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대통령, 취임사서 북한 언급없이 "전 세계에 관여할 것"

정부·여당, 한반도 프로세스 재추진에 기대 "창의적 대북접근법 기대"

조 바이든 신임 미국 대통령. 사진=바이든 공식 홈페이지 캡처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함께 한반도 안보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 정책에 능숙한 한반도 전문가를 대거 기용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외교·안보 진용을 교체하는 등 전열을 재정비했다. 특히 문 대통령이 한반도 프로세스 재추진을 천명한 가운데 우리 정부의 바람대로 남북미 관계의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21일(한국 시간) 치러진 취임식에서 “우리는 동맹을 회복하고 다시 전 세계에 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큰 틀의 외교 방향만 제시하고, 국내 현안을 처리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뜻을 강조한 것이다. 관심이 쏠렸던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동맹’과 ‘글로벌 리더십 회복’을 강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웠던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와 결이 다른 대외 정책을 펼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북미 정상회담이 실질적인 진전으로 이어지지 않은 데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달성에 실패했다는 지적이었다. 이날도 바이든 대통령은 “힘의 모범이 아닌 모범의 힘”을 강조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을 이끌 토니 블링턴 국무장관 지명자도 전날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기존의 대북 접근법 전반을 다시 살피겠다고 밝혔다. 최근 제8차 당대회에서 대미 관련 ‘강대강, 선대선’ 원칙을 밝히며 미국에 관계 개선의 선택지를 넘긴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올 수 있도록 우회적인 압력을 넣은 것으로 보인다.

북미 관계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뒤 멈춰 섰다. 남북관계의 진전을 통해 북미 대화를 촉진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선순환’ 구상도 위기를 맞았지만, 북한은 호응하지 않았다. 자력갱생과 국방력 강화를 내세우던 북한은 결국 지난해 6월 모든 남북 연락선을 차단했다. 올해 초에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동생인 김여정 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우리 정부를 ‘특등 머저리’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바이든 정부의 출범으로 남북미 대화가 재개되리라 기대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 그동안 보여주신 외교와 정치에서의 탁월한 지도력을 높게 평가한다”며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국민은 역사적인 '북·미 싱가포르 합의'를 토대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늘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도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창의적인 대북접근법을 기대한다. 싱가포르 합의를 바탕으로 하노이 회담 결렬 이유를 복기한다면 창의적인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며 “문재인 정부와 바이든 행정부가 김대중·클린턴 파트너십을 교훈 삼는다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한 지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도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 바이든 정부에 대해 “기조가 유사한 점이 많고, 어떤 면에서는 코드가 맞는 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히며, 전날 외교·안보진용을 손봤다. 원년 멤버였던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의 후임으로는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이끈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이 임명됐다.

하지만 전망은 어둡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반도 현안을 포함한 국제 문제에 정통한 외교 전문가지만 코로나19 대유행과 경제난 등의 국내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FP)는 미국이 북한과 거리 두기를 이어간다면 향후 몇 개월 사이에 북한에서 도발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전 행정부와 기조가 다르다. 이미 대북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며 "합리적이면서도 단계적인 접근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닌 아래에서부터 단계적 접근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핵화가 완전히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기 전에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할 이유가 없다"며 "만약 북한이 도발한다면 관계는 이전보다 더 경색될 수 있다. 제재도 강화, 강경한 조치가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