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데일리한국 이광희 기자]

당진은 다른지역에 비해 유달리 천도교가 뿌리깊은 지역이었다.

송전리 백남덕 전교사의 집으로 민재봉이 찾아왔다. 그의 집은 낮은 언덕을 베고 남향으로 앉아있는 들 가운데 집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주변에 민가가 없는 외딴집이었다.

언덕만큼이나 낮은 지붕을 땅에 붙이고 지기를 누르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집은 민재봉의 집에서 불과 이 리 남짓이었다.

손갓을 하고 눈을 들면 들 너머로 그의 낮은 지붕이 보였다. 그 역시 같은 천도교인이었다. 그래서 허물이 없었다. 다만 민재봉이 면서기라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백 전교사는 송전리를 중심으로 대호지면과 정미면, 성연면의 천도교인들을 부추겨 독립운동을 도모하고 있었다. 물론 교인들이 아니면 알지 못하도록 암암리에 움직이고 있었다.

그 일에 매달려 매일 교인들을 만나는 게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집에 붙어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민재봉도 두어 번 찾아가서야 그를 만났다.

“전교사어른, 긴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뵈었소이다.”

백 전교사가 민재봉의 손을 반갑게 잡았다. 본래 정이 많은 사람이라 사람 대하는 게 남달랐다. 구수하고 친근한 표정으로 민서기의 등을 다독였다. 민서기 역시 금새 그의 친절에 동화되고 있었다. 거친 손마디가 믿음으로 다가왔다.

“민서기 자네가 어인 일이여....”

민재봉을 방으로 안내했다. 그는 농기구를 손질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마당 구석에 삽이며 괭이, 쟁기, 갈고리 같은 농기구들이 즐비했다. 봄 농사를 준비하기 위해 벌써 채비를 서둘고 있었다.

“누추 허지만 안으로 드시게.”

백 전교사는 삽에 묻은 흙을 툭툭 털며 담 너머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그들을 감시하는 눈초리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바람이 찬 탓이었다. 농군들도 아주 멀리 보일뿐이었다.

먼저 방으로 들어 그를 맞았다. 좁은 방에는 잡동사니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멍석 깐 바닥에는 새새로 먼지가 찌들어있었다. 매캐한 댓진 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백남덕은 대를 주며 답배를 권했다.

“한대 허시지.”

도리어 민재봉이 주머니의 담배 갑을 내밀며 그에게 궐련을 권했다.

“아니 이건 심심혀서.... 맛이 있는겨.”

백 전교사는 궐련을 받아 두어 번 조몰락거리다 입에 물었다. 성냥개비로 북 긁어 불을 붙였다. 그러면서 같이 하자고 성냥불을 권했다. 손가락 끝으로 잡은 성냥불이 까만 재를 남기며 매달려 타들어가고 있었다. 재가 방바닥에 떨어질 판이었다.

하지만 민재봉은 큰형님 뻘 되는 그의 앞에서 담배를 빼 물기가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자신은 평신도이며 그는 전교사였다. 주저거렸다.

“아니여 혀. 어여.”

민재봉도 서른을 넘긴지라 크게 예의에 벗어난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럼 저도 한 대 하겠소이다.”

그제야 궐련을 빼물었다.

“ 그려.”

민재봉도 성냥불을 받아 궐련에 불을 댕겼다. 손끝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서둘러 재떨이에 타들어간 성냥개비를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길게 담배연기를 들이켰다. 좁은 방안이 온통 담배연기로 가득했다. 매콤한 연기에 댓진냄새가 묻혀버렸다.

백남덕은 궐련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발목을 교차시킨 자세로 앉았다. 두 팔로 무릎을 감쌌다. 맨발의 엄지발고락이 유난히 굵게 보였다.

“무신 일인디 그러는겨. 어제도 다녀갔담서.”

백남덕 전교사가 궐련을 빨며 말했다. 엄지발고락이 꼼지락 거렸다.

“예, 어제 왔더니 안 계시던디유. 요즈음 부쩍 바쁘시다 고......”

“일이 좀 그렇게 됐구먼. 자네도 천도교인 아닌겨.”

백 전교사는 담배연기 너머로 민재봉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싶은 눈치였다. 눈 속에서 그것을 다짐받듯이 말하고 있었다.

“그렇지유.”

민재봉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디.....”

그는 머뭇거렸다. 민재봉이 면서기인지라 조심스러웠던 모양이었다. 눈을 들어 다시 그의 눈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민재봉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제야 말을 이었다.

“손병희 교주님께서 민족을 대표하셨는디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건지 말이여. 천도교인으로서 도리가 아닌 듯도 싶고.......”

그는 뜨거워지는 손을 느끼며 길게 궐련을 빨아들였다. 그리고는 재떨이에 꽁초를 비벼 껐다. 그는 내심 민재봉에게 속내를 터놓을 생각이 없었다.

그가 면서기여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같은 교도임은 알지만 그래도 할 말이 있고 하지 못할 말이 있었다. 같은 교도라 에둘렀다. 한편으로 그의 눈 끝을 다시 살폈다. 민재봉도 그런 전교사의 눈치를 모를 리 없었다. 그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걸 눈빛으로 알았다.

“그래서 찾아뵈었소이다. 사실은 전교사 어른께서 도모하려는 일을 유생들도 준비하고 있소이다.”

민재봉이 들이대듯이 말했다.

“내가 도모하는 일은 뭐고 유생들은 또 뭐여?”

그는 놀란 눈으로 민재봉을 주시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를 감추지 않았다. 그가 안다면 면에서 동태를 파악했다는 것이었다. 백 전교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마 하는 바람으로 그의 동태를 살폈다. 민재봉은 길게 연기를 들이 킨 다음 재떨이에 꽁초를 비벼 껐다. 파란 연기가 몰씬 피어올랐다.

“대충은 알고 있소이다. 전교사 어른께서 어떤 일을 도모하고 계신지 말이외다.”

“그럼.”

“유생들은 사성리 남주원 선생과 도호의숙 출신이 주도하고 있소이다.”

들이켰던 연기를 길게 토하며 말했다. 입에서 말과 연기가 함께 쏟아져 내렸다.

“남병사 댁 남주원과 도호의숙 유생들 말이여?”

“그렇소이다.”

남병사 댁이란 말에 그도 차분하게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그럼 우떡한다는 겨.....”

“정확한 건 모르지만 전교사 어른께서 생각하시는 일과 같은 일을 하고 있소이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함께 일을 준비하는 게 어떨까 해서 찾아뵈었소이다.”

민재봉이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폈다.

“그 기 누구 제안인겨?”

백남덕이 눈 꼬리를 치켜 올리며 물었다.

“그냥 제 생각인데 일부 유생들의 생각도 들어있소이다.”

“그 무신 말씀이여. 우리는 교단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디. 몇몇 유생들이 하는 거사에 우리가 동참을 하다니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여. 차라리 그대들이 우리 교단에 동참하는 게 낫것구먼.”

그는 민재봉의 제안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담뱃대에 담배 잎을 비벼 넣었다. 엄지손가락이 꺾일 정도로 모질게 눌러 넣은 다음 대를 물었다. 입술을 여러 차례 옹당그린 다음 성냥불을 댕겼다. 뽀얀 연기가 방안 하나 가득 피어올랐다.

그는 양 볼이 오목하도록 연기를 빨아들였다. 나무를 투박하게 깎아 만든 재떨이에 담뱃대를 간간이 두드렸다. 불편한 심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전교사 어른, 이번 유생들의 움직임은 단순히 몇몇이 아니올시다.”

“그러면?..... 유생들이 몇이나 되간디.”

“유생들뿐만 아니라 면에서도 적극 동참하기로 했소이다.”

민재봉을 목젖을 누르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문밖의 동정을 살폈다.

“뭐여? 면이라니.”

백남덕 전교사는 그 대목에서 말을 잘랐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적잖게 놀라는 눈치였다.

면사무소는 일제의 말단 행정조직이었다. 그런 면사무소에서 만세운동에 나선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는 얘기였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주민들을 계도한다며 일제에 충성을 종용하던 게 면 조직이었다. 공출을 앞장서서 독려하고 일제 식민사상의 합리성을 계도한 것도 면사무소였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도리어 일을 도모하려면 면을 피하는 게 맞다. 그런 면사무소에서 거사에 나서는 일은 상상조차 어려운 말이었다. 더욱 믿음이 가지 않았다.

“누가 나선다는 거여?”

그는 의구심이 이는 눈으로 민재봉을 뚫어지게 들여다봤다. 담배 대를 입에서 떼고 귀를 바짝 들이댔다.

“이번에는 면장님과 면서기들이 나서기로 했소이다.”

민재봉이 백전교사의 귀에다 디고 조용하게 속삭였다. 작은 소리로 말했지만 그것은 큰 소리로 그의 귀에 들렸다.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였다.

“뭐여 누구?”

“면장님요. 그 정도면 면민들이 들고 일어난다는 얘기 아니겠소이까? 그러니까 함께 세를 키우자는 거지요. 같은 일을 하는데......”

민재봉은 백전교사의 눈을 들여다보며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여? 이인정 면장님이?”

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현직 면장이 거사에 동참한다면 놀랄 일이었다.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게다가 이 면장은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자인현감을 하고 돌아와 초대 면장을 한다는 말에 적잖게 놀란 일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자신보다 열두 살 위라 어렵게 모시는 형편이었다. 그런 면장이 거사에 나선다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확실한 겨? 이 면장님께서 이번 일에.....”

“쉿. 절대로 새어나가서는 안 될 말입니다. 제가 전교사 어른께 거짓을 고하겠소이까.”

민재봉이 더욱 낮은 목소리로 백남덕의 두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생각을 해봐야겠구먼. 어떻게 면장님이.....”

백전교사는 말을 들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대호지면에서 내로라하는 분들이 모두 동참한다고 들었소이다.”

“그런디 내게는 우째서?”

백남덕 전교사는 내로라는 분들이란 말에 조금은 서운한 기운을 내비치며 물었다.

“그러니까 제가 어제 찾아왔었지요. 어제 막 결정한 일이라.”

“그럼 민서기 자네도.”

“그렇쥬. 전교사 어른께서 아시는 분들 대부분이 함께하신다고 보시면 될 것이지유.”

그제야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담배 대를 물고 길게 담배연기를 들이켰다.

“그렇다면야. 더없이 좋은 일이구먼. 어차피 큰일을 위해 싸우는 건디 거사야 클수록 좋은 거 아녀. 함께하면 더욱 효과적이겠구먼. 손병희 교주님께서도 기독교와 불교를 연합혀서 독립을 선언하시지 않았는감.

그와 같은 이치잖여. 내 적극 동참하는 방법을 모색해 봐야겠구먼. 좋은 일을 함께하자는디 무신 문제가 있것나.

누가 하면 어떻고 누가 주도하면 또 어떤겨. 우리가 서로 도와 거사를 빛내도록 혀야겠구먼. 모두가 알 필요는 없네그려. 우선은 자네와 나만 알기로 허세.”

백전교사는 민재봉의 손을 덥석 잡았다. 민재봉도 그의 손을 다시 잡았다. 굵은 손마디에 힘이 들어갔다.

“예, 전교사어른.”

백남덕은 이인정 면장이 동참한다는 말에 어렵사리 동의했다. 민재봉은 이 소식을 송재만과 남병사 댁 남주원에게 즉시 전했다. 거사 준비는 차근차근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호지가 포함된 당진은 유달리 천도교가 뿌리 깊은 지역이었다.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기 전 동학으로 더 먼저 알려져 있었다.

당진에 동학이 들어와 본격화된 건 1890년대 초였다. 땅이 넓은 합덕에서 처음으로 농민항쟁이 발발했다.

1893년 12월. 전라도병사를 지낸 이정규의 탐학이 심했다. 그는 벼슬에서 물러난 뒤 당진 합덕연제수리계장을 맡았다. 연제 못의 물 관리 책임자였던 그는 물고를 핑계로 농민들을 착취하고 수탈했다.

이런 탐학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은 그를 고발하는 혈원록을 만들어 홍주목사에게 제출했다. 하지만 홍주목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리어 이정규가 합덕농민들을 죽여야 한다는 편지를 홍주목사에게 전달한 사실이 발견됐다.

이에 격분한 농민들은 1893년 12월 14일 밤 이정규의 집에 불을 질렀다. 이어 농민들이 봉기하여 관아에 적극 항의했다. 전북 고부에서 동학농민혁명이 발생하기 20여일 전이었다.

이렇게 뭉친 당진 농민들은 1894년 이창구를 중심으로 홍주목을 위협했다. 또 보령수영을 공격했다.

더욱이 이들은 1894년 10월 내포 농민군으로 발전하여 15,000명에 달하는 규모로 확산했다. 이들은 그달 24일 당진군 면천면 사기소리에 있는 승전곡에서 일본군과 관군을 무참하게 무찔렀다.

뒤늦게 평정에 나선 충청감영은 이정규를 유배하고 동시에 농민운동 책임자 나성뢰를 함경도로 유배시켰다.

이후 동학이 폐퇴하고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교주 손병희 선생이 당진에 은거하면서 그 세력이 다시 확산됐다.

손병희 선생은 1898년 6월 2일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이 처형되자 이곳 당진으로 몸을 피했다.

그는 당진 모동에 머물면서 무너진 동학 조직을 재건하는데 주력했다. 실제로 이곳에 동학대도소를 정하고 내포지역 동학세력의 조직을 재건했다. 그가 당진에 머문 시간은 1898년 8월에서 1899년 10월까지 1년 3개월이었다.

대호지 지역의 천도교가 유난히 활성화 된 데는 이런 연유가 있었다.

○저자: 이광희 데일리한국 기자, 데일리한국 충청 대표

소설가, 97년 등단

저서: 장편소설 『붉은 새』상.하. 『청동물고기』 1.2.3. 『소산등』, 『진시황과 녀』 소설집 『시계소년』 발간.

단편소설 「왕비의 팔찌」 등 다수 발표.

일반저서: 『문화재가보여요』, 『충청혼맥』, 『충청의 독립만세운동 어제와 오늘』 출간

한국소설가협회, 한국문인협회, 대전문인협회 회원, 현 한밭수필가협회 회장

대전시문화상, 오늘의 문학본상, 이달의 소설가상, 국세청장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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