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공직자 출신 최민호 작가의 따뜻한 동화 이야기

[사진=미노스 제공]

1.

십 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말하기는 고사하고 뇌리에 떠올리기조차 마음이 아파 가슴속 무덤에 묻어두었던 이 이야기를 무덤에서 끄집어 올린 사람은 정작 무덤 속 묻고 있어야 할 그 친구였다. 나로서는 있었지만 없었던 것으로, 알지만 모른척하고 싶은 암막 속의 비밀처럼 가리고 싶은 이야기였지만, 세월의 관용에 힘입어 피 묻은 칼을 씻는 노병처럼 담담하게 술회해 본다. 그것은 끝없이 방황하며 알고자 기웃거렸던 어느 미지의 세계가 이 이야기를 통해 작은 쪽문을 살짝 열어 보여준 듯한 나의 느낌 때문이기도 했다.

2.

이른 새벽에 전화벨을 울려, 휴일아침의 물 맑은 호수에 돌 하나를 던진 사람은 유광현이었다. 까마득히 15,6년은 지났을 터인데, 난데없이 전화를 한 친구. 그 친구는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 먹은 듯 우람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이가 들었어도 목소리는 하나도 변함이 없구만, 친구. 나 기억하겠나? 나. 광현이야.” “광현? 유광현?...” “그래, 전설처럼 오래 됐구만. 소식 들었네. 축하하네.” “........” “자네 아들 말이야. 현구. 신문에 떴더구만. 축하해. 덕분에 자네 연락처를 알 수 있었네.” 그랬던 모양이었다. 최현구. 내 아들. 미국의 명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네이처 지에 논문 몇 편이 게재되어 학계에서 어느덧 유명인사가 된 덕분에 파격적으로 과학기술대학에 초빙교수로 온다는 기사가 난지 며칠 지난 후였었다. “고맙네. 축하해 주어서.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이렇게 오래간만에...그간 어떻게 지냈나? 건강하고?” 워낙 오래간만의 느닷없는 전화에 무얼 물어도 어색하기만 한 물음에 광현은 내 질문에는 대답도 없이 말했다. “엉. 시간 있으면 만났으면 하네. 오늘 저녁 어떤가. 휴일인데 미안하네만.” 빠른 판단과 단도같이 찌르고 들어오는 어투에서 변함없는 그의 성격이 기억 속에서 재생되었다.

고교시절 그는 우리들의 카리스마였다. 지하 서클의 대장쯤 되었는데 체격과 머리회전과 언변이 비상했었다. 그 또래로서 동급생들과는 비견될 수 없는 비범한 친구였다. 그의 어른스러움과 범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는 그의 수하의 부하가 되는 것이 자랑스러울 지경으로 우리를 압도했었다. 세월이 흘렀어도 핸드폰 속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동굴 속에서 울려 나오는 바리톤의 톤으로 여전히 카리스마의 여운이 있었다. 물살에 떠내려가듯 그의 약속에 응락하였다.

이른 새벽에 그와 통화를 끝낸 뒤, 하루 종일 유광현이 말한 약속을 떠올리며 온통 상념의 파랑에 나부꼈다. 실로 오래간만에..., 그다지 애써 상기하고 싶지 않았던 추억이었다.

3.

유도연. 유광현의 아들. 내 아들 현구와 과학영재고등학교 동급생이었다. 모범생 기질의 나는, 아들 덕분에 같은 학부형이라는 입장에서 기질로 말하면 대각선상에 있는 광현과 가깝게 되었는데, 아버지와 아들이 각각 고교 동창이라는 인연도 각별한 것이었지만, 그보다는 과학영재고라는 수재들의 학부모라는 각별한 자부심이 우리를 더욱 끈끈하게 만든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구는 물리를, 도연이는 컴퓨터를 공부하였는데, 두 녀석이 대견하게도 1,2등을 다투는 쌍벽을 이루었다. 아들 자랑이라는 것을 쑥스러워 삼가는 편인 나에 반해 광현의 아들자랑은 거침이 없었다. 당시 무슨 IT사업을 한다는 광현은 아들 도연의 대학진학은 물론, 대학 졸업후 진로까지도 시나리오를 거창하게 짜서, 나를 만나면 말하자면 프리젠테이션을 하는데, 해박한 컴퓨터세계의 미래와 그의 방대한 IT분야의 지식은 나로서는 상상도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여서, 그의 무지갯빛 청사진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SF영화를 보는 듯하였다. 그는 지금부터 스스로의 인생을 아들에게 헌납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곤 했고, 그에 상응하는 조언과 투자를 아들의 동반자로서 아낌없고 빈틈없이 쏟아 부었다. 그런 그를 볼 때마다 나는 자괴감을 느꼈는데, 내 아들이 하는 물리학은 나로서는 어떤 조언도 도움도 줄 수 없는 피안의 세계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도연이를 보면서 나는 현구에게 은근히 미안하고 부끄럽기도 하였다.

다행히 현구와 도연, 두 녀석들도 가깝게 지내며 서로가 공부를 도와주는 좋은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아들 소식을 이웃집 유리창 들여다보듯 소상히 알 수 있었다. 도연은 아버지와 스스로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기에 틀림없는 영재였다. 훤칠한 인물과 쿨한 성격, 영민할 뿐 아니라 아버지를 닮아 리더십이 출중한 학생이었다. 어디에 내놓아도 아버지 광현이 자나 깨나 자랑할 만한 아들임에 틀림없었다.

그들이 2학년 중반에 접어들 즈음. 영재고는 조기 졸업제도가 있어 대학 진학을 위한 경시대회 준비에 분주하다는 말을 듣고 있을 즈음, 현구가 침울한 충격에 싸여 집에 들어왔다. 도연이가 갑자기 입원하였다는 것이었다. 간단한 입원이 아닌 듯 했다.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 무슨 일이 있으랴 싶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안부 차 광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였다. 예의 그 바리톤의 굵은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 왔다. “날쎄. 광현이. 나 좀 보게나.” 굵지만 결이 바랜 듯한 목소리였다. 어투도 평소의 광현이 답지 않았다. 불안한 가슴을 안고 그를 만났다. 광현은 얼굴마저 창백하고 뺨이 갸름해져 있었다. 핼쓱한 얼굴로 나를 보자마자 내 손을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도연이가 백혈병이라네. 백혈병...” “뭐?!.....” 나는 백혈병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잘 모른다. 영화 속에서나 자주 보았던 병. 난치병이라는 무서운 선입견이 있을 뿐이었다. 무슨 말을 하여야 할지 그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광현은, “의사가 가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네. 아직 나이가 있으니까. 문제는 도연의 체력하고...” “체력하고....” “....돈이야...” “돈?” “치료비가 워낙 비싸. 거액이 든다네....” 의료보험이 지금처럼 잘되어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그래서?” “돈을 마련해야 하네. 돈...” 그는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갈퀴처럼 찔러 움켜쥐고 흔들었다. “팔아야 할 것은 다 팔았네... 회사가 부도난 지 한 달이란 말이네... 빚에 ㅉㅗㅈ기고 있어. 무슨 돈이 있겠나... 정말 미치겠네.”

나는 아연히 그를 바라만 보았다. 돈? 이처럼 받아들이기에 난감한 단어도 없었다. 어쩌란 말인가? 나에게 돈이라도 꾸어달라는 말인가? 빚 보증이라도 서 달라는 말인가? 막막하기가 눈앞의 절벽이었다. “어떻게 안 되겠나? 좀 도와주게... 도연이 좀 살려주게...” 골수이식 수술을 해야 하는데, 골수를 찾는 것을 비롯해 최소 1억이 든다 했다. 그나마도 완치된다는 보장은 없다 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최선은 다 해보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 어린 도연이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1억. 회사 월급쟁이인 나에게는 천문학적 액수였다. 광현은 통이 달랐다. “그까짓 1억. 부도만 안 났어도...친구. 어디 변통할 데 없겠나?”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우선 입원한 도연이를 만나보기로 했다. 담당 의사와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야 할 것 같았다.

4.

광현과 함께 입원실에서 본 도연은 과연 인재였다. 눈썹이 또렷하고 맑고 영민한 눈매에 야무진 입술, 후리후리한 키. 병상에 누워있던 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였지만, 팔뚝과 입과 등에 매달려 있는 주사액의 호스와 장치들로 몸을 일으키기란 어려웠다. 곧 무균 격리실로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청천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1-2개월도 아닌, 단 며칠 사이에 사람이 이렇게 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도연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눈 속에 또 한 아이의 얼굴이 있었다. 내 아들 현구였다. “도연아, 나 알겠니? 현구 아버지야.”

도연이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녀석의 눈 속 깊은 곳에서 눈물이 배어나와 눈가를 따라 주루루 흘러 베개를 적셨다. 아이는 아이였다. 그런 도연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도연아, 많이 아프지? 걱정하지 마라. 곧 괜찮아질거야. 조금만 참자.”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무력한 아버지, 무기력한 어른이었다. 돈...돈...돈...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부산스런 기척이 있으면서 몇 명인가 여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여중생들이었던 그들은 우리를 보고 대충인사를 하고는 도연이 병상에 쪼르르 몰려가 ‘오빠. 오빠. 도연이 오빠.’ 하면서 훌쩍거리는 것이었다. 도연이가 손을 내밀자 모두 도연이 손을 잡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중 한 여학생이, “오빠, 걱정 마. 우리가 기도할 거야. 하나님이 오빠 건강하게 해주실 거야. 주님이 우리 소원을 들어주실 거야. 걱정 마. 오빠.” 라고 말하자 도연이는 고개를 강하게 끄덕끄덕 하였다. 도연이는 친절한 교회 오빠였다. 자상하고 믿음이 강하여 주일학교 선생을 하면서 주일 저녁이면 아이들 공부도 가르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빛나는 아이돌이었다. 나는 도연이를 다시 쳐다보았다. 인물, 성품, 실력... 그는 무쇠로 만들어진 우리 아버지들과는 재질이 달랐다. 그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아들이었다. 자랑스럽게 아들을 위해 자기를 헌납한다는 광현의 애정은 집착도 과장도 결코 아니었다.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울며불며, 바닥에 꿇어 앉아 하나님께 기도를 하던 여학생들이 떠나간 후, 나는 도연에게 다가갔다. 소심한 내가 왜 그때 도연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지금도 모를 일이다. 나는 도연의 손을 잡고 힘을 주어 말했다.

“도연아. 걱정마라. 너는 틀림없이 낫는다. 돈은 아무 걱정하지 마라. 내가 책임진다. 이 아버지 친구가 책임진다. 알겠지. 힘내고 희망을 갖고 열심히 치료 받아라 알겠지?!”

도연이는 나의 말에 움직이지 못하는 입술을 움찔하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거려 나에게 답했다. 우리는 병실을 나와 찻집에 갔다. 나는 광현에게 제안했다. “방법이 없다. 모금하자. 너는 움직일 수 없을 거다. 내가 해보마. 너는 가만히 있어라.” 늘 소극적이고 피동적이었던 내가 감히 천하의 유광현에게 이렇게 명령처럼 말했을 때, 광현은 순한 양같이 두 손을 모으고 고분고분 응하였다. 광현이 말했다. “고마워. 나 교회에 나갈게. 열심히 기도할게. 내가 할 게 그것밖에 없네...”

나는 아들 현구를 불렀다. “너는 네 친구들에게 모금 운동을 해라. 가만있을 수는 없을 것 아니냐. 아버지는 아버지 친구들에게 모금운동을 해보마. 목표는 1억이다.” 다다를 수 없는 액수같기만 했다. 신문에 내보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이 어디 하나 둘이겠는가? 효과가 없을 것 같았다. 거기에 동정을 구한다는 비참한 마음이 도연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았다. 명문고 출신이라는 쓸데없는 자존심도 고개를 내밀었다. 곧 현구는 과학고 차원에서 모금운동을 시작하는 것 같았고, 도연이 교회에서는 교회 나름대로 모금운동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좀처럼 나가지 않던 동창회에 나갔다. 모이기만 하면 나름대로 명문이라고 뻐기던 동창생들에게 광현의 어려운 처지를 말하고 호소했다. “동창 좋다는 게 무어냐, 명문이 왜 명문이냐. 십시일반으로 돕자. ” 친구들은 조용히 들었다. 별 말들이 없었다. 난감하기는 매일반이었다. 선뜻 나서는 친구도 없었다. 나는 모금 추진위원장을 맡기로 자청하였다. 나는 동창생들에게 편지를 썼다. “아들이 있는 아버지들이여. 친구들이여. 10만원만 희사해다오. 우리의 친구를 살리고 우리의 아들을 살리자....” 명 문장은 아니었지만 절절히 편지를 써서 일일이 부쳤다. 동창생들은 성의껏 모금하자고 나름대로 호응해주었다. 재력이 있는 친구들에게는 별도로 만나 모금을 부탁했다. 100만원씩 100명이면 1억이었다. 계산은 간단했지만, 모금은 계산같지 않았다. 1억이라는 목표는 아득하기만 했다.

5.

광현이 전화를 걸어왔다. 병원에 와 달라는 것이었다. 도연이가 병원에서 밥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을 아는지라 내심 거의 포기하고 있다가, 그날 ‘내가 책임진다. 아버지 친구가 책임진다.’ 며 모금운동에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도연이가 밥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억지로라도 밥을 먹겠다고 의사에게 조른다는 것이었다. 밥을 주면 넘기자마자 토하면서 그는 먹어야 산다면서 밥을 조른다는 것이었다. 삶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이었다. 이 눈물겨운 모습에 의사도 간호사도 눈물을 닦았다고 했다. 병실에서 도연이를 만나자 나는 더 큰소리로 도연에게 말했다. 돈은 걱정말라...문제는 너의 의지다... 염려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고 외쳤다.

모금을 시작하고 얼마가 지난 뒤, 필하모닉의 콘트라베이스 수석 주자인 동창생 김창호에게서 연락이 왔다.“1억 이상 모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어떤가?” “그래?” 나는 반색하며 그에게 물었다. 그는 자기네 필하모닉에 부탁해 볼테니 자선음악회를 열자는 것이었다. 그의 소속 필은 대단히 명성이 있는 하모닉이었다. 필이 자선공연만 해준다면 입장 수익 1억은 문제가 아닐 것 같았다. 공연 비용이 드는데 모금액으로 비용을 부담하고 나머지 입장수입으로 병원비를 충당하자는 것이었다. 티켓판매가 얼마나 될지 미지수이기는 했으나, 막막하게 모금하는 것보다는 명분과 댓가가 있어 모금에 유리할 것 같았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모금의 양상이 바뀌었다. 기부를 호소하는 것에서 음악회 티켓을 파는 일이었다. 다행히 필 단원들도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는 말이 들어오면서 희망의 등대에 불이 켜진 것 같았다. 모금활동에도 활기가 충만되었다. 포스터와 티켓 제작비, 대관료등 실비 비용만 지불하고 입장 수익은 전액 기부하는 조건으로 우리는 자선 음악회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수준 높은 필하모닉의 컨텐츠와 자선 음악회라는 명분이 생기자 모금은 열기를 더해갔다. 나는 병원에 가서 도연이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그러면서 음악회가 열리면 멋진 인사말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네 생애 최고의 명연설문을 만들어 보아라...” 곧 광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들이 자기 좀 걷게 해달라고, 걸음연습을 하게 해달란다는 것이었다. 눈에 띄는 호전은 없어 일어날 수는 없는 형편이지만 부축해주면 걷겠다는 것이었다. 도연이 얼굴에 희망이 보인다고 광현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도연이는 병상에 누워 무언가를 외우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음악회 때 할 인사연설이었다.

음악회는 장소 섭외 등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티켓 판매와 팜플렛, 포스터 등 여러 일에 몰두하다보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다. 하루하루 모금액이 은행계좌에 입금되는 것을 체크해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모금액은 어느덧 8천만원에 이르렀다. 돈이 모이면 모일수록 병은 나아진다는 희망에, 1억이라는 완치 목표액을 눈앞에 그리며 나는 음악회 날짜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광현은 매일 같이 하는 전화에서 도연이 나아지고 있다고 소리쳐 왔다. 의사들도 희망의 기적이 이런 것인가 싶다는 말까지 했다고 했다. 병의 치료는 의사가, 치유는 신이 한다는 담당의사의 말에 나는 눈을 감고 기도를 하였다.

음악회의 레파토리는 희망의 내용으로 구성하기로 하였다. 도연이가 일어나 씩씩한 모습으로 걸어 나오는 것을 상상하며 김창호는 첫 셋션의 첫 번째 레파토리로 ‘라데츠키 행진곡(Radetzky Marsch)’을 넣었다. 오스트리아의 라데츠키 장군의 승리를 기념하여 지은 이 곡이 연주될 때 모든 관중은 함께 박수를 치며 장단을 맞추어 주는 것이 관례다. 승리의 환호를 외치며 도연의 회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상징한 것이었다. ‘희망의 나라로’, ‘축배의 노래’ 같이 레파토리는 모두 진취적이고 경쾌한 곡들을 선정하여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였고 마지막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환희의 송가’로 끝을 맺도록 구성하였다. 도연이가 병상에서 일어나 희망찬 미래를 열어나간다는 뜻을 담은 것이었다. 필 단원들도 이 의미가 있는 음악회에 최선을 다하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동창생 김창호가 애를 쓰며 진두지휘를 하였다.

음악회가 다가오면서 도연의 상태가 궁금했다. 무대에서 인사말을 할 수는 있는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면회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무균실 치료는 감염을 염려하여 가족에게도 극히 한정적으로 면회를 허용하였다. 나는 광현에게 음악회 추진상황을 말해주고, 도연에게 꿈을 잃지 말고 감동적인 인사말을 준비해 관중들에게 멋지게 보답하는 드라마를 만들어보자고 전했다. 광현은 알았다고 했고 고맙다고 했다.

음악회가 1주일 전으로 다가왔다. 문득 드레스 코드가 생각났다. 추진위원장으로서 나는 무대에서 준비한 분들에게 감사의 말도 전하고, 자선음픽맛?취지를 말하면서 관객들에게 답례를 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되어 흰 드레스 셔츠에 보타이를 매기로 했다. 도연이는 어떻게 할 것인가? 환자복을 입힐 수는 없지 않은가? 아니면 환자복이 더 나을까? 광현에게 전화를 하였다. 광현은 생각해보고 전화를 준다고 하였다. 과연 도연이가 무대에서 인사말을 잘 할 수 있을까?

얼마 후 1억원의 모금이 초과 달성되었다. 기분이 하늘을 날 것 같았다. 가슴이 설레었지만 자축은 도연이와 함께 갖기로 하고 애써 격앙된 기분을 자제하였다.

D-2일. 광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잘 들리지 않았다. 흐느끼는 소리만 들려왔다. 왠지 내 목덜미 살이 소름으로 서늘했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미안하다...엊저녁에... 도연이가....가고 말았어...” 나는 손에서 전화기를 놓치고 말았다. 도연이가 세상을 떠났단 말인가?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갑자기? 세상에, 세상에...이런 빌어먹을... 또 한 번의 청천벽력이었다.

6.

하얀 스테인레스 테이블 위에 화장을 끝낸 도연의 유골이 백색 가루로 소복이 쌓여 실려 나오는 것이 유리창 너머로 보이자, 광현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꺾어버렸다. 뱃속 깊은 곳에서 덩어리 같은 솜뭉치가 목과 숨을 막아 침도 숨도 삼키기 어려운 것 같았다. 숨이 막혀 꺽꺽대며 울음소리도 나오지 않는데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먹먹한 가슴이 시커먼 연기로 가득 찼는지 가슴을 쓸어안고, 손가락 끝의 핏기가 빠져나갔는지 손을 바르르 떨었다. 쿵. 광현은 도연의 장례식장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도연의 엄마, 교회의 목사님과 어린 여학생들...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오 주여, 오 주여, 오 주여! 하며 부르짖는 소리. 그 소리 밖에 나는 들을 수가 없었다.

7.

예정된 자선 음악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 중단할 수는 없었다. 이미 포스터와 팜플렛과 티켓이 다 팔려 나갔고, 필하모닉 단원들의 준비도, 아트센터의 스케쥴도 돌이킬 수가 없었다. 시간은 득달같이도 다가왔다.

연주회 날, 아트센터 7시. 아들의 장례를 치룬 아버지가 올 일인가 싶었지만, 아들을 살리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한 친구들과 필하모닉 단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며, 광현은 아내를 부축하고 검은 정장으로 아트센터 맨 앞줄에 앉았다. 나는 그와 사이를 두고 앉았다. 그의 쓰라린 아픔에 다가서 눈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왠지 그에게 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 아, 이 무슨 고문이란 말인가. 이 무슨 웃지 못할 희극인가. 아들을 잃은 비극에 빠져있는 부모에게 진중한 위로는커녕, 신나게 박수치며 키득거리는 축제의 음악이 연주될 것이라니... 상황을 모르는 음악회의 관객들이 마냥 즐거운 모습으로 하나하나 입장하기 시작했다. 만석이 되고도 입장은 계속 이어졌다. 젊은 영재의 불운한 병의 회복을 기원하는 자선모금 음악회. 그런 의미와 보람에 그들은 만족해하며 기뻐하였다. 나는 그저 눈을 꼭 감고 있는 수 밖에 없었다.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당초 순서에는 내가 개막전 인사말을 하려 했으나 생략하였다. 무슨 말을 하랴!

프로그램 순서에 따라 연주는 시작되었다. 지휘봉이 올라가면서 라데츠키 행진곡이 4박자로 경쾌하고 신나게 연주되기 시작하였다. 관중들은 환호하며 일제히 박자에 맞추어 박수를 쳤다. 두 번째 곡이 무엇인지 기억되지 않는다. 다만, 어깨가 들썩거리는 흥겨운 곡들에 광현 내외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앉아만 있었던 것이 기억될 뿐이다.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객석 맨 앞줄에서 들을수록 바늘로 찔리듯 아프기만 했던 괴롭고 밉도록 아름다운 필하모닉의 연주회가 끝났다. 관객들은 연주회의 여운을 잊지 못하겠다는 듯 일제히 기립하여 박수를 치며 앵콜을 외쳤다.

내가 무대로 뚜벅뚜벅 걸어 올라갔다. 객석에 있는 관중들이 이런 나를 보고 또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관객들을 둘러보았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헛기침을 여러 번 해야 했다. 객석이 조용해졌다. 쉰 목소리로 나는 나의 말을 시작하였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박수는 이제 그만 치셔도 좋습니다...” 이렇게 시작하여 나는 오늘 이 음악회의 추진 경과를 천천히 설명했다. “...그리고 그 유도연군이... 오늘 무대에 나와... 여러분에게 비틀거리며... 준비한 감동어린....감사의 인사말을 준비했습니다만... 그만....이틀전에... 도연군은....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목이 쉬어 듣기에 몹시도 거북한 목소리로 떠듬거리며 말했다. 객석에서 깊은 한숨과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술렁대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왔다. 어느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아무도 일어나지 못했다. 객석은 충격과 슬픔에 무거운 정적만이 가득했다. 이 어색한 순간을 어찌해야 할지. 엉거주춤 서 있는 나의 뒤로 김창호가 나왔다. 그가 지휘대에 올라섰다. 그리고 조용한 선율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죽음의 명상’이라 불리는 진혼곡 모차르트의 ‘레퀴엠(Requiem)’이었다. 도연의 혼을 위로하고 부디 천국에 가서 안식하라는 장엄하고 구슬픈 진혼곡이 시작될 때, 나는 무대에서 내려와 유광현 그 친구가 앉아 있는 자리로 가서 광현 내외와 부둥켜안았다. 광현의 뜨거운 눈물이 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객석에 있는 모든 관중이 한사람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김창호 지휘의 레퀴엠이 다 끝날 때까지 모든 관객은 그렇게 서 있었다. 가장 빠르고 가볍게 시작한 우리의 음악회는 그렇게 가장 천천히 무겁게 그리고 조용히 끝났다.

삽화 = 인전

8.

1억의 모금액은 광현에게 전달하였지만, 나는 그 뒤 광현을 만나지 않았다. 광현이 연락을 해오면 만나겠지만, 친구의 심정을 생각해서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것을 삼갔다. 그 뒤 그에게서는 아무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도 그에게서 연락을 받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동창들 사이에 광현과 그 아들 도연의 이야기는 암묵적인 금기 사항이 되었다. 술자리에서도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피했다. 애써 잊고자 했다. 너무도 아픈 상처라서... 나는 아들 현구의 결혼식에도 광현에게는 연락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달려와 아들의 결혼을 축하해 줄 동창이 단 한 사람 있다면 바로 그 친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리고 오늘 아침, 유광현에게서 핸드폰 전화가 걸려온 것이었다. 내가 아침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그 아픈 기억의 상처가 되살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다.

9.

워낙 거구였지만 16년만에 만나는 광현은 나이가 들어 더 육중해져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소리없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의 눈빛과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는 낮은 언덕의 큰 거목처럼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 맞는 사람보다 그 상처를 지켜본 사람이 더 아픈 법인가? 아들을 잃은 광현보다 내가 더 그의 트라우마에 고통을 받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나를 보자 반갑게, 진실로 반갑게 깊은 허그를 하였다. 광현이 만나자고 한 곳은 산과 밭이 펼쳐지면서 농촌의 분위기가 전개되고 있는 시골 교외의 한적한 카페에서였다. 어스름한 저녁 해가 지고 있었다.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서로 시키면서, 오래간만이라서기보다 그때의 트라우마가 다시 고개를 들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는 나에게 그는 호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다. 그 동안 연락을 못해서... 우리 집사람이 늘 말해. 평생 한사람 은혜를 갚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바로 자네라고 말이야...잊을 수 없지... 그런데 통 연락도 못하고 살았으니, 내가 죄인이지...” “무얼, 됐네. 나야 뭘...” 커피 한 잔을 거의 다 마실 즈음에 나는 정색을 하고 물었다. “그래 그간 어떻게 지냈나? 아무도 소식 아는 사람이 없어서 말이야.” 그도 얼굴 표정을 다시 했다. “나? 응. 고생했지. 도연이 키우느라 말이야...” “.........? ” 문득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도연이? 도연이를 키웠다고?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광현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보자고 했네. 자네 아들 현구가 아주 훌륭하게 자랐더구만. 과학기술대학의 초빙교수로 오게 되었으니... 우리 도연이가 정말 가고 싶어하던 대학이었지. 정말 축하하네.” 쑥스러운 일이지만 현구는 축하받을만 했다. 사실 그 이상이었다. 광현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현구는 학계에서나 그 분야에서 더 놀라운 업적을 쌓았다. 현구의 커리어는 지금 한국 뿐 아니라, 외국의 명문대학에서도 초빙하는 오퍼가 수없이 오고 있었다. 그의 논문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으로 학계에서는 학회지에 발표되는 자기 논문에 현구의 이름이라도 끼어 넣기를 바라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광현에게 할 수는 없었다. 현구의 얼굴과 함께 오버랩되어 나타나는 도연의 얼굴. 도연이가 살아 있었다면 현구만 못지 않았을 터였다. 그런 도연이와 현구때문에 나를 만나자고 했다고? 나는 반신반의 흥분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를 높여 물었다. “도연이라니? 도연이가 어디 있나?” 그런데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광현은 뒤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도연아!”

나는 내 눈을 의심하였다. 그곳에, 광현의 뒤에, 카페의 커텐을 열고 나오는 한 아이. 도연이었다. 호리호리한 키, 준수한 얼굴에 영리하게 생긴 눈매, 하얀 손... 병실에서 보았던 16년 전의 도연이 성장이 멈춘 듯, 그는 그곳에 그 모습으로 서 있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도연이가...이럴 수가...” “앉아라. 도연아.” 광현이 말하자 도연이는 그의 옆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놀랐지. 그럴 줄 알았네. 그러나 놀라지 말게. 그리 놀랄 일도 아니네.” 광현이 말을 이었다. “사실은, 오늘 도연이를 자네에게 인사시키려고 보자고 한 것이네. 정말 오랫동안 망설이다 전화한 것이었네...내 아들 도연이를 자네 아들 현구에게 소개시켜 주려고...현구는 도연이 친구 아니었나? 그렇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잠깐 자리를 비켜주련?” 씨앗도 뿌리도 전혀 영문을 알 수 없어 하는 나에게 광현은 도연이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고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0.

백혈병. 백혈병은 일종의 암이었다. 골수암, 혈액암으로도 불리는데, 이 병은 완치되거나 아니면 사망에 이르는 특이한 병이라 했다. 0 아니면 100%의 확률이었다. 최후의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골수를 이식해야 하는데, 이 수술이 성공하면 완치요, 실패하면 파국이라는 극단적인 병이라 했다. 우선 내 몸의 항원에 맞는 다른 사람의 골수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도연이는 골수를 구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용광로처럼 치열했던 몇 개월의 사투 끝에 도연이는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은 누구에게도 믿어지지도 믿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토록 건강하고 선하고 깨끗했던 도연이가 하루아침에 주검으로 변했을 때, 광현은 눈을 부릅뜨고 하늘을 노려보았다.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신앙이 그토록 신실했던 착한 청년 도연이 왜 이런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 장례식장에서 목사님이 ‘하나님이 도연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데려가셨노라’고 말했을 때 광현은 목사를 노려보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열심히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도연이를 보면서, 광현은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도연에게 복된 삶을 줄 것이라고 믿었었고, 또 도연은 그 기쁨을 부모에게 안겨 주었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너무도 사랑하셔서 도연이를 데려가셨다고? 죄의 삯이 사망이라 하지 않았던가. 도연이가 무슨 죄를 지었던가? 아니면 혹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도연이? 죄야 많지만, 내가 무슨 아들이 죽어야 할 천인공노할 죄를 지었다는 말인가? 내 죄를 내 아들이 뒤집어 쓸 이유가 무엇인가? 납득할 수 없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광현은 하나님은 없다고 단정하였다. 눈에 핏발이 서고, 주먹에 핏줄이 돋았다. 차라리 악마가 되고 싶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서는 악인이 이긴다. 그는 성공한 사람을 저주하였고, 선한 것을 비웃었으며, 예수님의 기적과 부활을 믿으며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믿으라는 전도사를 보면 증명해보라고 삿대질을 하였다. 내 아들을 살려보라며...

도연이는 눈을 감으면서 말했다고 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렇게 키워주셔서. 저는 행복해요. 하나님의 뜻이 있으실 거예요. 저는 과학기술 대학보다 천국에 가는 것이 더 기뻐요.”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도연이는 세상을 떠났다. 불쌍한 도연이... 아들을 생각하면, 무릎이 꺾이면서 폭포같은 눈물이 흘러나왔다. 보고 싶은 내 아들...아들이 너무도 보고 싶었다. 그 잘나고 멋있고 똑똑한 우리 아들...그 착한 아들을 누가 데려갔는가? 나의 전부였던 그 아들, 내가 목숨을 바쳐 지키고 싶었던 그 아들을. 그의 상실감은 온몸에서 내장이 다 빠져 나오는 것 같았고, 그의 허무감은 머리 속의 뇌가 빈 것처럼 생에 대한 어떤 의지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사는 것이 고통이고, 이승이 지옥이라 다 버리고 아들을 따라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가혹한 현실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었다. 아내를 생각해서였다. 그의 세상은 사랑하는 아들 하나로 완전히 뒤집혔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천사가 악마로..

바위처럼 거대했던 광현이 썩은 진흙처럼 부서져갈 때, 삶의 의욕도 죽음의 기대도 사라져 지푸라기처럼 꼬부라지고 있을 때, 어느 날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 도연이를 하나 더 가집시다.” 아내의 나이로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광현도 깨닫고 있었다. 이대로는 광현마저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것을... 아무리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도 세상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하나님 역시 끄덕 하지 않았다. 결국 자신만 마음과 몸이 피폐해져 아들의 뒤를 따라 곧 쓰러지고 말 것이라는 것이 예감되고 있었다. 광현과 아내는 입양기관을 찾았다. 도연이와 같은 아들을 입양하기로 했다. 입양기관을 다니면서 광현은 경악했다. 입양을 기다리는 어린 아이들이 그렇게 많을 줄이야. 아들 하나를 잃고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저렇게 많은 아이들이 버려져 있다니... 아이들이 광현내외를 보고 손을 까불며 “아빠, 엄마” 하면서 애타게 부를 때에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곳저곳 입양기관들을 돌아보았다. 많은 아이들 중에 유독 광현의 눈길을 끄는 아이가 있었다. 어릴 적의 도연이와 무척도 닮아 보였다. 갓난 태를 벗어난 그 아이를 안았다. 광현과 아내는 아이의 눈을 마주치며 불러보았다. “도연아... 도연아...네가 도연이니?.” 아기를 품에 안자 이상스럽게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꼈다. 어린 도연이는 어릴 적 도연이와 똑같이 보드라웠고, 풍기는 살내음도 똑같이 달콤했다. 마주친 눈빛에서 반짝이는 그 사랑스러움. 광현은 어린 아기 도연이를 꼭 껴안았다. 그 도연이 자라 지금 카페에 앉아 있었다.

11.

“도연이를 키우면서 나는 내 삶을 완전히 바꾸었네. 돈을 벌겠다고 사업에 여기저기 손대봤지만, 되는 게 하나도 없었어. 나는 시골로 내려가기로 작정했다네. 바로 이곳이지. 도연이 치료비로 쓰고 남은 1억이 있었어. 자네 덕분이야. 땅을 사서 농사를 지으면 건강하게 도연이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네.”“...........” “농사는 희한하게도 참 잘 되었네. 풍족했지.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네. 그런데 말이야. 자네, 신 믿나? 하나님 말이야. 자네는 믿지 않지? 아마...” 엉뚱하게도 광현이 나를 순진한 눈빛으로 보면서 물었다. 나? 믿지 않았지. 나는 광현을 무심한 눈빛으로 마주 보았다. 교회다녔던 아들의 하나님을 원망하던 광현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멀고도 아득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신의 존재에 대한 나의 태도는 애매하고 사실 비겁했다. 걱정거리가 없을 때에는 신의 존재에 대해 관심조차 가지지 않고 있다가 집안의 제사를 모실 때에는 경건하게 절을 했다. 돌아가신 조상님들의 신이 마치 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분위기에 움츠려들어서였다. 교회에 가서는 기도를 하였고, 절에 가서는 절을 하였다. 억울하고 비참하게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볼 때는 신이 있다면 이럴 수가 있을까 라는 회의에 발끈하여 부정의 고개를 젓다가, 내가 곤경에 빠지면 당장 신에게 고개 숙여 빌곤 했다. 거대한 불행이 닥칠때에는 강하게 신의 존재를 긍정하며 매달렸다. 나는 비겁하고 간교하게 신을 적절히 이용할 뿐 신앙도 믿음도 일관되게 가진 적이 없었다. 더구나 도연을 보면서 나의 신에 대한 생각은 광현과 마찬가지로 차디차게 식었다. 그렇게 늘 왔다 갔다 했다. 어느 날 도연이가 갑자기 그렇게 세상을 떠난 후, 나는 아들 현구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현구와 도연. 무엇이 다른가. 도연이가 저렇게 죽을 이유를 하나라도 말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현구가 살아 있을 단 하나의 이유라도? 거대한 두려움이었다. 동시에 속절없는 무력감이기도 했다. 도연이는 살고 싶다고 밥을 먹으려 해도 한 숟가락도 목을 넘기지 못했다. 나 또한 아침의 밥 한술을 먹고 싶다고 마음대로 먹을 수 있을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밥 한 톨도 내 스스로 목으로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무력감에 빠져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온전하게 살아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기적이었다. 몹쓸 병이 나은 것을 기적이라고 한다면 병에 걸리지 않은 건강은 얼마나 더 큰 기적이란 말인가. 현구가 아무 탈 없이 성장하면서 가져다주는 그 기쁨이 축복이라고 여기면서도 나는 기적을 확신치 못하였다. 신에 대해 회의하면서 기도하고, 고백하면서 외면하였다.

이런 생각에 말없이 묵묵히 앉아있는 나를 보고 광현이 말을 계속했다. “헌데, 새로 얻은 도연이는 죽은 도연이와 그렇게 닮을 수가 없더란 말이네. 어떤 때의 도연이의 눈빛, 말, 손짓은 마치 죽은 도연이가 다시 살아 난 것만 같았다네. 죽은 도연이의 영혼이 깃들여 있는 것만 같았어. 아내와 나는 그걸 느낄 때마다 서로 마주보며 소리쳤지. 오, 이럴 수가... 아내는 그때 작은 소리로 외쳤다네. 오, 주여!” 나는 언젠가처럼 목덜미가 서늘했다. “영혼은 서로 교통한다 했나? 도연이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더란 말일세. 죽은 도연이를 다시 내려보내 주신 것 같았단 말이네. 그러면서 입양기관에 있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눈에 자꾸 어른거리기 시작했어. 지울 수가 없었지. 누군가에게는 그 아이들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말일세. 도연이처럼..”

광현은 다시 입양기관을 찾았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 하나를 또 입양하였다. 그 이듬해 또 하나... “집을 크게 짓지 않을 수 없었다네. 아이들이 셋이 되었으니... 나는 자네가 마련해 준 땅에 내 손으로 집을 지었네. 무슨 집이었겠나?” 그러면서 광현은 카페 창문 너머 멀리 보이는 하얀 집 하나를 가리켰다. 뽀족하게 생긴 집이 한 채 멀리 보였다. “도연의 집이네.” "도연의 집?” 고개를 끄덕거리며 광현은 말했다. “도연이를 키우며, 나는 도연이가 눈을 감으며 한 말을 되새겨 보았네. ‘아버지 감사합니다. 키워주셔서...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예요’ 라고 한 말 말일세. 하나님의 뜻... 나는 어린이 집을 만들어 고아들을 입양해 키우고 있다네. 도연의 집이지.” 나는 놀라고 말았다. “그러면 자네 지금?” “그래. 나는 시골 조그만 어린 양들의 아버지라네. 우리 집에 양 일곱 마리가 있어.” 반전하는 사태에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광현이가 이런 일을 하고 있을 줄이야. 7명의 입양아를 입양하여 그들의 아버지라니... “힘들겠군. 7명 입양아를 기른다는 것이...” “전혀...삶이란 참으로 신기한 것이야. 내가 한명의 도연이를 잃고 일곱명의 도연이를 얻을 줄이야. 나는 기적이 있다고 믿게 되었네. 보이지 않는 신의 손이 작용하는 기적 말일세.” 예기치 않던 광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도연의 마지막 말이 머리 속에서 메아리쳐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예요....” 나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랬었군. 정말 놀라운 이야기네. 자네가 그런 일을 하다니...조폭 대장 출신이 말이야.” 내 말에 광현은 예의 그 호탕한 웃음을 껄껄 웃었다. 웃음 속에 과거의 광현이 살아 있었다. 나는 광현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근데 말이야. 광현. 그 돈 1억 말이네. 내가 마련한 것이 아닐세. 자꾸 내 덕분이라 하지 말게.” “무슨 소리. 다 자네 덕분이지. 암, 누가 그렇게 친구를 위해 모금을 하겠나. 정말 고마웠어.” “아니야, 아니야. 생각해 보니... 내가 아닐세... 차라리 도연이라고 하게...” “..........” 광현은 이 대목에서 침묵하였다. 우리는 함께 침묵하였다. 도연이는 왜 태어났고, 왜 그렇게 죽은 것인지... 당초의 화제로 돌아갔다. “그런데, 자네 도연이를 나에게 인사시킨다고 했지. 현구를 소개해 달라고 하면서...” 광현은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아 참, 그랬지. 그래서 오늘 만나자고 한 것이었지.” “왜. 내가 도연이에게 뭐 할 일이라도 있나?....” “그래, 잠깐...” 광현은 커텐 뒤로 물러났던 도연을 불렀다. 도연이 다시 나타났다. 여전히 내 눈에도 도연은 죽은 도연의 그 나이의 판박이로만 보였다. “도연이 인사해라. 최현구 교수님의 아버지이시다.” 도연이 일어나서 인사를 하였다. 광현이 말했다. “자네 놀라지 말게. 이번에 도연이가 과학기술대학에 입학했다네. 도연이가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그 과기대말이야. 축하해 주게... 그런데 자네 아들이 과기대 초빙교수로 오게 되었으니 이 무슨 경사란 말인가? 도연이를 좀 돌봐주게. 이번에는 현구가 친구가 아니라 선생님이 되어 도연이를 좀 살펴주게. 도연이에게는 나와 이루고자 했던 꿈이 있었잖은가? 자네는 잘 알지? IT의 그 5차 산업 말일세. 도연이가 다시 도전할 것이네. 도연이가 부활했다네.” 나는 다시 한번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죽은 도연의 영혼... 나의 애매한 신앙관으로 본다면 환생이라 해도 좋을 것 같았다.

12.

광현과의 만남 후, 나는 현구와 도연을 만나게 해주었다. 현구는 도연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이로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현구는 도연을, 도연은 현구를 각별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였다. 친구이자 스승, 제자이자 친구처럼... 그들은 그렇게 켐퍼스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지낸다고 소식을 전했다. 현구는 바빴다. 부모라 하지만 얼굴을 마음 놓고 볼 수도 없었다.

어느 휴일 날이었다. 모처럼 현구가 집에 찾아왔다. 화제는 다시 도연에게로 돌아갔다. 도연을 만나 점심도 사주고, 수업도 가르쳐 주고, 기숙사 생활도 챙겨준다던 현구가 느닷없이 나에게 물었다. “아버지. 근데 도연이가 죽은 도연이의 음악회 이야기를 알까요?” “글쎄. 왜?” “광현 아저씨에게 한번 물어봐 주실래요?” “글쎄. 왜?” “글쎄 도연이가 하루는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열심히 듣길래 무슨 음악이냐고 물었지요. 도연이가 나에게 헤드폰을 건네주어서 들어봤더니 ‘라데츠키 행진곡’이지 뭐예요. 그래서 왜 이 곡을 듣느냐고 물었더니, 도연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 곡만 들으면 힘이 나요. 왠지 죽다가 살아나는 느낌? 그런 게 있어서 힘빠지거나 낙담이 될 때 이 곡을 들어요. 기분이 밝아지거든요. 힘이 나요. 들어보세요.’ 하는 것 아니겠어요? 기분이 묘하더라구요. 이 녀석이 도연이 자선 음악회 이야기를 들었구나 싶었지만 왠지 참 묘했어요.” 묘한 일이기는 했지만, 음악회 이야기를 들었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부적처럼 사람에게는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 있게 마련이니까.

현구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어느 날 광현을 만나게 되었다.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문득 현구의 이야기가 떠올라 넌지시 물어보았다. “자네 옛날 도연이 자선 음악회 때 연주한 첫 곡 생각나나? 무슨 행진곡이었지 아마? 생각나나?” 탐색하듯 조심스럽게 묻는 나에게 광현은 헛헛하고 김빠진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이 사람아! 나한테 그걸 묻는다고 물어? 물을 걸 물어야지. 내가 그날 그 정신에 첫 곡이 무슨 곡인지 뭔지 귀에 들어왔겠나? 나는 그날 생각하면 기억에 남는 게 하나도 없어. 머리가 하얘져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광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오, 신이여!

미노스 단편 작가 최민호.

■ 미노스 프로필

본명은 최민호, 대전 출신으로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공직에 입문해 충청남도 행정부지사, 행정자치부 인사실장에 이어 소청심사위원장,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 차관급 고위직을 세번이나 거쳤다.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일본 도쿄대학 법학석사, 단국대학교 행정학 박사를 취득한뒤 미국 조지타운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공직 퇴임 후 고려대·공주대 객원교수, 배재대 석좌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홍익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30여년의 공직생활 퇴임후 '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 딸이니까(새움출판사)'라는 단편소설과 동화가 있는 이야기책을 출간, 동화작가로 데뷔했다. 단순히 어린아이들을 위한 '동화(童話)'라는 장르를 뛰어넘어 남녀노소 모두를 아우르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화(動話)'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온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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