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모두 과거에 갖혀 한일관계 악화… 철저한 국익 관점에서 분리 대응해야"
"위안부문제공동특별조사위원회,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구성해 해법 찾아야"
"아베 일본 총리의 반성 속 양국이 21세기 시대정신 구현해야"

박한규 경희대 국제대학장
[박한규 경희대 국제대학원장 칼럼] 올해 수교 50주년을 맞는 한일관계는 역대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종군위안부, 독도, 일본 역사교과서 기술 등 과거사 문제로 인해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양국 정상회담이 단 한 차례도 열리지 못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일본 정부의 정치적 갈등이 양국 사이의 경제 협력, 안보 협력, 민간 차원 교류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 수가 최근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며, 일본 내 극소수 극우세력들의 주장인 '혐한론'이 일본의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 매우 우려스럽다.

1년 전에 실시된 한국일보·요미우리신문 공동 여론조사 결과는 한일관계의 현주소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이 여론조사에서 현재 양국 관계에 대해 한국인의 86%, 일본인의 87%가 나쁘다고 응답하였다. 또 한국인의 83%, 일본인의 73%가 상대방을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90%, 일본인의 83%가 각각 양국 관계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 여론조사는 양국 국민 절대 다수가 현재 한일관계가 매우 불편하지만, 서로 가까이 지낼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 갇힌 한일관계

자유주의적 국제관계 이론에 따르면 국가 간 경제적·인적 교류를 증대시키고, 같은 가치와 제도, 특히 민주주의 가치와 시장경제를 공유한 국가들은 서로 전쟁하지 않고, 협력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를 가진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이론은 현재 한일관계에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한국과 일본은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매우 높고, 아시아에서 가장 발달된 시장경제 제도와 민주주의 가치들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사, 독도, 위안부 등의 문제들을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을 보이고 있다. 즉, 양국의 민족주의적 자존심이 강하게 충돌하면서 자유주의적 협력 이론의 전제조건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요즘 일본과 한국의 정치를 보면 과거에 갇혀 있는 듯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현재 일본이 안고 있는 삼중고(三重苦) -장기 불황, 쓰나미 재난,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상당한 좌절감과 무기력감에 빠져 있는 일본 국민들에게 일본의 옛 영광을 재현함(아베는 이를 ‘일본의 재생’이라고 부른다)으로써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려 하고 있다. 즉, 아베 총리는 메이지 유신의 기치였던 ‘부국강병’을 통해 일본을 재건하고자 하고 있다. 아베노믹스를 통해 장기 불황에 빠진 일본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미일동맹 강화와 집단자위권 확보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군사력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뿌리이자 스승은 바로 그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이다.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이자, ‘경제 발전 우선, 안보는 미일동맹’이라는 전후 일본의 보수본류(保守本流) 이념 틀을 만든 장본인이다. 현재 아베 정권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향수로 포장된 일본 재건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듯하다.

한국도 한일관계를 바라볼 때 무엇보다 과거 일제 한반도 식민지 지배의 '가해자와 피해자' 인식을 우선 떠올리게 된다. 피해자인 한국은 가해자인 일본에게 항상 사과를 요구할 수 있고, 일본은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정서가 깊게 깔려 있다. 그러나 일본은 1965년 한일수교협정을 통해 이미 금전적 보상이 이루어졌고, 그 때 제공된 일본의 자금과 기술이 한국 경제발전의 토대가 되었고, 무라야마 담화를 비롯해 역대 총리들이 한국에게 사과할 만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 해결은 이미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되어 있는 듯하고, 독도 문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들이 현재 한국의 대일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되어 있는 듯하다. 한국 정부도 국내의 강한 일제 잔재 청산 요구와 반일 여론 때문에 과거사 문제에서 쉽게 타협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철저한 국익 관점에서 한일관계 바라봐야

이제 철저한 한국의 국익의 관점에서 한일관계를 재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한일관계에서 정치적·경제적·안보적 이익 등 다양한 국가이익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국가이익들은 국제환경과 국내정치의 변화에 따라 서로 병립 가능할 때도 있고, 서로 상충할 경우도 있다. 한일관계에서 한국의 정치적 이익은 일본으로부터 과거사에 대한 확실한 사과와 보상을 받아내 민족적 자존심을 세우고, 외세 간섭이 없는 자주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에만 집중하여 한일관계에서 또 다른 중요한 국익들을 달성할 수 없다면 이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한국은 일본과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경제적 이익도 가지고 있다. 전후 한국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일본의 자본과 기술에 어느 정도 의존했던 것은 사실이다. 아직 일본의 산업기술은 전반적으로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고, 일본의 경제 규모는 한국의 4배이다. 날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세계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더 나은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일본 기업들과의 제휴·협력은 여전히 필요하다.

안보 영역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매우 중요한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공히 미국과의 동맹을 가장 중요한 안보 수단으로 삼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직접적인 군사동맹을 맺고 있지 않지만, 미국의 동아시아안보 체제 하에서 준동맹급 안보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를 통해 북한의 핵위협과 팽창하는 중국을 억제하려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동아시아전략상 한일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매우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한일관계가 호전될 수 있도록 양국에 공히 여러모로 압력을 넣고 있다. 한국이 한미동맹을 한국 안보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한 일본과의 안보 협력은 필수적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미 양국 국민들은 민간 차원의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교류와 협력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의 한류의 인기는 한국 문화상품이 일본 시장에 활발하게 진출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각각 양국 국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여행 목적지가 되고 있다. 또 교육·문화·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교류와 협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분리 대응 해법 통해 한일관계 복원 모색해야

과거사를 둘러싼 양국 정부의 정치적 갈등이 경제·안보·민간 영역의 교류와 협력을 저해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 모두의 국익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일관계에서 과거사 문제는 실로 난해한 문제이다. 하지만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숙제이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에서는 각자 자국 역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있기 때문에 단시간에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사안도 있다, 따라서 과거사 청산 노력을 별도로 진행하면서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일본과의 경제·안보·문화적 협력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위안부 문제는 민간 주도의 공동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해 진상 규명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위원회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많은 논란이 예상되고, 또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양국의 지식인과 전문가들이 모여서 논의하다 보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서는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재구성하여 시간이 걸리더라도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것을 양국의 권위 있는 역사학자들에게 다시 맡기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독도 문제는 현재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해양법상 우리가 유리한 입장에 있다. 따라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과민하게 대응할 필요가 없고, 대신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전세계에 확고히 알리는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에 앞서 아베 일본 총리가 2차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과거 침략 전쟁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는 등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같은 사과는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과 시민들도 요구하는 것이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위해 21세기 시대정신 구현해야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 공히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21세기 시대정신에 걸맞은 양국관계로 승화시켜야 한다. 21세기 시대정신은 세계 모든 국가들과 지구시민사회가 서로 협력하여 지구사회 전체의 공동번영과 평화를 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은 양국의 과거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양국이 서로 협력하여 21세기 지구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난제들, 즉 빈곤과 기아, 환경 파괴, 여성·아동 학대, 정치적 탄압, 경제적 불평등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공헌할 수 있도록 공동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21세기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양국 관계로 발전시켜 한일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박한규 경희대 교수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 미국 컬럼비아대 정치학박사 -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현), 경희대 국제대학원장(현), 경희대 국제대학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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