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 최두환 박사 초빙강연 
430년 앞선 ‘성공리더십’ 집중 재조명 

28일 최두환 교수가 이순신국제리더십센터에서 주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황건동씨 제공.
28일 최두환 교수가 이순신국제리더십센터에서 주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황건동씨 제공.

[창원(경남)=데일리한국 오웅근 기자] 진해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소장 손익준)는 지난 28일 최두환 박사의 ‘충무공 이순신의 핵심적 리더십’이라는 주제 강연을 펼쳤다.

최두환 박사는 해군교수로서 충무공수련원 연구실장과 충무공리더십 센터 교수를 거쳐 현재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 전문교수이다. 

이날 진해문인협회 신승희 회장과 회원, 부산과 통영 등 전국에서 온 이순신 연구회 회원과 해군 지휘관 등 약 100명이 참석한 이날 강연에서 최두환 박사는 이 충무공의 전모를 근래 보기 드물게 집중 분석해 주목됐다. 

먼저 최두환 박사는 누구에게 충무공의 칭호가 부여됐는지 그 면면을 살핀 후 삼도수군통제사, 선무1등 공신이었던 이순신을 일컬어 혁신의 아이콘으로 부각했다.

최 박사는 피터 드르거의 ‘위대한 혁신’이란 저서에서 보듯 ‘스스로 파괴하지 않으면 파괴당한다’는 교훈과 함께 “혁신의 시간을 담금질 해 혁신이 탄생했을 때 비로소 혁신국가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객석을 향해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을 던지고는 육당 최남선의 한국 해양사(1954년 12월)에 기록된 “누가 한국을 구원할 자이냐 한국을 바다의 나라로 일으킨 자가 그 일 것이다”라며 이순신을 가리켰다.
 

28일 최두환 교수가 이순신국제리더십센터에서 주제강연을 하고 있는 것을 방청객이 지켜보고 있다.. 사진=황건동 제공.
28일 최두환 교수가 이순신국제리더십센터에서 주제강연을 하고 있는 것을 방청객이 지켜보고 있다.. 사진=황건동 제공.

더욱이 일본 해군제독 사토 테츠다로가 말을 인용해 “영국의 넬슨이 세계적인 명장임을 누구나 아는 바이지만 그 인격이나 창의성에 있어서 도저히 이순신을 따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 박사는 리더십의 순수한 우리말은 ‘휫손’으로서 이는 “포용력과 사람을 다루는 솜씨, 일이나 사물을 잘 관리하는 수완 등을 일컫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충무공이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삼도수군통제사로서 수군을 모집할 때 사용한 모집공고문을 소개하며 당시의 전황을 가늠케 했다.

여기에는 “나라 위해 몸 바칠 진정한 충신을 찾습니다. 옛적부터 한 번도 들은 바 없는 흉변이 동방예의 나라에 침입해와 백성들이 고기밥이 되고 삼경이 함락되고 종사는 버려지고 임금은 서쪽으로 옮겨갔습니다. 오직 삼도 수군은 있는 힘과 의리를 바쳐 죽음으로 이 나라를 구하고자 합니다”라고 기록돼 있다. 

더욱이 그는 “이충무공이 13척으로 333척을 물리친 것 등은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은 무패 불패의 신화”라고 말한 후 임진∙정유재란 당시의 해전 상황을 집중 조명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이충무공이 1592년 16회 해전과 1593년 2회, 1594년 5회, 1597년 9회, 1598년 6회 출전 등 총 38회 해전 속에 기록된 무패 신화는 이순신의 휫손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의 정국이 무사안일과 위계질서의 문란, 청소년 비행 등에 휩싸여 있었음에도 임진왜란이란 국제 전쟁 속에서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이충무공이 조선을 세계 최강의 수군으로 만든 데서 비롯됐다고 강조하고, 일본이 소유한 군함에 비해 이충무공의 판옥선과 거북선의 위력이 엄청났음을 강조했다.

이르자면 방향을 전환해 함포전을 펼치기에 탁월하고, 왜군의 조총을 무력화하고 왜적선에 근접하거나 왜군의 승선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구조와, 배의 전후, 좌우에 화포를 배치해서 원거리 화포 공격을 할 수 있는 장점을 갖춘 점이다.

그러면서 최 박사는 이충무공이 지닌 인내력과 판단력과 재치와 용기 등에 비해 적잖은 신체적 질환에 시달려 왔음을 그가 기록한 난중일기에서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난중일기에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일 년 같았다. 비통함을 말할 수 없다. 땀이 나서 몸을 적셨다. 포탄을 맞은 자리가 아파서 소식을 곧 알려드리지 못했다. 진물이 줄줄 흘러 뽕나무 잿물로 연일 씻으며 온갖 약으로 치료하지만 아직 별로 차도가 없다. 어깨뼈를 깊이 다쳐 아직도 할 시위를 당길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자전적 고백이 또 다른 감동이 되었다.

이순신은 필승의 대 전략가였다. 수륙합동작전, 조명연합작전, 길목 차단전략, 군사기획, 정보수집분석 평가능력을 포함해 학익진, 장사진, 일자진 등 전술전략에 탁월한 한편 온 백성과 부하가 존경하리만치 남다른 리더십으로 전투력을 극대화시켰다고 알려졌다.

1996년 5월 5일, 이충무공의 난중일기에는 “밤이 깊도록 적게 마시고 뛰놀게 한 것은 내 스스로에게 즐겁게 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생한 장병들의 노고를 풀어주고자 한 것”이라고 기록돼 있어 그가 팀 워크 또는 조직문화에 공들여 왔음을 엿보게 했다. 

이순신은 변화를 주도하되 문제 해결력과 위기관리능력, 주도권을 잡는 기선제압, 승리확신과 자신감의 이미지 관리, 정보 통제력으로 주도권 잡기 등은 물론 적을 뛰어넘는 무기체계와 전술, 창조적이고 핵심적인 지식 개발 및 정보수집 등에서도 우위를 점했다. 

그 사례로 한산대첩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학익진을 개발하여 타격력을 높인 것 등이다.

이를 지켜본 왜적의 장수는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내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내가 가장 흠숭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내가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도 이순신이며 내가 가장 차를 함께 하고 싶은 이도 이순신이다” 라고 말했다는 것.

최 박사는 이충무공이 매 해전마다 남긴 교훈을 되새겼다. 당항포 해전에서 치밀한 정보 통제력으로 주도권을 장악하고 원균과의 갈등을 오히려 승화시키며 주적 개념을 확실히 했다. 

명랑대첩에선 백의종군히면서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리라’는 명언을 남기고, 노량대첩에서는 비협조적인 동먕군의 마음을 감복시키고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선조 임금은 이충무공이 돌아가신 뒤 내린 제문에서 “저 임진년 섬 오랑캐가 쳐들어와 모든 고을 무너질제 막아낸 이 누구더뇨. 그대가 그때에 수군을 거느리고 대번에 적장을 죽여 우리 위엄을 떨쳤도다. 지난해 패전하여 통탄스런 말 어이할꼬.그대로 그냥 두었던 들 어찌 그런 일이 있었으랴. 대장을 바꾸어 잘못된 건 나의 허물이라. 누구더러 도와달란들 넘어진 수레 어찌 도와주랴”라며 비통함을 금치 못했다.

최 박사는 이충무공을 일컬어 “백전불굴의 표상이며 변화를 주도하는 주축이자 통합과 화합, 소통의 휫손을 발휘했다”면서 “당신께서 국가와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보장하며 시대를 앞선 대역전의 성공 리더십을 발휘한 것에 대해 오늘에 거울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강연에 앞서 진해문인협회 신승희 회장의 시, ‘곰메바위 아리랑’을 한국명시낭송가협회 듀엣 김두자, 김미자씨가 배경화면을 곁들여 낭송해 한층 분위기가 고조됐다. 

이순신 아카데미 특강은 매월 마지작 주 수요일 오후 7시에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 1층 한산관에서 열리며 선착순 100명에 한해 무료이다. 다음 특강은 오는 10월 26일 정진술 교수의 ‘거북선의 모든 것’이다.   

28일 이순신국제리더십센터에서 강연회 이후 참석자 중 일부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황건동 제공.
28일 이순신국제리더십센터에서 강연회 이후 참석자 중 일부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황건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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