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의 최저 지지율 상황 극복 과정을 통해 본 위기 해법 3가지

"위기 탈출 위해 선제적 진단, 충분한 조치, 속도감 있는 국정운영 필수"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20년 전 미국의 한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를 맞는다. 공화당의 강력한 현직 대통령을 이기고 당선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과감하게 내놓은 가족의료 법안이 정적(政敵)인 공화당뿐 아니라 자신의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도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국민의 지지를 업고 혜성같이 등장해 미국 정치의 아이콘이 되었지만 대통령직이 그다지 쉽지 않았다. 급기야 1994년 중간선거에서 참패하고 여소야대로 정치적 상황이 돌변한다.

이 때 위기 탈출 해법은 모든 답을 국민으로부터 찾는 것이었다. 여론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국민에게 선제적으로 설명하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설득했다. 국정운영에 속도를 더하면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이후 최초로 두 번의 임기를 채운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된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섹스 스캔들만 없었더라면 역대 최고의 대통령일 것이라는 평가마저 내놓고 있다. 이런 전설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사람이 누구일까. 바로 빌 클린턴이다. 국민의 반대가 많았지만 설득하고 설득해서 숙원 사안인 멕시코와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이끌어냈다. 선제적인 중도주의, 제 3의 길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자유를 향유케도 했다. 수십만 명의 공무원을 감축하는 대대적인 공공개혁에서도 성공한다. 앨 고어 부통령으로 하여금 국정성과평가팀(NPR)을 설치해 개혁 작업을 진두지휘하게 했다. 국민을 통해 위기를 탈출한 빌 클린턴은 성공한 대통령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위태롭다. 아니 박 대통령의 위기다. 아직 임기 반환점을 돌지 않았지만 대통령 지지율은 30%대 초반까지 곤두박질쳤다. 국민 10명 중 6명은 대통령이 일을 잘못한다고 평가한다. 어떤 이는 '더 이상 국민을 바라보는 대통령이 아니다'는 혹평까지 내놓는다. 나름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을 텐데 왜 대통령에 대한 비판 일색일까. 가장 명쾌한 설명은 민심이 천심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통령과 국민의 눈높이가 다르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갤럽의 지난 20~22일 조사(전국 1001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 95%신뢰수준±3.1%포인트)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에 불만스러운 이유를 물은 결과 ‘소통 미흡’이 가장 높았다. 그리고 이 문제는 임기 이후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그림1). 역대 대통령들 또한 비슷한 문제를 겪었고 지지율이 급락하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대통령들은 조기에 ‘레임덕'(lame duck: 임기 중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대통령으로서의 국정수행 능력을 상실하는 상태)의 수렁에 빠지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레임덕의 늪에 갇히지 않기 위한 위기 탈출 해법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우선 논란이 될 만한 사안에 대해 국민들이 예상한 시점보다 더 앞서 선제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선제성) 다음으로는 조치가 국민들이 생각한 것보다 더 충분하고 풍부해야 한다.(충분성). 그리고 위기 탈출을 위한 과정의 속도는 매우 빨라야 한다.(신속성) 이런 측면에서 역대 대통령들은 위기 탈출 해법 사례를 복기해보자.

위기 탈출을 위한 선제적 진단·조치 필요

먼저 위기 탈출의 선제성이다. 일종의 논란이나 문제가 될 만한 사안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다. 위기를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것이다. 전쟁이나 전투가 나기 전인데도 수많은 조기 경보기들이 한반도 상공을 넘나든다. 전쟁의 징후를 감지하거나 전투가 벌어질 경우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안타깝게도 임기 초반에 지지율 최저 수준에 봉착했다. 광우병 파동으로 인해 대규모의 촛불 집회가 연일 벌어졌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도로 곳곳은 신임 대통령에 대한 비토의 물결로 뒤덮였다. 이 와중에 정부의 대응은 경찰력을 동원한 시위 진압에만 집중했을 뿐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충분한 노력은 부족해 보였다. 오죽했으면 지금도 불통의 대명사로 ‘명박산성’이라는 용어가 회자된다. 청와대로 시위대의 진입을 막았던 콘테이너 바리케이트는 불통의 상징이 된다. 광우병 우려가 있는 미국 소고기 수입이 당장에 국민들에게 어떤 반응을 가져올지 몰랐을까. 이러한 수입 정책에 대해 필수적인 사전 검토와 충분한 대국민 설명 과정은 왜 없었던 것일까. 임기 첫해인 2008년 6월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21.6%였다. 지지율만 놓고 보면 레임덕 그 자체였다.

그러나 상황은 반전된다. 임기 초 허리케인급 여론의 된서리를 맞은 이명박정부는 변화를 시도했다. 국민들의 여론을 파악하기 시작했고 대국민 소통에 많은 자원과 시간을 투여했다. 급기야 이듬해인 2009년(임기 2년차) 10월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54.3%까지 치솟는다(그림2). 임기 마지막 해에 레임덕이 오기는 했지만 임기 4년 차까지 상당히 안정적인 평균 40% 정도의 지지율을 유지했다. 폭발적인 지지율 상승은 없었지만 국정수행을 못할 만큼 급락하지도 않았다. 성공 여부를 떠나 특임장관실을 두어 정치적인 소통에 노력했고 친기업 정책 일변도에서 벗어나 중도서민실용 정책과 동반성장 카드를 꺼내 들었다. 촛불집회와 같은 국민들의 반응이 오기 전에 모든 정책 사안을 파악하고 진단한 선제성이 효과를 보여준 순간이었다. 기름값 폭등에 대한 선제적 조치로 ‘유류세 환급’을 단행한 것도 위기 탈출 해법 중 하나였다.

국민 생각보다 더 충분한 위기 해법 조치라야

다음은 충분성이다. 국민들의 생각을 넘어서는 충분한 조치가 이루어질 때 국민들은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청와대 문건 파동으로 심화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신년 기자회견이 소통은커녕 불통으로 점철되면서 급락했다. 연말정산은 미생(未生)인 국민들의 고혈을 짜내는 일종의 증세로 인식되며 지지율은 날개 없이 추락했다. 지지율 하락의 도화선이 된 신년 기자회견엔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신년 회견은 국민들이 묻고 대통령이 답하는 자리다. 국민들이 궁금한 질문에 대통령은 거의 답하지 못했다. 특히 인사가 그랬다. 데일리한국과 주간한국이 의뢰해 리서치앤리서치가 지난달 20~22일 실시한 조사(전국1000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 95%신뢰수준±3.1%포인트)에서 내각 및 청와대의 인사 개편에 대해 물은 결과 10명 중 8명은 인사개편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과반 정도는 단순한 개편이 아니라 ‘대폭’적인 인사 개편을 요구했다(그림3). 말 그대로 충분한 조치를 원했다. 민심은 이랬지만 대통령의 답변은 다른 방향을 향했다. 민심이 더욱 악화되는 것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조치는 충분해야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지지율 고공 행진에 힘입어 '역사 바로세우기'에 착수한다. 하나회 척결과 같은 개혁 작업 역시 높은 지지율 때문에 국민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에게 시련은 곧바로 찾아왔다. 임기 2년 차 접어들어 측근 비리 발생으로 80%가 넘었던 지지율은 3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곧이어 1994년 10월에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발생한다. 사고 직후 김 전 대통령의 조치는 재빨랐고 충분하게 진행되었다. 총리는 사고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대통령은 서울시장을 경질했다. 구원투수로 투입된 최병렬 신임 시장은 현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사고를 수습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교량 안전 전수조사를 실시한다. 그해 12월에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정부 조직 개편과 개각이 단행되었다. 국무총리에 이홍구 전 통일부총리가 내정되었고 18부 장관이 교체되었다. 충분한 조치가 이루어졌다. 대형 사고로 인해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거의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대대적인 인사 개편을 단행한 후 지지율은 반전 상승했다(그림4).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 법인가. 한해 뒤인 1995년 6월엔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이은 인재(人災)에 화난 민심은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내릴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이번에도 김 전 대통령의 조치는 충분했고 빨랐다. 서울시장으로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던 그래서 대선 후보 물망에까지 올랐던 최 시장을 경질한다. 같은 해 12월에는 국무총리에 이수성 서울대 총장을 임명하고 24개 부처 중 절반인 12부 장관을 교체했다.

민심 이탈 속도보다 빠른 국정운영을 해야

마지막으로 위기 탈출 해법은 국정의 속도감이다. 매우 중차대한 결정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사사건건 모두 검토와 계획에만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보여진다면 심각한 문제다. 국민들은 적어도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는데 대통령의 국정운영 속도가 시속 20~30킬로미터에 불과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수많은 계획이 나왔지만 고작 5년인 대통령 임기를 감안하면 제 시간에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가시질 않는다. 아직 임기의 반도 지나지 않았지만 남아 있는 시간은 1000일 정도에 그친다. 발표된 수많은 창조와 혁신이 이 기간 내에 소화될 수 있을까. 적어도 실현 가능한 것으로 국민들에게 비치려면 더 빠른 속도가 필요하다. '통일대박', '경제 혁신', '공공 개혁'이 과연 얼마만큼 진행되었는지 국민들은 체감하지 못한다.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심 이탈 속도보다 빠른 국정운영을 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첫 번째가 남북정상회담이다. 노벨평화상 수상까지 이어졌던 김 전 대통령을 기억할 수 있는 아이콘이 되었다. '햇볕정책'이 퍼주기라는 비판까지 받았지만 대북관계 개선이라는 국정운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에서 당선된 김 전 대통령에겐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특명이 주어졌다. 취임 초 지지율은 높았지만 예민한 국민 여론은 위기 그 자체였다. 보수 언론들은 한때 진보적 이념이 드리워졌던 신임 대통령의 행보를 매우 깐깐하게 지켜보는 시기였다. 김 전 대통령은 위기 탈출의 해법으로 속도를 선택했다. 매우 빠른 속도로 갖가지 개혁을 추진했고 지금까지 대체로 성공적으로 평가받는다. 빠른 속도가 김 전 대통령을 위기에서 구해낸 것이다. 임기 2년 차에는 측근 비리로 인해 지지율이 다소 하락하기도 했다. 1999년 11월에는 지지율이 60%근처까지 주저 않았다. 민주화운동 출신 대통령들의 지지율 고공행진 트렌드를 감안하면 염려되는 수치였다. 자칫 50%대로 무너질 경우 국정수행의 차질마저 염려되었다, 하지만 주특기인 남북관계에 빠른 속도를 내면서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사되었다. 이 때 김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임기 중 최고 수준인 77%였다(그림5).

나이 90의 노정객 김종필 전 총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국민은 맹수"라고 했다. 제 각각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국민여론이 맹수만큼 무섭고 엄중한 것으로 해석한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국민의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지도자나 정치인이 설 곳은 없다. 국민들의 마음은 변화무쌍하여 한시라도 방심하지 말라는 정치 노병의 훈수가 아닐까. 무항산 무항심(無恒産無恒心). 국민들은 완벽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하루 삼시세끼, 지치고 지친 일상을 챙겨주고 격려해주는 리더를 원한다. 국민들만 바라보고 가겠다고 했던 대통령이 아닌가. 지금의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선제적인 진단, 충분한 조치, 속도감 있는 국정운영이 솔로몬의 지혜로 보인다. 국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다. "뭐라도 합시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서울대 국제대학원, 고려대 행정학과 박사과정 수료-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길리서치 팀장-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이사, 현)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