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국격을 높이자④]
세월호 같은 참담한 사고 막으려면 안전교육이 필수
안전문화 정착돼야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어
안전교육이 초등학교 정규 과목으로 채택돼야

정재희 교수
[정재희 교수 칼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다섯 달이 지났다. 이후로도 장성 요양병원 화재, 고양 종합버스터미널 화재, 태백 열차 추돌 사고, 광주 헬기 추락 사고 등이 연이어 발생했다. 하지만 이제는 점점 우리들의 머리와 가슴에서 잊혀지는 듯하다.

우리는 이같은 안전사고 소식을 접하며 매번 안타까워하고 가슴 아파한다. 그것이 내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설마 내가? 우리 가족이? 그러나 ‘사고는 항상 내 주변에서 나에게 발생할 수 있다’는 인식을 하지 않는 한 우리는 사고로부터 결코 안전할 수 없다. 안전사고의 원인 규명과 더불어 안전의식 함양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결론은 교육, 안전교육이 답이다.

몇 년 전 안전행정부에서 실시한 국민 안전의식 조사 결과 83%가 안전불감증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불감증의 원인으로는 적당주의(48%), 안전 교육·홍보 부족(25%) 순이었다. 안전불감증과 적당주의는 결국 사고와 재해를 불러온다.

반면 안전교육은 안전사고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 그것이 안전교육의 힘이다. 우리들은 조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조기 교육은 모든 방면에서 개인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령 어릴 때 수영을 배운 사람은 몇 년 동안 수영을 하지 않았더라도 물을 만나면 자연스레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된다. 안전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위급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사람은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지는데, 안전교육의 효과는 이러한 상황에서 나타나게 된다. 경험한 몸이 유사시에 먼저 반응하게 하는 것이 안전교육을 조기에 시행해야 하는 이유이다.

조기 안전 교육해야 위급시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

지난 6월 제주도 곽지과물해변에서 세 살 아이의 익수 사고 당시 한 외국인의 신속한 응급조치로 위기 순간을 넘긴 사실은 안전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는 사례이다. 캐나다 출신의 퀸란 스티븐은 이날 부인과 함께 곽지해수욕장에 갔다가 세 살 여아가 물놀이를 하다 익수 사고를 당한 것을 목격하고 달려갔다. 그는 아이가 의식을 잃은 긴박한 상황임을 감안해 아이의 머리를 아래로 한 채 안아서 등과 배를 누르는 응급조치를 했다. 그러자 아이의 입에서 하얀 액체와 함께 물이 토해져 나왔고, 의식이 돌아왔다. 곧이어 119구급대가 도착했고, 병원으로 후송된 아이는 건강을 회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티븐의 부인은 "스티븐은 캐나다 벤쿠버에서 산업응급처치와 응급처치를 수강했었고, 자신이 6살때 욕조에서 놀다 물을 들이마시고 숨을 쉬지 못할 때 응급처치 자격이 있던 아버지에 의해 거꾸로 뒤집혀 들려서 물을 토해내고 숨을 쉬었던 경험으로 이날 긴박한 순간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고 전했다.

또 하나의 사례로 2009년 초등학생이 인터넷으로 배운 심폐소생술로 아버지를 살려낸 것을 거론할 수 있다. 아버지가 갑작스런 심장마비 증세를 보여 초등학생인 13살 유종군은 엄마가 119에 신고하는 사이 침착하게 아버지를 상대로 심폐소생술을 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119구급대원들은 유종군에 이어 심폐소생술과 전기충격요법을 한 뒤 유종군의 아버지를 곧바로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했다. 다행히 유종군의 아버지는 의식을 되찾았다. 초등학생이 인터넷으로 배운 심폐소생술로 아버지의 소중한 생명을 구한 것이다.

위의 사례들을 통해 안전교육만 잘하더라도 안전교육의 힘으로 귀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린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안전을 지키는 습관이 몸에 배게 된다. 안전사고 발생 원인 중 하나로 사고 사례 중심의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근래의 교육학, 심리학, 생물학 등의 연구 결과 인간의 기본적 행동은 유아기에 대부분 형성되어 일생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확인되고 입증됨으로써 유아교육은 부모들에게 많은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래서 선진국일수록 더욱 유아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러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발한 어린이 안전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에선 1940년대 이후 왕실이 주축이 돼 어린이 교통사고 예방에 나서고 있다. 당시 연간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가 1600여 명에 이르자 왕실사고방지협회(ROSPA)가 구성돼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왕실사고방지협회는 1960년대부터 지역별로 '터프티'(Tuftyㆍ영국 다람쥐 캐릭터 이름) 클럽을 만들어 어린이 교통안전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2000년대 영국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는 연간 두 자리 수로 크게 줄었다.

독일도 엄격한 안전 교육으로 유명하다. 독일 내 교통안전교육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등 교육과정 등 3단계로 나뉘어 체계적으로 운영된다. 초등학생은 자전거 운전면허를 따야 할 정도로 사전 교육이 철저하다.

일본에서는 실습 중심의 재난대비 안전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특히 학생들이 학교 내 재난에 대비한 대피뿐 아니라 지역 내 재난의 구조활동에 참여하는 훈련을 하기도 한다. 레스큐부는 우리의 RCY(청소년적십자)에 해당하는 JRC가 주축이 돼 운영되고 있다. 주요 활동은 방재합숙훈련, 지역방재훈련 참가, 지역안전지도 제작, 피난훈련 보조 등이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학생들이 통제에 따라 대피만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재난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안전교육이 선택과목이어서 문제…세월호같은 참사 막으려면 정규과목 돼야

우리나라의 경우 안전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 학교보건법 및 보건교육과정 고시에 따르면 초등 5~6학년, 중·고등학교 각각 1개 학년 이상 연간 17시간 이상 보건교사에게 안전을 포함하는 보건수업을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문제는 교육부가 안전교육을 필수과목이 아닌 선택과목으로 정해놓았다는 점이다. 법적인 의무가 없으니 선택적으로 시행하는 학교가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 안전 강화를 위한 다각적인 방안으로 노력하고 있다.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안전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안전의식을 함양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안전문화 의식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몇 가지 제안하고자한다. 첫째, 유아부터 성인까지의 안전교육을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둘째, 체계적인 교육을 위해 안전을 초등학교 정규 교과에 포함시킨다. 셋째,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안전문화운동을 시작한다. 우리의 의식 수준을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이고 체계적인 안전교육이 아니라 사고가 발생했을 때 스스로 대응할 수 있는 체험위주의 안전교육이 의무화돼야 한다.

교자채신(敎子採薪)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자식에게 땔나무 캐오는 법을 가르치라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장기적 안목을 갖고 근본적인 처방에 힘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안전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안전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안전교육은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사회의 안전문화를 정착시키는 길은 바로 안전교육이다. 그것만이 안전사고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체계적인 안전교육이 초등학교 정규 과목으로 포함되는 정책적 확대가 추진되길 바란다.

■ 정재희 교수 프로필

중앙대 전기공학과, 중앙대 전기공학박사-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현)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부대표(현) 안전행정부 재난안전연구원 운영심의위원(현) 한국전력 안전관리위원장(현) 한국가스공사 안전관리위 공동위원장(현)

정재희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부대표)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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