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족 휴대용 식량에서 전파…한반도 순대는 일상적이고 다양

대창순대, 막창순대 등도 귀해졌다. 이제는 당면순대가 대세다.
순대는 동물 혹은 동물의 내장에 소를 넣은 것이다. 순대의 주 재료는 동물의 내장이다. 여기에 곡물, 채소, 고기, 피 등을 넣고 찐 것이다. 다른 형태도 있다. 생선, 생선의 몸체를 이용한 것이다. 명태순대는 명태 몸체에 각종 소를 넣고 만든 것이다. 우리 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순대도 있다. 오징어순대 혹은 오징어 먹물 순대다. 오징어 몸체를 통째로 쪄낸다. 오징어순대다. 별다른 소를 넣지 않았지만 오징어 자체가 마치 순대처럼 생겼다. 흔히 오징어순대라고 부른다. 속초 혹은 속초 ‘아바이마을’에서 만나는 오징어순대는 오징어 내장을 빼내고 대신 각종 곡물, 채소 등을 넣고 만든다. 명실 공히 오징어순대다.

순대는 북방유목민족으로부터 유래한 음식이다

순대는 동물, 생선 혹은 이들의 내장에 선지, 부속고기, 곡물, 채소 등을 넣어서 쪄낸 음식이다. 6세기 경 편찬된 중국 농업 관련 백과사전 <제민요술>에 양고기를 이용한 순대가 기술되어 있다. <제민요술>을 근거로 순대가 6세기 무렵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순대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길다.

막 삶은 순대 모습.
순대는 고기 내장, 부산물 고기 등을 이용한 북방유목민족의 음식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다수설이다. 시기도 6세기 훨씬 이전일 것이다. 인간이 고기를 이용한 역사는 수천 년을 넘긴다. 예나 지금이나 고기는 귀하다. 내장을 버렸을 리는 없다.

아프리카 사자는 사냥을 한 후, 내장만 먹고 고기 부분은 버린다. 힘이 센, 사냥감의 주인 사자가 내장만 먹고 버리는 것은 내장이 가장 맛있는 부위이기 때문이다.

순대는 원나라가 고려에 주둔하던 시절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는 1270년 무렵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궁궐을 옮긴다. 이로부터 약 100년간 고려와 원나라는 교류를 잇는다. 순대는 이 기간 한반도로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시대 몽골의 원나라 군사들은 제주도에 주둔한다. 농경민족과는 달리 유목, 기마민족은 고기를 먹어야 한다. 제주도는 비교적 따뜻하고 습도도 높다. 돼지가 잘 자랄 수 있고 말 등도 기르기 좋다. 곡물이 귀하지만 풀 등은 흔하다.

순대는 유목민족의 휴대용 식량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이 순대가 몽골 원나라의 침략과 더불어 다른 지역으로 전달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몽골의 기마부대는 순대를 제주도뿐만 아니라 유럽에도 전파했다. 유럽에도 소시지는 흔하다. 동물의 내장을 이용하여 만드는 것은 동일하다. 독일의 각종 소시지와 이탈리아의 살라미 소시지 등도 몽골의 유럽 침입 후 전해진 것으로 추정한다. 소시지는 ‘유럽판 순대’다.

대창순대, 막창순대와 암뽕이다.
1123년(고려 인종 1년) 고려에 사신으로 와서 <고려도경(선화봉사고려도경)>을 남겼던 송나라 관리 서긍(徐兢, 1091∼1153년)은 “고려는 불교를 숭상한다. 고기를 즐겨먹지 않는다. 서민들은 일상적으로 얕은 바닷가에서 구할 수 있는 해물 등을 먹는다. 왕이나 높은 관리들만이 고기를 먹는다”고 이야기했다. 더하여, “고려의 짐승 도축 솜씨는 형편없다. 동물을 산 채로 불에 던져서 굽는다. 내장을 빼내지 않고 굽는 바람에 악취가 심하다”고 기록했다.

서긍의 <고려도경>과 원나라의 고려침공 사이는 불과 100년 남짓의 기간이다. 짧은 기간이다. 이때 고려의 짐승, 고기 다루는 솜씨가 갑자기 달라졌을 리는 없다. 순대가 원나라 침공 이후 한반도에 소개되었으리라 믿는 이유다. 이 무렵에도 순대는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료 자체가 빈약하지만, 고려 시대에 기록한 순대에 관한 자료는 드물다.

순대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에도 드물게 나타난다. 조선 말기 <시의전서> 등에 나타나는 ‘도야지(돼지) 순대’가 보기 드문 순대에 관한 기록이다. 1670년경에 기록된 <음식디미방>에는 개고기 내장을 요리하는 방법은 등장한다. 정확한 순대는 아니다. 개고기 내장 요리법이지 순대 만드는 법은 아니라는 뜻이다. 순대는 조선 말기까지 정확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순대를 먹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다. 민간에서 귀한 동물의 내장을 먹지 않고 버렸을 리는 없다. 먹었을 것이다. 다만 정식의, 법제화된 음식으로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법제된 정식 음식이라면 각종 행사, 제사, 손님맞이 상 등에 순대가 정식 메뉴로 나타나야 한다. 그렇지는 않다. 순대는 조선말기까지 숨어 있었던 음식, 먹기는 했으나 서민들이 먹었던 음식 정도였을 것이다.

남방 형 순대와 북방 형 순대?

순대 중 가장 흔한 것은 ‘당면(唐麵)순대’다. 동물의 피와 더불어 당면이 잔뜩 들어간 것이다. 당면은 1920년 무렵 한반도에 전래되었다. 당면은 전분(澱粉, 녹말분)으로 만든다. 중국에서 전래되기 전에도 한반도에는 전분이 있었다. 전분 면으로 국수를 만들고 오미자국물에 넣은 다음 시원하게 만들어 여름철 별식으로 사용했다.

순대는 동물의 피에 고기 부속물, 채소, 곡물 등을 섞은 다음 속으로 채운 것이다. 순대 한 점의 사진이다.
1920년대 중국, 만주 일대에서 생산되는 곡물이 한반도로 전해지면서 당면은 대량생산된다. 중국인, 일본인들이 운영하던 공장을 한국 사람들이 인수하여 당면을 대량 제조한다. 서민들도 당면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당면이 잔뜩 들어간 잡채는 이 무렵 시작되었다. 순대도 마찬가지. 이때 시작된 ‘당면 잡채’가 이제 우리 곁에 지천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반도 순대의 특징은 역시 다양함이다. 동물의 피를 넣기고 하고, 채소, 곡물, 당면 등을 넣기도 한다. 순대를 이용하여 순댓국 밥을 끓이기도 한다. 문명권의 대부분 나라들은 순대를 먹는다. 일본, 중국 모두 순대와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 유럽도 마찬가지. 여러 가지 형태의 소시지를 먹는다.

일본이나 중국 모두 순대가 우리처럼 일상적이지는 않다. 유럽의 소시지도 변형이 많지는 않다. 우리의 순대는 일본, 중국보다는 일상적이다. 유럽보다는 변형, 발전된 형태가 많다. 순대를 먹는 나라는 많지만, 우리처럼 변형, 다양한 발전을 거친 경우는 드물다. 순대마저 국물에 넣어서 국밥화한 나라는 없다. 한반도의 순대는 일상적이고 다양하다.

명태순대다. 명태 내장을 끄집어낸 다음, 그 속에 각종 채소, 곡물을 넣은 것이다. 이제 명태순대는 사라진 음식이 되었다.
순대의 재료에는 여러 가지가 사용된다. 양, 개, 돼지, 소 등의 내장을 주로 이용하지만 ‘어교순대’처럼 민어의 부레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시의전서). 명태순대처럼 명태 내장을 끄집어낸 후 그 자리에 곡물, 채소 등을 넣기도 한다. 오징어 먹물과 채소, 곡물을 뒤섞어서 속을 채우는 오징어순대도 있다. 모두 동물의 피나 내장 등과는 관련이 없다. 함경도 지방이나 속초 일대 등 동해안 중북부에서는 이렇게 생선도 순대에 사용했다. 순대는 여러 가지 형태로 널리 존재한다. 다만, 생선의 몸체를 순대껍질로 사용하는 경우는 지금도 다른 나라에서는 드물다. 한반도 순대의 다양함이다.

한반도의 순대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북방 형’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남방 형’이다. 북방 형은 함경도 ‘아바이순대’가 대표한다. 남방 형은 호남과 제주 등의 피순대다. 함경도순대는 여러 종류의 곡물, 채소와 피를 뒤섞어 돼지창자에 채운다. 피순대는 돼지 창자 속에 피를 위주로 넣은 순대다. 두 순대는 이름이 같지만 내용물은 전혀 다르다. 절단면을 보면 누구나 “어, 전혀 다른 순대네”라고 느낀다.

오징어순대다. 오징어 내장을 끄집어 내고 채소, 곡물 등을 넣은 것이다.
피순대는 고려시대 몽골의 원나라 군사들이 제주도에 주둔하면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도의 자연환경이 낳은 음식이다. 제주도는 기온이 따뜻하다. 굳이 순대에 곡물이나 채소를 넣을 필요가 없다. 사시사철 채소, 곡물이 비교적 흔하니 피만 넣은 순대가 정착되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피순대는 ‘한반도 남방 형 순대’라고 볼 수 있다.

함경도 ‘아바이순대’는 ‘북방 형 순대’다. 함경도 등 추운 곳의 순대다. 한국전쟁 무렵 실향민들이 강원도 일대로 전한 것이다. 강원도 속초 등지의 ‘아바이순대’다. 크기 내용물 등이 다른 순대와는 다르다. ‘아바이순대’는 피 위주의 순대가 아니다. 고기, 채소, 곡물 등이 풍부하다. 이 순대는 이제 서울과 우리나라 전역으로 번졌다.

순대국밥. 순대와 더불어 머리 고기, 각종 부산물, 특수부위를 넣고 끓인다.
조선초기까지도 함경도 지역은 여진족 등 이민족의 땅이었다. 세종대왕 시절 상왕이었던 태종이 4군6진을 개척하며 ‘조선의 땅’으로 편입했다. 이 과정에서 영토와 더불어 현지 이민족들, 이민족 음식인 순대가 한반도로 편입되었다. 짐승의 도축도 이들을 따라서 한반도로 전래된다. 국가에서는 도축을 엄히 규제한다. 조선초기에는 화척, 양수척 등으로 부르며 ‘도적’으로 취급한다. 농사를 짓지 않고 불법적으로 도축을 일삼기 때문이다. 조선 숙종 조 이후에는 이들을 ‘백정’으로 부른다. 그 이전부터 있었던 이름을 붙인 것이다. 고기, 창자를 사용하는 순대 등은 이들이 오랫동안 발전시켰을 것이다.

순대 혹은 순대 비슷한 창자를 이용한 음식들은 조선 중기의 <음식디미방> 후기의 <규합총서> <증보산림경제> 등에 나타난다. 소, 개 혹은 돼지의 창자를 조리하거나 그 창자 속에 곡물 등을 채운 것이다. 지금의 순대와 비슷한 음식은 조선 말기 <시의전서>에 나타난다. 그 이전의 음식을 두고 굳이 오늘날의 순대와 “같다”고 이야기할 근거는 없다. 순대는 오랫동안 한반도에서 먹었던 음식이다. 다만 기록이 없을 뿐이다.

[순대 맛집 4곳]

순대실록

서울 대학로의 순대전문점이다. 순대를 현대적으로 잘 해석했다. 소시지처럼 구워먹는 순대와 국밥형 순대도 있다. 깔끔한 인테리어도 아주 좋다.

서울순대

울산광역시의 순대 노포다. 푸짐한 함경도 ‘아바이순대’가 주 종목이다. 돼지고기 특수 부위와 더불어 내놓는 여러 종류의 순대가 푸짐하고 좋다.

정순순대

전북 익산의 순대, 수육 노포다. 순대, 수육, 순대국밥 등이 가능하다. 가게 입구에 순대와 돼지고기를 삶고 조리하는 공간이 있다. 전형적인 호남의 피순대다.

범일분식

제주도의 순대전문점이다. 아주 작은 가게. 이름도 ‘분식’이다. 제주도에 있지만 제주도 순대는 아니고 영남 식 순대다. 기름기가 강한 맛이다.

글ㆍ사진=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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