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영 덕성여대 교무처장, "자율전공 학기제는 사회변화요구와 대학구성원 함께 만족할 수 있는 학사제도"

박건영 덕성여자대학교 교무처장.
[데일리한국 송찬영 교육전문기자] 한 때 ‘대학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이란 표어가 있었다. 대학의 힘 있는 연구와 교육이 나라 발전의 초석이라는 의미일 터다.

최근 대학들은 이구동성으로 ‘위기’를 언급한다.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급감해 대학정원을 채우지 못하는데다, 등록금마저 10년 넘게 동결돼 적자가 지속적으로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타격은 지역의 작은 대학부터 시작되고 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 문을 닫겠다’는 자조는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태의 근본 원인과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대학입학생 감소 전망은 이미 20여년부터 예견돼 온 상황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시행하는 것 중 하나가 교육부 주도의 대학혁신사업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대학으로 하여금 사회적 수요에 맞는 교육을 유도하는 한편, 대학간 연합 교육과정 운영, 대학 내 학과간 통폐합 등 대학사회 구조조정을 적극 유도 해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부의 강제된 힘에 대해 대학 내 반대의 목소리가 만만찮다. 대학 고유의 학문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논리이다. 사라지는 학과의 학생들과 동문들의 거부감도 변수가 되고 있다.

덕성여대가 지난해부터 수도권대학 최초로 실시하고 있는 ‘자유전공학기제’는 이러한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 크다. 본격 도입한지 불과 3년차에 들어선 제도라 성공했다고 결론 내리기 어렵지만, 구조조정이라는 극약 처방을 쓰지 않고도 목표를 달성하면서 구성원인 교수와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은 상황이다. 우려했던 특정전공 쏠림도 발생하지 않았다.

기획처장으로 이 제도를 기획했으며, 현재 교무처장을 맡아 실무 운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박건영 교수를 만나, 제도 도입 뒷이야기와 향후 보완될 제도적 과제에 대해 들어보았다.

- 대학사회의 덕성여대 자유전공학기제에 대한 관심이 높다. 교육부도 주의 깊게 지켜보는 듯하다. 학교 측에서 자유전공학기제를 집중 홍보한 효과도 있지만, 배포한 자료를 보면 실제 수치로 효과가 확인된다.

“자유전공제는 학부제 등의 형태로 오래 전 우리나라 대학에 도입 적용해온 제도다. 외국 유수의 대학에서도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문제는 이 제도를 시행하면서 학생들의 쏠림현상이 나타났고, 이에 따라 학문간 불균형이 일어나 제도 자체가 존폐위기에 몰렸던 것이다. 덕성여대만의 자유전공제는 지난 2019년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데, 부작용이 거의 없다고 자신한다. 실제 느낌이나 말이 아니라 통계 데이터 수치가 뒷받침 하고 있다. 우리대학의 강점을 사회와 예비 입학생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우리 대학 구성원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한편, 타 대학에도 우리의 성공사례를 함께 나누며 어려운 시기 함께 헤쳐 나가려는 의도로 적극 알리고 있다.”

- 그럼 덕성여대 자유전공학기제는 무엇이 다른가?

“시행 철학과 제도 운영 기술, 크게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다. 우리 학교 교훈은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이다. 여성 독립운동가로 덕성여대를 설립한 차미리사 선생의 교육철학이기도 하다.

여기서 ‘너’는 ‘나’를 의미한다. 나와 너는 하나다. 인간으로서 주체성을 의미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자유전공학기제는 스스로 생각하고 깨달아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대학에 입학해 자신에게 맞는 전공이 무엇인지, 무엇을 공부해야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지 2학기 동안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사유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이다.

이렇게 충분한 사유를 거치게 되니, 학생들은 소위 사회에서 인기 있는 분야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공부를 찾아 전공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운영 측면에서 학생들은 입학 후 1년 동안 학과가 아닌 인문사회계열, 이공계열, 예술계열로 나누어져 다양한 분야를 경험한다. 2학년이 되면 전공이 세분화되는데, 제1전공과 제2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이 때 학생은 제1전공으로 (계열별 각각) 22개, 10개, 5개의 전공 중 하나를 선택한다. 제2전공은 자신이 속한 계열을 넘어 대학 내 모든 37개 전공 중에서 선택하게 된다. 선택의 폭이 매우 크므로 쏠림 현상이 생기지 않는다.”

―제1전공과 제2전공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제1전공은 입학 시 선택한 전공계열에서 선택하는 것이고, 제2전공은 다른 계열을 선택하는 것이다. 타 대학에서 시행하는 부전공과는 다르다. 제1전공과 제2전공의 차이점은 단어나 행정적 처리 절차의 차이일 뿐이다. 계열을 넘어 1, 2 전공을 한다는 것은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매우 긴요한 융복합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학교 신입생들은 1년 평균 5개 정도의 분야를 경험하게 된다. 20학번 기준으로 평균 전공 탐색 과목이 4.6개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2개 전공을 신청하는 비율이 2019학번의 경우 20%에서 2020학번은 63%로 급증했다.”

- 쏠림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금까지 데이터를 보면 전공 쏠림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인문사회계열과 이공계열에서 가장 많은 학생이 선택한 전공은 각각 전체의 17%, 15% 수준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학생들이 특정학과에 몰렸다.

학생들에게 입학 당시부터 다양한 진로정보를 제공했다. 예비대학을 운영하고, 대규모 전공박람회를 진행했다. 사전 전공 선택 시뮬레이션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했다. 온라인 전공 박람회, 맞춤 전공 상담, 전공 데이(Day) 등 ‘전공 선택 디딤돌’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했다.

제1전공과 제2전공의 경우 수업권에 있어 차별을 두지 않았고, 학생이 얼마든지 자신이 선택한 전공을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쏠림현상이 크게 줄었다. 우리는 이 제도가 쏠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보다, 일어나더라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제도라고 자신했다.

가장 중요한 학습효과는 우리가 학생들이 얼마나 다양한 생각을 하고, 1년 동안 탐색하면서 생각들이 어떻게 분화하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는 점을 알았다는 사실이다.”

- 학생들 만족도는 어떤가? 교수사회나 동창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설문조사를 보면, 만족도가 높다. 물론, 모든 대학이 그렇듯이 학과 중심사고가 워낙 오래됐기에 바로 사라지지는 않았다. 진로지도 시스템을 더 정비하고, 대안을 만들면 긍정적으로 진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학교 정도의 규모에서는 대학과 교수, 학생 모두 서로 윈윈 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 자유전공학기제의 또 다른 장점은 무엇인가?

“사회나 정부의 필요 요구에 따른 변화가 크지 않다. 새로운 제도가 생기면 대학 구성원이 가장 크게 걱정하는 것은 우리 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이다. 덕성여대는 이 제도 도입으로 사실상 학과별 정원이 없는 상황이 됐다. 따라서 경쟁력이 없으니 폐과를 하는 조정을 안해도 된다. 오히려 학생들은 선택하는 범위가 늘어 좋은 상황이 된 것이다.”

- 우리사회 교육 전반의 문제이지만, 덕성여대에서 시행한 진로교육은 오히려 고등학교에서 하면 좋지 않나 싶다. 고등교육 과정에 있는 대학생에게 전문교육이 아닌 기초 교양교육을 하는 것에 다른 견해를 제시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현실적으로 덕성여대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학생들은 입학 당시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많은 정보를 얻지 못한다. 중도 탈락률이 높은 이유 중 하나이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4년 내내 기초교양과목위주로 가르치는 대학도 있다.

내부적으로 격론이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휴대폰학과를 나왔나? 마윈이 전자상거래과를 전공했나? 어느 분야가 뜬다고 따라갈 것이 아니다. 필요한 기술적 능력을 배양하는 것을 오롯이 대학교육으로 수급하는 것도 아닌 시대다. 창의보다는 응용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공부하고 싶어 하는 것과 사회인력 수급을 분리해야 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 제도를 보완하는 측면에서 학생들이 재학기간동안 취업 위주와 대학원 진로로 나뉘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연구 중이다. 본교 대학원을 강화시키는 방법도 있고, 다른 대학과 연합하여 타 대학 대학원과 연계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 자유전공학기제를 실시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대학이 자율적으로 운영하기에는 법제도상 제한이 너무 많다. 가령,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자율주행 등 관련 인재 양성이 필요할 것이다. 교육부에서도 관련 전공학과를 만들라고 권유한다.

그런데 대학 정원을 묶어 놓고, 새로운 전공을 어떻게 만드나. 전공을 만들려면 다른 전공 인원을 줄여야 한다. 등록금도 동결토록 하고서, 어떻게 새로운 분야에 투자를 하나? 그래서 지금 시행 추진하고 있는 것이 대학 간 컨소시엄이다. 대학의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적 방안은 아니라고 본다. 앞서 얘기한대로 우리 대학은 자유전공학기제 실시로 이런 영향이 없다. 덕성여대가 실시하는 자유전공 학기제도 등록금 문제로 애로가 있다.

예를 들어, 인문사회계열로 들어온 학생이 2학년에 올라가 공과계열로 전공을 정했다고 치자. 공대계열은 인문사회계열과 달리 실험실습이 있기에 등록금이 비싸다. 따라서 학생 전체 등록금 납부액은 인상이 된다. 똑같은 학생인데, 등록금이 인상돼 정부 지원에 불이익을 받게 된다.”

- 교육부 대학정책의 기본이 학과를 기본으로 시행한 탓이 클 것으로 판단된다. 교육부가 보다 큰 제도변화에 소극적이라 그런 거라 판단하는 건가?

“교육부도 여러 가지 학사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입장에서 보면 유연성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 대학에 전면 자율권을 줄 부분도 있고, 일부 바꿀 수 있는 것도 있다. 특히 등록금 책정부분과 관련해서는 기존보다 더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고, 관련 시행령 개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코로나19로 학생들이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육의 질이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 요구는 타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단지 코로니19로 학교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등록금반환이나 특별장학금을 요구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현재의 대학등록금은 놀이공원을 빗대어 얘기하자면, 자신이 타고 싶은 것을 골라 해당 이용권을 구입하는 형태가 아니다. 이른바 종합이용권처럼 돼 있다. 모든 비용이라는 것은 항목별로 매칭 돼 있다. 대학 운영이 온전히 등록금에 매달려 있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에게 확대한 서비스도 많다. 지금처럼 주장하면 접근이 잘못됐다고 본다.”

- 3주기 대학평가를 받는다. 어떻게 전망하는가?

“그동안 우리 대학에 수많은 일이 있었다. 평가준비는 편람에 맞춰 하고 있다. 직원과 보직 교수들이 학교에서 밤을 새워가며 준비해 왔다. 정리가 안된 부분이 있거나, 미흡했던 부분, 상위 법령 변화를 대학에서 반영해야 하는 부분, 실적 등을 꼼꼼히 챙겼다. 핵심역량을 어떻게 보완 구현했는지 좀 더 세밀하게 정리했다. 성과관리도 지난 일 년 동안 열심히 했다. 상대평가다 보니 결과는 나와 봐야겠지만, 최선을 다해 성심껏 평가를 받으려 한다.”

박건영 덕성여대 교무처장 약력 덕성여대 국제통상학전공 교수, 강원도 지역혁신협의회 위원,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 한국통상정보학회 부회장, 전 덕성여대 학생처장·기획처장, 고려대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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