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세계철강협회 지속가능성 최우수 멤버(Sustainability Champion) 인증패를 들고 있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세계철강협회 지속가능성 최우수 멤버(Sustainability Champion) 인증패를 들고 있다.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박태준 예비역 육군 소장이 1968년 우리나라에서 제철소를 만든다고 하자 세상 사람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 특히 세계은행은 가난하고 노동자 교육 수준이 낮은 한국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철강 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무리라며 대놓고 무시했다. 하지만 박 소장의 뛰어난 혜안이 세계은행의 예측을 뒤엎었다. 포스코의 모태인 포항제철소는 눈부신 성공을 거두며 ‘철강왕 박태준’을 탄생시켰다.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을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국가로 만든 기적의 사례 중 하나다.

1983년 포스코 신입사원 최정우는 동기들에게 “회장이 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갓 입사한 20대 중반 청년의 철없는 패기는 선배들은 물론이고 동기들로부터 타박을 불러왔을 법도 하다. 하지만 자기 암시의 효과는 컸다. 그는 35년 뒤 ‘포스코 회장’이라는 문구를 보란 듯이 자신의 명함에 아로새겼다. 그의 포스코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성공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일화다.

최정우 회장은 입사 이후 재무실장, 정도경영실장, 가치경영센터장, 경영전략실장, 기획재무본부장 등을 지냈다. 2015년에는 포스코의 컨트롤타워 격인 가치경영센터를 이끌며 ‘구조조정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71개의 국내 계열사를 38개로 줄이고, 해외 계열사는 181개에서 124개로 감량시킨 뒤 가진 수식어다. 덕분에 포스코는 7조원 규모의 누적 재무 개선 효과를 거뒀다. 포스코건설과 포스코에너지도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미래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

2018년 회장 취임 뒤에도 성과는 눈부시다. 2019년 3조8689억원에 그쳤던 영업이익은 2021년 9조2381억원까지 140% 가량 수직 상승했다. 올해도 호실적을 지속했다. 포스코홀딩스, 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케미칼 등 주요 계열사들은 2분기에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덕분에 지난 6월 국제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포스코홀딩스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A-로 상향 조정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무려 10년 만이다.

최 회장은 비서울대, 비엔지니어, 비제철소장 출신이다. 자칫 ‘철강 비전문가’라는 프레임에 갇힐 수도 있다. 그러나 대신 회계, 원가관리, 심사분석, 감사, 기획 등 ‘철강업의 뿌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만한 경력을 지녔다. 이는 최 회장이 포스코를 철강 외에 다른 미래 성장사업으로 시야를 넓힐 수 있다는 근거가 된다.

실제로도 최 회장은 요즘 박태준 명예회장의 창업이념인 제철보국(製鐵報國)을 재해석하는 데 여념이 없다. 포스코의 험난한 앞날을 헤쳐가기 위한 전략 구상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지난 3월 지주회사 포스코홀딩스의 출범 역시 ‘제2의 창업’ 작업의 일환이다. 철강 기업 포스코를 자회사로 두는 파격적인 결정이다.

창립 54년간 철강에 집중했던 포트폴리오를 ‘균형’으로 수정한 목적은 분명하다.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친환경 기업으로 변모하기 위한 조치다. 철강 중심이라는 이미지로 굳어진 회사의 가치를 끌어올려 100년 기업으로 가겠다는 승부수다.

3월 2일 서울 강남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포스코홀딩스 출범식에서 최정우 회장이 사기(社旗)를 흔들고 있다.  사진=포스코
3월 2일 서울 강남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포스코홀딩스 출범식에서 최정우 회장이 사기(社旗)를 흔들고 있다.  사진=포스코

지난 5월 발표한 2026년까지 총 53조원을 투자하는 포스코의 대규모 투자 계획에도 친환경이 가장 큰 포션(Portion)을 차지했다. 먼저 철강 사업을 친환경 생산체제로 전환하는 데 20조원을 배정했다. 철강 산업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자 정부가 중요시하는 ‘탄소중립’에 발맞추기 위한 차원이다. 또 친환경미래소재 분야에 5조3000억원, 친환경 인프라 분야에는 5조원을 투입한다. 친환경에 전체 투자금의 60% 가량을 배분한 것이다.

특히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그린수소의 생산체계 구축에 속도를 낸다. 수소는 리튬·니켈, 2차전지 소재와 함께 포스코의 7대 사업으로 선정되는 등 최 회장의 최대 과제로 꼽힌다. 수소 영토 확장은 세계로 뻗는다. 포스코홀딩스는 세계 곳곳에 생산 거점을 만들 예정이다. 중동, 동남아시아, 호주 등이 유력하다. 2030년에 50만톤, 2050년에는 700만톤을 공급하는 체계를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수소환원제철 기술 확보에도 사활을 걸었다. 제강 과정에서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하는 공법이어서 탄소 배출이 사실상 제로(0)에 가깝다. 2050년 상용화가 목표다. 이를 위해 집단지성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철강 업계 최초로 수소환원제철 포럼(HyIS)을 서울에서 열었다. 올해도 오는 10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제2회 포럼을 개최한다.

신사업 추진은 인사 혁신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순혈주의 타파다. 철강 사업에 길들여진 내부 인력의 성장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신사업을 발굴‧실행할 수 있는 전문가를 영입하는 데 힘을 쏟는 중이다. 수소와 이차전지소재, AI 등 연구개발(R&D)에 주력할 미래기술연구원의 조직 구성이 대표적이다. 포스코 그룹은 수소·저탄소 연구소장에 윤창원 KIST 박사를 선임하는 등 신사업을 이끌어 갈 전문가와 교수 등 60여명을 채용했다.

물론 지주사 체제 전환 이후에도 철강은 그룹의 핵심 사업으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계속한다. 포스코는 철강전문 분석기관 WSD(World Steel Dynamics)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강사’에 12년 연속 1위에 선정될 정도로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 중이다. 포스코는 2010년 이후 단 한차례도 1위 자리를 다른 기업에 넘겨주지 않았다.

포스코의 철강 경쟁력은 최 회장이 오는 10월 세계철강협회장직에 오르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새로운 철강왕의 탄생이다. 역대 포스코에서 세계철강협회 회장을 맡은 이는 3명이다. 김만제 전 회장(1996년)과 이구택 전 회장(2007년), 정준양 전 회장(2013년)이 글로벌 철강업계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세계를 누빌 최 회장 역시 국내 철강업 발전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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