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만 선생
[대전=데일리한국 이광희기자] 1919년 4월 7일.

검은 제복에 가죽벨트를 단단하게 찬 순사는 송재만을 포승줄에 묶어 경찰서 지하실로 끌고 갔다. 양발에는 사슬로 족쇄를 채운 채였다.

계단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발 또 한발을 움직일 때마다 치렁치렁한 사슬이 걸리적거리며 걸음을 방해했다. 쇠사슬이 바닥에 끌리며 특유의 경한소리를 냈다.

어두운 지하실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작은 방들이 돼지우리처럼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지하실 특유의 한기가 볼을 스쳤다.

눈구멍만 빠끔하게 뚫린 방마다 신음이 새어나왔다. 고문에 시달린 사람들의 애타는 고통소리였다. 우는 이도 있었다. 고통을 속으로 참느라 이를 물고 토하는 소리도 들렸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신음으로 가득한 이곳이 지옥이었다.

송재만은 애써 외면하며 좁은 복도를 따라 느릿하게 들어갔다.

그가 들어갈 방은 지하실 안쪽에 있었다. 낡고 두터운 나무문이 보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는지 문고리가 반들반들하게 닳아있었다. 문에는 101호란 취조실 명패가 붙어 있었다.

순사는 방문을 열고 그를 무덤덤하게 밀어 넣었다. 방에는 햇살도 들어오지 않았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 간 자국이 피멍처럼 벽에 묻어있었다. 역겨운 냄새가 배어나왔다. 지하실에서 올라오는 비린내는 역겨웠다. 천장에 매달린 삿갓등만 희미하게 낡은 책상과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순사는 그를 방 한가운데 덩그렇게 놓인 의자에 밀어 앉혔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하지 않고 그냥 나가버렸다.

송재만은 눈을 감았다. 지난번에 모질게 맞은 자국이 아려왔다. 이를 굳게 깨물었다.

이 방 저 방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귀를 찢었다. 각기 혹독한 고문이 이어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혼자 한참을 기다렸을 때 고등계 형사가 들어왔다. 그는 지하실 문을 모질게 닫았다. ‘쾅’하는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문소리로 기를 누를 심산이었다.

지난번에 본 그놈이었다. 콧수염을 길렀으며 얼굴이 거무튀튀했다. 저승사자를 보는 기분이었다. 눈을 맞추는 것조차 역겨웠다. 그럴 때는 눈을 감고 있는 게 상책이었다.

그는 송재만 앞에 놓인 의자를 장화발로 밀치고 앉았다. 고약한 놈이었다. 밖에서 만났다면 반죽도록 패주고 싶은 그런 놈이었다.

일본 앞잡이를 하는 조선 놈이었다. 이름은 알지 못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장마당에서 조차 한번 마주친 적이 없는 그런 놈이었다. 공주지검으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이놈을 만나야했다. 그가 담당이었다.

형사는 말없이 한동안 서류철을 뒤적거리다 곧이어 입을 열었다. 입에서 구린내가 났다.

“이름: 송재만, 생년월일 : 1891년생, 28세, 본적: 서산군 이북면 내리, 주소: 서산군 대호지면 조금리 364번지, 직업: 대호지면사무소 소사........맞나?”

형사는 불쑥 쥐어박듯이 물었다. 늘 반복적으로 묻는 말이었다. 조사를 받을 때마다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취조의 기본이었다.

수술 전에 의사가 환자를 확인하듯이 그는 취조 전에 꼭 신원을 확인했다.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장부를 뒤적이며 되물었다. “그렇소.” 송재만은 나직하게 대답했다.

“개새끼 목소리가 시원치 않아. 맞고 싶나?” “.......” “몇 월 며칠이야?”

그는 앙칼지게 물었다.

“뭐가요?”

송재만이 어눌하게 되물었다. “생년월일을 대란 말이다”

그는 금방이라도 뜯어먹을 태세였다. 앙칼진 강아지새끼가 앙탈을 부리는 듯했다. 꼬투리를 잡았다.

“모르오.” “뭐? 몰라. 네놈은 뭐든지 모르지. 내가 묻는 모든 걸 다 모른다고 입을 닫을 생각이지. 그래 그게 되는가 보자.”

형사는 순간 눈알이 뒤집혔다. 자신의 성질을 못 이겨 날뛰기 시작했다. 서류철로 책상을 내리치고 의자를 구둣발로 걷어찼다.

그는 미친놈 같았다. 눈이 휘둥그렇게 변하더니 책상 옆에 놓인 우신혁편을 들었다.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곧이어 매가 등짝을 후려쳤다. 살이 파였다. 몸이 활처럼 뒤로 휘었다.

송재만은 눈을 똑바로 뜨고 그를 노려봤다. 호흡을 참았다.

“노려보면? 보면 어쩌겠다는 거야.”

송재만은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앙다물었다.

“반항하는 거야?”

놈은 다시 그를 향해 매를 날렸다. 우신매는 매웠다. 우신혁편은 소의 음경을 말려 만든 매였다. 소좆매라고 불렀다. 이름만큼 기분 나쁜 매였다. 맞으면 매가 살에 착착 달라붙었다. 게다가 끝에 납을 달아 맨살에 맞으면 살이 패였다.

“아....으....아.”

송재만은 저려오는 고통을 참으며 온몸을 뒤틀었다.

“네 놈은 일본 대제국의 관리를 대하는 태도가 불량해. 그 버릇부터 고쳐야 하는 거야. 조서를 받는 건 그 다음이야. 대제국의 관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부터 배우고 조사에 임한다.”

그는 조현병 환자처럼 혼잣말을 한 다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어 머리며 얼굴이며 닥치는 대로 매를 갈겼다.

송재만은 양손이 묶인 채라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팔을 들어 매를 피하려 해도 발목 족쇄와 연결된 사슬이 놓아주지 않았다. 머리를 마구 흔들며 폭행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로지 매를 맞는 길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머리가 텅텅거렸다. 폭행만큼 모질고 고약한 고문이 없었다. 모든 걸 텅 비게 만들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머릿속이 백지가 되어버렸다. 순식간에 하얗게 변해버렸다.

형사는 숨을 헉헉거리며 매를 휘둘렀다. 송재만은 스스로 생각해도 반죽음에 이른 느낌이었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머리가 터지고 입술이 부풀어 올랐다. 눈, 귀, 얼굴 어느 한구석 온전한 곳이 없었다.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모질게 맞았다. 정신을 가다듬어도 금방 희미해져갔다. 상태가 온전치 못했다.

“으응으…….”

이를 물고 생앓이를 했다.

그제야 놈이 식식거리며 다시 그의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다리를 꼬고 한동안 숨을 몰아쉬었다. 확실히 제정신이 아닌 놈이었다. 문초는 숨을 고르고 난 뒤에 시작했다.

“오늘은 편히 가자. 이번 일을 누가 꾸몄나?”

그는 눈을 똑바로 뜨고 송재만을 노려보았다. 조금도 안쓰럽다는 기색은 애초에 없었다. 개돼지를 때렸다고 해도 마음의 동요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부류의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양심은 애초에 없는 인간이었다.

송재만의 입이 열리지 않았다. 고통이 가시지 않아 입을 여는 자체가 힘들었다.

같은 조선 사람으로서 울분이 속에서 끓었다. 앞잡이가 더 잔인했다. 이를 굳게 깨물었다.

“내가 했소. 내 혼자 했소.”

송재만은 겨우 고통을 속으로 삭이며 포효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고 했다. 정신 줄을 잡아야 한다.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나 눈이 지그시 감겼다. 몽롱한 기운이 그를 감쌌다.

“ 이새끼가 누굴 쪼다로 아나. 면사무소 소사 주제에 웬 개나발이야.”

사내는 적고 있던 조서 철을 들어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눈앞이 순간적으로 캄캄해졌다. 머리에서 미지근한 선혈이 목 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겨우 아문 상처가 다시 찢어진 모양이었다. 참는 게 힘들었다. 모든 걸 끝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정신 줄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또 다짐했다.

“다른 사람은 죄가 없소.” 송재만은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소리는 터져 나오지 않았다.

“소사새끼 주제에……. 말 같은 이야기를 해라 새끼야.”

사내는 구둣발로 정강이를 걷어찼다. 껍질이 벗겨져 피가 흘러 내렸다.

“내가 주도 했소.”

송재만은 기계적으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더 큰 소리로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 같지 않았다. 도리어 말이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정신 줄을 잡고 있으려고 애를 썼지만 점점 정신이 희미해져갔다.

“너는 대호지면사무소 소사야 소사. 소사 주제에 이 큰 소요를 주도 했다는 게 말이 되냐. 그 말을 누가 믿어, 지나가는 쥐새끼가 웃것다 ..?”

형사는 조서철로 다시 송재만의 얼굴을 후려 갈겼다. 코피가 흘러내렸다. 빈정거림이 역겨웠다.

“책임자는 나요. 내가 주도했소.”

재만은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이런 개새끼가.”

형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숨을 쉬지 못할 만큼 모질게 폭행을 다시 시작했다. 매로 때리고 손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구둣발로 정강이를 차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자 맨 발등을 구두 뒤축으로 짓이겼다.

“으윽.” “이래도 네가 주동자냐?”

사내는 미친개처럼 숨을 헉헉거리며 되물었다.

“그래. 내가 주도했소. 내가 계획하고 내가 선동했소. 내 조국, 내 강토, 내 나라를 내가 찾으려고 ... 왜 죄가 되오”

송재만은 정신을 가다듬고 더욱 꼿꼿하게 앉아 고함을 질렀다. 조금도 밀리고 싶지 않았다. 몸은 그 자리에 꼬꾸라지고 있었다.

목소리도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래도 정신을 바짝 차렸다.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다. 악을 쓰며 대답했다.

형사는 그런 태도가 더욱 못마땅했다. 맞으면 유순해지는 게 통례였다. 지금까지 그렇게 일을 처리했다. 하지만 송재만은 매를 대도, 처절할 만큼 고문을 해도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 모습이 불쾌하고 미웠던 모양이었다. 더욱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 새끼 정말 독종 새끼네.”

형사는 구둣발로 다시 정강이를 힘껏 걷어찼다. 가죽이 벗겨지고 피가 흘러내렸다. 정강이뼈가 드러날 지경이었다. 몹시 큰 고통이 그를 괴롭혔다. 형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송재만의 얼굴을 뒤로 홱 제쳤다.

“맛을 제대로 보고 싶다는 거지. 네놈이 약을 지르고 있어.”

형사는 주절거리며 여지없이 때에 찌든 젖은 수건을 그의 얼굴에 덮었다. 숨이 턱 걸렸다. 이어 주전자의 물을 들어 얼굴에 부었다. 고춧가루 물이었다.

고춧물은 참기 어려운 고문이었다. 온몸을 버둥거리며 고통을 참아냈다.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가슴이 갈가리 찢어지고 허파꽈리 하나하나가 예리한 칼에 찢겨 떨어져 나가는 아픔이었다. 이빨을 깨물 수조차 없었다. 호흡이 막혀 온몸이 푸들거렸다.

형사는 한참을 그렇게 하다 거의 초죽음이 되어서야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온몸이 고춧물로 뒤범벅이 되었다. 살아있다는 자체가 힘겨움이었다. 그는 대충 책상에 튀긴 물을 닦아내고 의자에 앉았다.

“다시 시작하는 거야. 알것지. 이래도 네놈이 주도 한 거냐?”

한참 동안 거친 숨을 토했다. 정신이 혼몽해졌다.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이 풀려있었지만 정신만큼은 아직 선명하게 세워두고 싶었다.

그동안 두 번 조사를 받았다. 이번이 3차 조사다. 그의 신원과 주변 인물 그리고 살아온 과정에 대한 조사를 하는데도 두 번의 조사가 지났다. 참으로 고단한 시간이었다.

고등계형사는 다시 조서철을 폈다.

“협조해라. 다 불게 되어 있어. 네놈 보다 더 독한 놈도 이곳에서는 불수밖에 없어. 암. 그렇지. 솔직히 그들이 왜 불겠어. 그러지 않으면 죽으니까.”

형사는 순순히 털어놓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는 말에 힘을 주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모의했나?”

송재만은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다시 묻겠다. 언제 모의했나?” “........”

모르는 일이었다. 그가 현장에 없었으므로 언제 모의했는지를 밝히면 도리어 거짓이었다. 고개를 내저었다.

“모르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이 전부 주도했다면서 몰라? 그러니까 네놈은 주모자가 아니야. 잔챙이 하수인일 뿐이야.”

형사는 스스로 단언하고 있었다. 사실 송재만은 몰랐다. 언제 어떻게 정확하게 모의가 됐는지는 알지 못했다. 만세시위를 준비하면서 들었을 뿐이었다.

“모의가 아니라 내가 생각했소.”

송재만은 겨우 대답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적의 답이었다. 그가 생각했으므로 거사가 이루어졌다는 의미였다.

“좋아. 그럼 언제 계획했나?”

형사는 그의 말을 적은 다음 다시 물었다.

“3월 10일” “10일?” “면천 학생들이 시위 벌였다는 얘기를 듣고…….” “좋아. 면천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다는 얘기를 듣고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 시위를 계획했다. 이거지.” “...........” 송재만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면천학생만세운동은 그해 3월 10일 면천공립보통학교 전교생이 나서서 펼친 만세운동이었다.

솔직히 송재만은 면천에 있는 보통학교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벌였다는 소식을 듣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른으로서 부끄러웠다. 그들만도 못한 어른들이라고 생각했다. 기회가 주어지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만세시위를 벌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일은 사실이었다.

“누구와 처음 상의 했나?” “..........”

송재만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꼬드겼소.”

겨우 대답했다.

“네놈이 사람들을 꼬드겨 일을 벌였다. 이 거냐?”

형사는 그의 눈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자 그는 그제야 송재만의 말을 기록했다. 송재만은 역시 고개만 끄덕거렸다.

“내가 주도했소.”

기어들어가는 말로 그렇게 했다.

“죽으려고 환장 했구먼 이번 일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 몰라서 그래. 네놈은 지금 옥에 들어가면 언제 나올지 몰라. 아니 죽어서야 나오겠지.”

형사는 검지로 송재만의 이마를 밀며 겁박했다.

“내가 했소.”

송재만은 눈을 희미하게 뜨고 녹음기 리플레이처럼 반복적으로 대답했다. 취조는 맹태와 단순한 질문의 연속이었다. 형사는 자신들이 구하는 대답을 원했다. 송재만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을 때는 그 대답이 나올 때까지 고문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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