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9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을 불러온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정농단 재판이 14일 마침표를 찍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박 전 대통령까지 형이 확정되자 정치권에서는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정국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신영대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다. 박 전 대통령은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대한민국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치욕과 세계 민주주의사에 오점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 대변인은 “박 전 대통령의 통렬한 반성과 사과만이 불행한 대한민국의 과거와 단절을 이룰 수 있다"며 ”국민의힘은 국민이 받은 상처와 대한민국의 치욕적인 역사에 공동책임이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사면보다는 사과에 힘을 쏟으며 사안 자체에 거리를 뒀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 깊은 상처를 헤아리고, 진솔하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이 대표는 이달 초 ‘국민통합’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건의할 수 있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이에 민주당은 ‘국민의 공감과 당사자의 반성’을 사면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고, 이 대표가 이 조건을 다시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당내 반발에 부딪혀 이 대표가 한발 물러서긴 했지만, 그는 “적절한 시기에 사면을 건의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사면을 건의하겠다는 계획이 유효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상고심 선고 공판이 열린 14일 오전 서울 서초역 인근에서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은 이날 공식적으로 사면을 언급하지 않고, 국민통합을 앞세워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윤희석 국민의힘 대변인은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며 국민과 함께 엄중히 받아들인다.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이제 우리 모두의 과제”라면서 “국민의힘은 제1야당으로서 민주주의와 법질서를 바로 세우며 국민 통합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의 공식 입장과 달리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들은 사면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국격과 국민 통합을 위해 이명박·박근혜 두 전 대통령의 사면이 필요하다”며 “국민 통합의 근거로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같은 혹독한 퇴임을 우리는 재현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때 ‘원조 친박’으로 분류됐던 유승민 전 의원도 페이스북에 “당사자의 반성을 요구하는 여권과 지지자들의 협량에 대통령은 휘둘리지 않길 바란다. 사법적 결정을 넘어서 더 큰 대의가 있을 때 대통령은 사면이라는 고도의 정치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면서 “전직 대통령 사면을 두고 가식적인 정치 쇼도 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국민 눈높이라는 구실을 찾지도 말고, 선거에 이용할 생각도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도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무죄 석방을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며 “사법부가 정의의 편이 아닌 거짓 촛불의 편에 선 오늘의 판결은 법치의 사망 선고이자 대한민국 사법 역사의 치욕으로 기록될 것이다. 대법원이 국민을 상대로 사기 재판을 했다. 무엇이 두려워 국민을 속이고, 정의를 숨기려 하는가”라고 지적했다.

정의당은 박 전 대통령을 '박근혜씨'라 호칭하며 비판을 쏟아냈다.

정호진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부족한 처벌이지만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역사의 큰 이정표이자 국정농단에 대한 민심의 준엄한 형벌"이라며 ”박근혜 씨가 과연 진지한 반성과 성찰을 하는 것인지 강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면은 더 이상 논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1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형 확정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은 이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상고심에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에 징역 15년과 벌금 180억원, 나머지 혐의에 징역 5년을 각각 선고하고 35억원의 추징금을 명령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대법원 판단으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3년9개월간의 사법 절차가 마무리됐다.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로 불린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의 태블릿PC로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지 4년3개월만이다.

박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 공천 개입 혐의로 이미 확정받은 징역 2년을 더하면 모두 22년의 형기를 마쳐야 한다. 사면이나 가석방이 없이 형을 모두 채운다면 박 전 대통령은 만 87세가 되는 2039년에 출소할 수 있다.

형이 확정되면서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의 자금 수백억원을 횡령하고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징역 17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이 전 대통령에 이어 박 전 대통령도 특별사면 요건을 갖추게 됐다.

청와대는 “대법원 선고가 나오자마자 청와대가 사면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사면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사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만큼,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실제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반대하는 여론이 더 많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 5일 전국 만 18세 이상 7420명에게 접촉, 500명에게 응답을 받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찬반을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한 결과 찬성 응답은 47.7%(매우 찬성 27.5%, 찬성하는 편 20.2%)로 나타났다. 반대 응답은 48.0%(매우 반대 35.6%, 반대하는 편 12.4%)로 집계됐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4.3%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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