조치의 전부냐는 비아냥도 받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확인된 것은 북한 정권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한 심리전을 엄청 두려워한다는 사실이다. 대북 방송을 중단시키기 위해 북한은 일차적으로 군사 행동으로 우리에게 겁을 주다가, 한국군의 반격과 전쟁 불사의 단호한 태도에 결국은 굴복하고 말았다. 급기야 북한은 권력 서열 2인자 황병서와 대남 전략의 총책김양건을 파견하여 무박 4일로 이어진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에서 확성기 방송을 중단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협상 기간 북한 대표들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시키지 못할 경우 절대로 회담장을 떠나지 않을 것이란 분위기를 연출했다. 지뢰 도발 사과와 책임자 처벌 없이는 방송을 중단할 수 없다는 우리측의 완강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북측 대표단은 이전과는 달리 회담장을 감히 박차고 나가질 못했다. 대북 심리전 방송은 실로 북한 정권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북한 공산정권은 이제까지 체제 유지를 위해 주민들의 눈과 귀를 막아왔다. 북한 주민들은 외부 세계와 철저히 차단되어 있고, 김정은의 출신 비밀이나 한국의 발전상과 자유민주주의체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허위 정보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대북 방송은 북한 병사들에게 사실을 알려주는 유일한 언론매체였다. 최근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흘러나왔던 내용을 간추려 보면 ① 김정은은 재일교포 출신인 고영희의 자식이며, ②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중국만 3번을 방문했는데 김정은은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외국을 방문한 적이 없고, ③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총살당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방송을 통해 ④ 북한 고위층의 부패상과 문란한 사생활이 폭로되었다.

주체사상과 우상화 교육을 철저히 받은 뒤 최전방 부대에 입대한 북한 병사들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이 내용을 듣는 순간 북한의 '최고 존엄'을 상징하는 백두혈통의 허상을 목격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3대 세습체제에 대한 비판 의식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 사회 실상 소개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깊은 회의도 품게 되었을 것이다. 특히 최근 입대한 젊은 군인 대부분은 한국 대중가요 테이프, 드라마 DVD 등을 접해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의 발전상(세계 10대 경제대국;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제 4대 자동차 생산국; 세계 제1위 조선 및 반도체 생산국; 전세계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의 30%가 한국 제품; 집집마다 자동차; 전투기 및 원자로 수출국)이 방송을 통해 북한군에게 알려질 때 이들은 쉽게 동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기로 충천해 있어야 할 최전방 장병들이 대북 방송으로 인해 사상적 동요를 일으키며 '친한국 세력'으로 변모할 경우를 상상해 보라. 북한군의 사기와 전투력은 땅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이는 장차 김정은 통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며 종국적으로 북한 체제 위협 요인이 될 것임은 불문가지이다. 따라서 북한 당국은 자신들의 ‘최고 존엄’인 김정은의 체면을 훼손하고 체제를 철저히 유린하고 있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필사적으로 차단하려고 하는 것이다.

확성기 방송의 안보 가치… '음향 미사일', 도발 억제, 협상 지렛대, 북한 민주화 기여

대북 확성기 방송은 안보적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가치를 갖는다. 첫째, 대북 확성기는 북한 체제를 근본부터 흔드는 '음향 미사일'(Sonic Scud)이다. 북한이 체제 전복 가능성을 이유로 가장 두려워하는 대북 확성기는 평시 한국이 보유한 유무형 안보 자산 중 핵무기 효과에 버금가는 비대칭 전략무기이다. 확성기 방송은 가장 저렴한, 그러나 효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용 무기이다.

둘째, 대북 확성기 방송은 한미연합훈련과 더불어 평시에 북한의 국지전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 이번에 자리매김했다. 핵무장한 북한은 이제까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서 보듯이 뒷주머니에서 우리에게 핵무기 카드를 보이며, 재래식 무기로 국지 도발을 해 왔다. 그러나 대북 확성기 방송은 이와 같은 과거 북한의 도발 패턴과 공갈과 협박에 의존해온 '벼랑 끝 전술' 사용에 종지부를 찍게 할 것이다. '8·25 남북 합의'에 따라 북한의 도발 등 ‘비정상적 사태’가 발생한다면 대북 확성기 방송은 언제든지 재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무기의 효용성은 이번 사태로 급격히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평시 북한의 핵무기는 단지 한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못하도록 막는 억제 효과만 갖고 있을 뿐이다. 만약 한국이 북한에 대해 선제공격을 안 하고 지금처럼 한미동맹체제를 굳건히 유지하며 분단 국면을 관리해 나갈 경우 핵무기 카드를 이용한 북한의 대남 공갈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못할 것이다. 재래무기 분야에서 남북 경쟁이 지속될 경우 북한의 열세는 더욱 가속화되어 북한은 결국 존립을 위협받는 상황에 봉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 대북 확성기 방송은 향후 남북 협상에서 강력한 대북 협상 지렛대로 작용할 것이다. 휴전 이후 남북 협상에서 남한이 처음으로 공세적 입장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은 단연 대북 확성기 방송 때문이다. 북측이 확성기 방송 중단을 집요하게 요구한 것은 확성기 방송이 그만큼 실효성 있는 대북 압박 카드로 작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북 확성기 방송은 향후 북한과의 협상에서 매우 효과적인 공세적 수단이 될 것이다.

넷째, 통일을 지향하는 대북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 사회의 민주화'(헌법에 의해 인권 보장/독립적 사법기관/종교·언론·집회의 자유 등)와 '북한 주민들의 친(親)한국화'(한국 사회를 동경, 스스로 북한 공산체제를 부정)를 이끌어내는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북한이 민주화되고 북한 주민들이 한국을 동경할 때 비로소 평양에 실용적 노선을 추구하는 테크노크라트(technocrat)가 들어서고, 이 때 가서야 한반도 평화 통일의 물꼬도 트일 것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 이외에 풍선을 통한 대북 전단 살포, 단파 라디오를 통한 대북 방송, DVD·CD·USB 등 대북 선전 매체도 북한사회에 외부 사조와 자유화 물결을 유입시키는 데 좋은 도구가 될 것이다.

확성기 방송 재개 조건인 '비정상적 사태'를 구체화해야

지난 8월 25일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북한을 꼬리 내리게 한 일등 공신은 ‘대북 확성기 방송’이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한민구 국방장관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의 전략적 식견과 판단,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과 소신의 합작품이다. 한민구 장관은 이명박정부 시절 육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으로 재직하며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대응책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의 재개를 누차 주장했으나 청와대 참모들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 한 장관은 말로만의 보복이 아니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 치명적인 반격을 가함으로써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김정은을 굴복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수확은 '8·25 남북 합의' 내용이라기보다는,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한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전략적 안보수단이란 것을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장차 한국정부의 분단 관리 정책과 통일 정책 추진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핵심 사안 중 하나다. 이런 맥락에서 시간이 갈수록 대북 확성기의 전략적 안보 가치는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8·25 남북 합의 이후 안보팀은 합의문 3항의 ‘비정상적인 사태’를 어떤 범주에서 정의할지 보다 구체적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김동명 독일문제연구소 소장 프로필
육군사관학교, 서울대 독어독문과, 독일 콘스탄츠대 국제정치학·독문학 석사, 콘스탄츠대 국제정치학 박사- 국방부 군비통제관실 북한 핵문제 담당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국방정책 담당관- 주독 한국대사관 국방무관- 국방부 군비통제관실 대북정책과장- 국제기구 포괄적 핵실험 금지기구(CTBTO) 국제협력과장- 독일문제연구소 소장(현)/저서 <독일 통일 그리고 한반도의 선택>(한울)

기자소개 김동명 독일문제연구소(RIGA) 소장 다른기사보기
데일리한국 뉴스스탠드
본 기사의 저작권은 한국미디어네트워크에 있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입력시간 : 2015/09/02 15:58:12 수정시간 : 2020/02/07 14:03:16
데일리한국 지사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