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 디자이너.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 디자이너.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데일리한국 안효문 기자] “고 정주영 회장이 포니 디자인을 의뢰했을 때 많이 당황했다. 1973년 당시 한국 자동차 산업은 양산차를 만들 기반이 부족해서다. 수많은 분들과 노력한 결과 빠른 시간 내에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마치 기적 같은 일이다”

한국 최초의 고유 모델로 손꼽히는 현대차 포니의 탄생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가 자리하고 있다.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등장한 포니 양산차와 포니 쿠페 콘셉트는 한국 자동차 시장의 중흥을 알리는 효시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24일 현대차그룹 인재개발원 마북캠퍼스에 참석한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여든이 넘는 나이를 무색케 하듯, 활발한 몸짓과 목소리로 현대차 포니의 탄생 비화를 전했다.

현대차가 주지아로와 접촉한 건 1973년, 당시 회사는 당시 촉망받던 디자이너에게 양산 가능한 신차 디자인을 의뢰했다. 이후 울산을 방문한 디자이너가 접한 현실은 막막하기만 했다. 생산시설도, 부품을 공급해줄 협력사(서플라이어)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아서다. 

현대차 974 포니 쿠페 콘셉트.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차 974 포니 쿠페 콘셉트.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하지만 그는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등 50여명과 함께 불과 8개월만에 포니 시제기(프로토타입)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포니가 본격적으로 양산되기 시작한 해가 1975년, 주지아로와 현대차는 첫 만남 후 불과 2년만에 세상에 없던 차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1980년 이후 의사결정 및 실행의 신속함을 일컫는 ‘현대 스피드’의 시초인 셈이다.

주지아로는 좋은 자동차 디자이너의 요건으로 엔지니어링에 대한 이해도를 꼽았다. 그는 “자동차는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의 결합이며, 디자이너가 어느 정도 기술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라며 “너무 기술에 매몰되는 것도 곤란하지만, 디자인에 필요한 창의성이 엔지니어링에서도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도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포니가 본격적인 수출길에 올랐을 당시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포니가 초기 6만~7만대, 이후 18만대 정도 미국에 수출된 것으로 기억한다”며 “이후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한 통 받았는데, 본인이 현대차(엑셀)을 몰고 있다고 말해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라고 했다.

주지아로가 방한한 이유는 현대차가 그와 함께 ‘포니 쿠페 콘셉트’ 복원 프로젝트에 돌입해서다. 이미 이달 중순부터 작업이 진행됐다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

현대차가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공개한 포니 쿠페 콘셉트는 쐐기 모양의 노즈와 원형의 헤드램프, 종이접기를 연상케 하는 기하학적 선으로 자동차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으로 지금도 거론되는 ‘드로리안 DMC 12’를 비롯해 현대차 신형 전기차 아이오닉 5, 올해 7월 처음 공개된 고성능 수소 하이브리드 롤링랩(Rolling Lab) ‘N 비전 74’ 등도 포니 쿠페 콘셉트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됐다.

(왼쪽부터)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부사장), 조르제토 주지아로, 루크 동커볼케 현대차그룹 CCO(부사장).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왼쪽부터) 이상엽 현대디자인센터장(부사장), 조르제토 주지아로, 루크 동커볼케 현대차그룹 CCO(부사장).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루크 동커볼케 현대차그룹 CCO(부사장)은 “현대차그룹을 대표하는 아이콘을 복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를 창조한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과거 현대차 50년의 출발점이 포니였고, 향후 50년의 출발점은 포니의 디자인을 계승한 전기차 아이오닉 5가 될 것이다. 아이오닉의 영적인 아버지는 주지아로다”라고 강조했다.

■ 조르제토 주지아로 이력
· 출생 1938년(85세) 이탈리아
· 주요 경력
-2015~현재 GFG 스타일 운영
-2002 자동차 명예의 전당 선정
-1999 20세기 최고의 자동차 디자이너 헌액
-1968~2015 ‘이탈디자인 주지아로’ 설립 및 운영
-1965~1967 자동차 디자인업체 ‘기아(Ghia)’ 책임 디자이너 및 임원
-1959~1965 자동차 디자인업체 ‘베르토네(Bertone)’ 수석 디자이너
-1955~1959 피아트 특수 차량 설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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