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시간 제한, 사적모임 인원 제한 등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모두 해제된 18일 점심시간에 서울시청 인근 거리가 직장인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영업시간 제한, 사적모임 인원 제한 등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모두 해제된 18일 점심시간에 서울시청 인근 거리가 직장인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지난 18일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됐습니다. 회사는 임‧직원을 사무실로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상당수의 직장인들은 그간 도가 텄던 재택근무를 접게 됐습니다. 컴퓨터만 켜면 원격으로 가능했던 출‧퇴근, 대면회의, 해외‧지방 출장을 2년여 만에 사무실에서 준비하게 된 것입니다.

당분간 ‘시차 적응’을 호소하는 시대가 열린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비대면 근무만 꾸준히 해왔으니 대면 업무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건지도 모릅니다. 허니문 기간이 시작된 셈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한국인이 말이죠.

우선 현재 주요 기업들의 재택근무 상황을 살펴볼까요? 21일 재계에 따르면 포스코그룹은 전면 출근을 시작했습니다. LG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 신세계백화점그룹은 재택근무 비율을 기존 50%에서 30%로 낮췄고, 쿠팡은 90%에서 무려 25%로 완화했습니다. 코오롱그룹과 GS건설, 한화건설은 재택근무를 아예 종료했습니다.

물론 전면 출근을 시기상조라고 판단한 회사들도 적잖습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제철은 재택근무 최대 50% 가능 방침을 당분간 유지합니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와 현대중공업그룹은 직원들의 자율에 맡겼습니다. 재택근무와 출근을 병행하는 ‘혼합형 업무 체제’로 절충안을 찾은 기업들입니다. 거점오피스 근무를 확대하며 업무 환경의 유연성을 더하기도 합니다.

재택근무를 종료하는 까닭에 대해 많은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재택근무가 상대적으로 단점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내 소통의 부재, 파악하기 어려운 성과 등을 재택근무를 그만해야 할 대표적인 이유로 꼽습니다.

지난해 4월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매출 100대 기업의 56.4%는 코로나 상황 해소시 예전 근무 형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는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2020년에 비하면 1년 만에 22.5%포인트 증가한 수치입니다.

서울 서초구에서 의료기기 제조업체를 운영 중인 A씨(56)는 “생산직과 관리직의 형평성 문제 때문이라도 출근은 불가피하다”고 토로했습니다. 생산직 직원들이 관리직 직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출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오히려 ‘출근의 비효율성’을 지적합니다. 예로 직원들이 길거리에서 소모하는 출퇴근 시간과 비용을 아껴 이를 업무에 투자하는 것이 회사로선 더 이득이지 않느냐는 목소리를 냅니다. 효율적인 업무의 극대화가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입니다.

한 벤처 IT기업에서 근무 중인 B씨(37)는 “출·퇴근 시간을 아끼는 만큼, 회사와 직원 모두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며 “자기 개발의 기회가 확대되는 것과 같다”고 힘줘 말했습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해야 한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시대적으로 재택근무가 일종의 ‘복지’가 되는 세태이기도 합니다. 네이버의 경우, 최근 설문조사 결과 직원의 단 2.1%만 전면 출근을 바란다는 응답을 했습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서는 “재택근무가 없어지면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선전포고성 글이 잇달아 올라옵니다. ‘재택근무의 맛’을 본 MZ세대가 내놓은 나름의 슬기로운 직장생활입니다. 물론 이를 현실화할 이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인재를 확보해야 할 CEO 입장에선 신경을 안 쓸 수가 없겠죠.

이쯤 되니 재택근무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가려내기 어려워 보입니다. 노사갈등으로 번져선 안 될 텐데 말이죠. 하지만 괜한 걱정일지도 모릅니다.

외국 기업의 사례를 살펴볼까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를 눈여겨 볼 만합니다. 이 회사는 코로나19 발생 전에도 재택근무를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펜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 이후 비율을 늘렸을 뿐입니다. 주 2일 출근하고, 3일 재택근무 하는 식입니다.

재택근무의 확대는 업무 생산성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확인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실제 마이크로소프트는 2021년 11월 미국 상장기업 순위에서 시가총액 기준 1위에 올랐습니다. 2020년 7월 1위 자리를 애플에 내준 지 16개월 만입니다. 회사는 직원에게 재택을 주고, 성과를 얻었으니 만족할 만한 ‘거래’ 아닐까요.

재택근무가 줄어들면 여러 가지 사회적인 영향이 예상됩니다. 먼저 대중교통 이용률이 늘어날 것은 자명합니다. 또 회사 인근에서 식당 등 장사를 하는 자영업자들의 수입도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는 배달 외에도 홀 운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반가운 소식이 되겠네요.

재택근무가 재계에서 좀 더 활성화되고, 정착이 되면 부동산 시장에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출‧퇴근을 위해 굳이 회사 주변에 거주지를 마련할 필요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재택근무를 디딤돌로 삼아 주4일제 논의가 본격화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물론 이 모든 재택근무로 인한 정확한 득실은 엔데믹(전염병의 풍토화) 이후에야 기업의 운영 계획을 통해 상세히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른 아침에 출근하고 정해진 자리에 앉아 상사의 지시에 따라 정해진 업무를 수행하는 전통적인 회사의 근무 형태에 변화가 온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재택근무를 둘러싼 CEO와 직원의 ‘동상이몽’이 시작됐습니다. 당신의 오늘 출근 장소는 어디신가요?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