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시사 인사이드]

고령화, 젊은층 낮은 투표율, 야당의 정책대안 부재 등 같아

일본에서는 자민당 압승, 한국에서는 보수여당 잇단 승리

한국 야당, '타산지석' 삼아 경제살기기 정책대안 제시해야

[김광덕 뉴스본부장 칼럼] ‘고령화 현상 속에서 최대 표밭 60대 이상, 여당에 몰표 /투표율 최저, 20~30대 젊은층 투표율은 더욱 저조 /야당은 비판만 할 뿐 정책 대안 부재, 야당의 계파 갈등 및 정쟁 심화 /정권 지지율 40% 이하로 하락했으나 여당은 선거에서 압승’

정치 기사를 읽다 보면 ‘데자뷰’(deja vu · 이미 본 적이 있다는 이상한 느낌)처럼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갖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선거 결과 분석 기사에서 위에 나열된 내용들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이것 어느 나라 얘기지?”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한국의 총선이나 대선 결과를 진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니다. 지난 14일 실시된 일본 중의원 총선 결과를 분석한 기사들을 짜깁기한 내용이다. 일본 여당의 압승과 야당의 참패 원인을 분석한 기사들이다.

최근 일본 총선과 한국 선거는 닮은꼴

일본의 보수 여당인 자민당의 압승 요인을 보면 우리나라 보수 여당인 새누리당의 잇단 선거 승리 요인과 닮은꼴임을 알 수 있다. 고령화, 고령층의 높은 투표율, 젊은층의 낮은 투표율, 정권 지지율 하락, 야당의 정책 대안 부재, 야당의 계파 갈등 심화 등은 한국과 일본의 공통점이다. 고령화 속에서 새로운 유권자로 편입되는 이민자들이 거의 없는 나라라는 점에서도 똑같다. 미국의 경우 고령화 과정에서 보수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나 히스패닉 계열 등 새로운 유권자로 등록된 이민자들이 공화당보다 민주당을 더 선호함으로써 상쇄해주고 있다.

이번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은 전체 의석 475석 가운데 291석을 얻어 과반 의석(238석)을 초과했다. 유신당 등 개헌 세력의 의석까지 합치면 개헌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317석)을 넘는다. 이번 선거에서 압승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6년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뒤에는 개헌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제1야당인 민주당은 73석을 얻는데 그쳤다. 민주당은 당 대표가 낙선할 정도로 완패를 당했다. 물론 일각에선 총선 직전에 비해 자민당과 민주당 의석이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들어 아베 정권이 무리하게 개헌을 추진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있으나 이번 선거로 아베 정권이 집권 기반을 강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면 왜 자민당은 대승를 거두고 민주당은 완패했을까? 11월 하순 아베 내각 지지율이 40% 미만인 39%(아사히신문 조사 결과)까지 떨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언뜻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마침 요즘 우리나라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지난주 39.7%(리얼미터 조사)까지 떨어졌다는 결과가 나온 점과 오버랩된다.

고령화, 젊은층 투표율 저조, 야당의 정책 대안 부재 등 일치

이번 일본 총선에서 투표율은 52.66%로 추락했다. 사상 최저치였다. 전후 최저였던 2012년 총선의 59.32%보다도 더 떨어진 것이다. 투표율이 엄청 떨어졌다는 것은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극에 달했다는 뜻이다. 일본 언론들은 “유권자 두 명 중 한 명이 투표하지 않은 것은 대의민주주의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가지 않은 이유는 여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야당이 대안 세력이란 신뢰를 전혀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민주당은 2009년 8월 30일 치러진 총선에서 중의원 전체 480석 가운데 308석을 가져가는 압승을 거뒀다. 선거를 통해 자민당의 54년 장기 독주를 마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샴페인 터뜨리기는 잠시였다. 민주당은 끊임없는 계파 갈등과 정쟁, 실정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상실했다. 자민당과 사회당 계열 인사들이 섞여 있는 ‘무지개 정당’인 민주당의 계파는 한때 10여개에 이르렀다. 게다가 2011년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은 민주당 정권에 결정적 타격을 가했다. 결국 민주당은 2012년 12월 총선에서 100석도 건지지 못하는 참패를 당했다. 그 이후로도 민주당은 계파 갈등과 정책 대안 부재로 국민들의 기대에서 멀어져갔다. 그러다보니 '아베의 도박'으로 갑자기 맞이한 이번 총선에서는 후보도 198명밖에 내지 못했다. 선거도 치르기 전에 ‘만년 야당’임을 자인한 셈이 됐다.

젊은층의 투표율은 더욱 저조했다. ‘유토리’(여유) 교육 세대로 불리는 2030세대의 투표율은 30~40%선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젊은이들은 이날 투표장 대신에 스키장, 놀이공원, 쇼핑타운 등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투표율이 낮은 가운데 젊은층까지 기대를 접어버리니 야당이 고전하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고령화 현상 속에서 젊은층 인구 비중이 줄어들고 있어서 야당은 더 힘들 수밖에 없다. 1980년에는 20~30세대 유권자 비율이 45.4%로 60대 이상(18.6%)을 압도했지만, 2010년에는 60대 이상 유권자가 37.7%로 20~30세대 유권자(30.6%)를 추월했다. 이런 가운데 60대 이상 투표율이 70%안팎을 기록했으니 자민당은 미소짓지 않을 수 없다. 1970~80년대 고도성장을 주도한 자민당에 향수를 느끼는 노년층은 이번에 자민당에 몰표를 준 것으로 분석됐다. '실버 세대의 묻지마 투표'가 이뤄진 셈이다.

아베 정권과 자민당 압승, 민주당 완패 결과로 이어져

지지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던 아베 정권은 새로 받아든 총선 성적표로 인해 장기 집권의 길을 열게 됐다. 국민 불신이 점차 확산되고 있던 아베노믹스도 기사회생하게 됐다. 또 아베 내각의 우경화 움직임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총선을 복기해 보면 우리 정치 상황, 우리 야당 모습과 너무 유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고령화와 고령층의 높은 투표율은 우리나라와 너무 비슷하다. 한국에서 2030세대는 2002년 대선 당시 전체 유권자의 48.3%에 달했으나 2012년 대선에서는 38.2%로 떨어졌다. 반면 50대 이상 고령층은 10년 사이에 570여만명 늘어서 2012년에는 전체 유권자의 40%수준에 이르렀다. 2017년에는 50대 이상 유권자가 전체의 45.1%로 늘어날 전망이다. 투표율에서도 고령층과 젊은층 차이가 매우 크다. 2012년 대선에서 50대 투표율은 82.0%, 60대 이상은 80.9%였지만 30대는 70%, 20대는 68.5%에 그쳤다.

한국 야당도 "타산지석 삼아야"… 경제살리기 정책대안 제시해야

김용복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본 총선에 나타난 투표율 추락과 젊은층의 투표율 저조, 고령화 현상과 노년층의 높은 투표율, 야당의 계파 갈등과 정책 대안 부재 등은 우리 정치와 매우 유사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일본은 내각제이고 우리나라는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일부 다른 점도 있다”면서 “가령 일본 야당은 조직 와해로 지리멸렬 수준인데 반해 우리나라 제1야당은 국회 전체 의석 300석 중 130석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 야당”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아베가 일본의 정치 지형을 치밀하게 분석한 뒤 정권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는 내년 하반기 이후에는 어려운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판단하고, 이번에 조기 총선 꼼수 도박으로 승리를 거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따라 우리나라 야권에서는 "일본 총선 결과를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보면 안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제1야당이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일본과 같은 최악의 상황에 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영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일본 총선을 타산지적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야당이 당내 권력투쟁만 하지 말고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한 비전과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평론가인 김철근 동국대 겸임교수는 ”일본에서는 자민당이 비록 찬반 논란이 있는 정책이지만 '아베노믹스‘를 내걸어 경제 살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야당인 민주당은 이에 대응하는 경제 정책 대안을 전혀 내놓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 레이건 대통령 이래 12년 동안 공화당의 장기 집권이 이어지고 있을 때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1992년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란 구호를 들고 나와 대선 승리를 이끌어냈다"면서 "새정치민주연합도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제 정책 대안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자뷰’에서 시작된 의문의 해답은 바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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