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니제티의 ‘여왕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인 ‘로베르토 데브뢰’가 내년 5월 한국 초연된다. 이로써 ‘안나 볼레나’와 ‘마리아 스투아르다’(사진)에 이어 시리즈 3부작이 완성된다. ⓒ라벨라오페라단 제공
도니제티의 ‘여왕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인 ‘로베르토 데브뢰’가 내년 5월 한국 초연된다. 이로써 ‘안나 볼레나’와 ‘마리아 스투아르다’(사진)에 이어 시리즈 3부작이 완성된다. ⓒ라벨라오페라단 제공

[데일리한국 민병무 기자] 오페라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라벨라오페라단이 내년 5월에 ‘로베르토 데브뢰’를 국내 초연한다는 뉴스다. 가에타노 도니제티(1797~1848)가 작곡한 ‘여왕 3부작’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2015년 ‘안나 볼레나’, 2019년 ‘마리아 스투아르다’에 이어 드디어 8년 만에 완전 합체가 완성된다. 브라보! 브라바! 민간오페라단이 그랜드 오페라급 세 작품을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기념비적 성과다.

세 개 모두를 관통하고 있는 인물은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다. “짐은 국가와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그를 둘러싼 가족사는 파란만장했다. 부친인 헨리 8세와 어머니 앤 볼린의 스캔들, 이복언니 메리 1세의 피 비린내 진동하는 통치, 5촌인 스코틀랜드의 메리 스튜어트 여왕 사건까지 연결되며 드라마틱한 실화로 가득 찼다. 튜더 왕조의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수많은 예술작품을 낳았다. 그런데 정작 엘리자베스 1세보다는 어머니인 앤이나 사촌인 메리의 비극적 운명에 더 관심이 많았다. 위대한 여왕은 조역에 그칠 때가 많았다.

잠시 옛날로 돌아가 본다. 헨리 8세는 왕비의 시녀였던 앤과 결혼하기 위해 가톨릭이었던 국교를 성공회로 바꾸는 대변혁을 단행한다. 교황에게 이혼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지만 이를 받아들여주지 않자 “오늘부터 영국의 교회는 모두 내 아래에 있는 거야”라며 뚜껑이 열린 것이다. 불같던 사랑은 금세 식었다. 아들을 낳질 못하자 누명을 씌워 런던탑에 감금했다가 참수형에 처한다. 그 후로도 헨리 8세는 이혼과 결혼을 거듭해 모두 6명의 부인을 뒀지만 자손은 첫 번째 왕비였던 아라곤 왕가의 캐서린이 낳은 메리, 앤의 딸 엘리자베스, 제인 시모어가 낳은 왕자 에드워드가 전부였다.

아버지의 뒤를 이은 에드워드 6세(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에 나오는 왕자가 바로 에드워드를 모델로 했다)는 병약한 탓에 일찍 죽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 다음 왕위에 오른 것은 캐서린 왕비의 딸 메리 1세. 일찌감치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어머니의 한까지 가슴에 품고 불우하게 자란 메리는 국교를 가톨릭으로 복귀시키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피바람을 일으켰고 잉글랜드는 큰 혼란에 빠졌다. 오죽하면 별명이 ‘피의 메리(Bloody Mary)’였을까. 결국 이복여동생인 엘리자베스에게 양위하니, 이가 바로 엘리자베스 1세다.

벨칸토 오페라의 거장 도니제티는 엘리자베스 1세를 중심인물로 내세워 오페라를 세 편 만들었다. 바로 ‘여왕 3부작’이다. 앤 볼린이라는 이름을 이탈리아 식으로 바꾼 첫 작품 ‘안나 볼레나’는 헨리 8세와 앤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앤이 결국 엘리자베스 1세의 모친이기 때문에 그의 그림자가 작품 속에 어른거린다.

다음은 ‘마리아 스투아르다’다. 메리 스튜어트를 역시 이탈리아 식으로 발음해 이렇게 제목을 달았다. 엘리자베스의 5촌 당질이자 프랑스 왕비였고 스코틀랜드의 여왕인 메리에 대한 이야기다. 생후 9개월에 스코틀랜드의 왕이 된 메리는 프랑스에서 성장했고 프랑스 왕비가 된다. 스코틀랜드로 돌아왔지만 복잡한 남자관계 탓에 백성들의 신망을 잃고 잉글랜드로 피신한다. 같은 튜더 왕가 핏줄이지만 종교적으로 대립되는 입장에 선 메리와 엘리자베스 1세는 실제로 정치적 라이벌이었다. 귀족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그들을 흔들어댔다. 자신을 거둬준 엘리자베스 1세를 배신한 메리는 결국 참수형으로 생을 마감한다. 오페라에서는 삼각관계라는 픽션까지 삽입해 두 여인의 팽팽한 대립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오페라 ‘로베르토 데브뢰’에서 드디어 엘리자베스 1세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다양한 가상인물을 등장시켜 극적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오페라다. 60대의 절대 권력자 엘리자베스 여왕과 30대의 연인 데브뢰 백작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질투를 그리고 있다. 자주 공연되지는 않지만 완성도나 음악적 세련미에서는 앞선 두 작품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년 5월 국내 초연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엘리자베스 1세의 재위기간은 45년이다. 지난달 96세로 별세한 엘리자베스 2세(1926~2022)의 70년 4개월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45년 동안 ‘퀸’이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만든 빅토리아 여왕(1819~1901)도 63년 7개월 동안 통치했다. 영국 역사에서 여왕들은 오랫동안 왕위를 지켰다. 치세(治世) 기간이 비교적 길었기 때문에 많은 업적을 이루어내는데 도움이 됐으리라.

최근 재미있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매출 1조원의 대기업 가운데 오너 패밀리가 아닌데도 가장 오랫동안 ‘대표이사 타이틀’을 꿰차고 있는 전문경영인 최고경영자(CEO)는 LG생활건강 차석용 부회장으로 나타났다. 18년 동안 난공불락이다. 뒤를 이어 OCI 백우석 대표이사 회장(17년), 계룡건설산업 한승구 회장(15년), 서희건설 김팔수 대표(14년)의 순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유독 금융회사 전문경영인 중에 ‘장수(長壽) CEO’가 많다는 점이다. 메리츠증권 최희문 부회장, DB금융투자 고원종 부회장, DB손해보험 김정남 부회장 세 명은 13년 동안 붙박이 대표이사로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금융사 CEO의 활약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대표이사 사장(또는 부회장)’이 아닌 ‘대표이사 회장’ 직함을 공식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이들은 7명인데 그 중 4명이 금융계다. △KB금융지주 윤종규 회장(2014년 11월 대표이사 선임) △미래에셋증권 최현만 회장(2016년 11월) △신한금융지주 조용병 회장(2017년 3월) △하나금융지주 함영주 회장(2022년 3월) 등이 전문경영인 대표이사 회장 클럽에 가입했다.

2022년도 이제 석 달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 연말과 내년 3월 중에 임기가 만료되는 은행권 CEO는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 손병환 농협금융그룹 회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박성호 하나은행장, 권준학 농협은행장 등 총 6명이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연임을 통해 지금의 체제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은행권이 잇따라 호실적을 냈고, 일부는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롱런(long-run)의 비결이 ‘손쉬운 이자장사’에 있지 않고, 변화무쌍한 환경의 변화 속에서 퀀텀점프를 할 수 있는 한방에 있기를 바란다. 제대로 실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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