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보선 60일 전 방송 출연 심의 대상 포함 안 돼

문재인 대통령 등도 과거 예능 프로그램 통해 관심 높여

우상호 "특정인 조명·공정성 상실…제도적 논의 필요"

TV조선 예능프로그램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내의 맛'에 출연한 나경원(왼쪽에서 세번째)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 나 전 의원의 출연분은 지난 5일 방송됐다. 이 방송에서 나 전 의원은 자신의 가족과 함께한 일상을 공개했다. 사진=TV조선 아내의맛 제공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나경원 전 미래통합당 의원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예능의 정치화 논란’에 직면했다. 오는 4월 치러질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의 후보군으로 여겨지는 상황 속 예능프로그램 출연하는 것은 공공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 가장 먼저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화한 우상호 의원은 11일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아무리 예능프로그램이지만, 아직 경선이 끝나지 않은 두 당의 특정 후보를 조명해 준 것”이라면서 “명백히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공정성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추후에 이런 문제도 제도적으로 논의할 수 밖에 없다”며 “저도 사실 지상파 방송에서 제안이 왔었지만, ‘서울시장 선거에 나갈 것이 분명하다’는 입장을 밝혔더니 그쪽에서도 ‘하지 말자’고 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도 지난 9일 페이스북을 통해 “출마를 앞두고 인물 예능에 출연하는 정치인들”이라면서 “출마를 앞두고 예능에 출연하는 정치인들은 자신이 없는 건지, 세탁이 필요한 건지, 특혜를 누리겠다는 건지, 아니면 서울시장을 ‘아내의 맛’으로 하겠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또 다른 글에서 “정말 낯뜨겁다. 서울시장 나가겠다는 여자들이 ‘아내의 맛’ 정도는 내야 한다는 건가”라며 “시대착오, 전근대적, 공사 구분 안 되고 여성 인격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에 나가야 하는지, 이미지만 있는 여성 정치인들을 과연 서울시민들이 반기겠냐”고 지적했다.

정호진 정의당 수석대변인도 같은 날 논평을 내고 “신인 정치인도 아니고 알만한 것은 다 아는 정치인들이 법의 허술한 틈을 타 예능 방송 출연을 빙자한 사전 선거운동은 꼼수”라며 “출마 여부를 직접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미 유력 후보로 거론된바, 공정하지 못한 출발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매우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꼬집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TV조선 예능프로그램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내의 맛'에 출연했다고 밝혔다. 박 장관의 출연분은 오는 12일 방송된다. 사진=박영선 페이스북 캡처
앞서 나 전 의원은 지난 5일 TV조선의 예능프로그램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내의 맛’에 출연해 가족과의 일상을 공개했다. 나 전 의원의 남편인 김재호 판사가 방송에서 처음으로 공개됐고, 다운증후군을 앓는 딸도 등장했다.

4선을 지낸 나 전 의원의 일상은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주요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는 나 전 의원이 출연한 예능프로그램인 ‘아내의 맛’과 ‘나경원 딸’이 순위권을 차지했다. 그의 출연분은 시청률 5.682~11.204%(닐슨 코리아 제공, 비지상파 유료가구)를 기록했다. 전주 대비 2배 가까이 상승한 수준으로, 분당 최고 시청률은 15.4%였다.

나 전 의원은 지난 4일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국민과 가까워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미지 개선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나 전 의원은 그동안 원정출산 의혹과 자위대 행사 참석 등으로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예능의 정치화 논란은 박 장관까지 가세하면서 불붙고 있다. 박 장관은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나 전 의원이 출연한 프로그램에 자신도 나온다는 계획을 밝히며 “평상시 잊고 지냈던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박 장관이 출연분은 12일 방송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에 민주통합당(현 민주당) 후보로 나섰을 당시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했다. 사진=힐링캠프 방송화면 캡처
나 전 의원과 박 장관의 예능프로그램 출연이 불법은 아니다. 현행법에서는 보선 60일 전 방송 출연부터 심의하기 때문에 심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예능프로그램에 정치인이 출연하는 사례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서울시장 출마에 선언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2009년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다. 2012년에는 18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박근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현 민주당) 후보가 SBS ‘힐링캠프’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2017년 ‘동상이몽2 너는 내 운명’에 출연해 사랑꾼 남편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진솔함을 부각하려 하고 싶을 것”이라면서 “유권자와 소통하려는 또 다른 형태의 노력이라고 봐야지, 안 좋게 볼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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