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남중국해 차지해야 태평양 장악' 판단해 신냉전..전쟁 가능성 예측 어려워

미·중 모두에 중요한 한국은 외교적 딜레마..이제는 중견국으로서 '중첩 외교' 해야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6일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에서 '동아시아의 국제정치'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사진=황혜진 기자
*편집자 주=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6일 오후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총장 이동관)에서 '동아시아의 국제정치'라는 주제로 명사 초청 특강을 했습니다. 데일리한국은 주최 측의 동의를 얻어 특강 요지를 칼럼 형식으로 게재합니다. 박 전 의장은 이날 특강에서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냉전이 시작되고 있다"며 “동북아에서의 전쟁 가능성 유무에 대해 누구도 확실히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동북아 정세를 진단했습니다. 그는 이어 남중국해 분쟁의 배경에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있으므로 고난도의 외교게임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한 뒤 “이제 우리나라는 약소국이 아닌 중견국이므로 지혜로운 중첩외교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데일리한국= 박관용 전 국회의장 특강 요지/정리= 황혜진 기자] 남중국해 분쟁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서막이다. 한반도는 동아시아 지역을 장악하려는 중국과 그것을 막으려는 미국 사이에서 전략적 요충지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냉전이 시작되고 있다. 우리처럼 지정학적으로 치열한 위치에 있는 나라와 국민들은 세계를 향해 시야를 넓혀야 한다. 한반도 주변의 국제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국제정치라는 것이 얼마나 냉혹하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적절하게 대비할 수 있다. 세계 8위 군사대국, 세계 경제 10위권에 들어간 우리나라는 이제 능력외교, 중첩외교를 할 때가 됐다.


약육강식의 국제정치…동북아 전쟁 가능성 예측 어려워

국제정치는 정글의 세계와 같다. 사자 앞에서는 모든 짐승이 꼼짝을 못하듯 국제정치의 현실도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돌아간다. 강대국은 세계 질서를 만들어내고 약소국은 만들어진 질서에 편입될 따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약소국은 희생물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국제정치를 바라봐야 한다. 국제사회에도 규범이나 질서가 존재하지만 이를 힘 있는 사람이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국제정치 현실이다.

중국이 급부상하고 강대국 대열에 합류하면서 세계 패권을 지향하는 서막을 열고 있다. 이에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이 대결하는 정세 속에서 일본이 합세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사 전례를 통해 어느 나라나 힘이 세지면 주변 땅과 바다도 자기 것으로 만들려 하는 욕심을 갖게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 욕심을 채우기 위한 방법이 전쟁이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전쟁은 강대국이 이익을 추구하려는 최후의 방법이다. 물론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외교를 통해 협상도 하고 설득도 하지만 그것으로 요구하는 바가 관철되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난다.

국제정치학자들은 동아시아의 전쟁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중국의 굴기가 예사롭지 않아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학자도 있고, 강대국 간의 전쟁은 상호 확실 파괴라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데다 상호 경제 의존도가 높아 전쟁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분명한 것은 중국의 성장과 굴기를 미국이 지켜보고만 있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때문에 동북아에서의 전쟁 가능성 유무에 대해 누구도 확실히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목을 매고, 미국이 저지에 나선 이유?

중국은 난사군도를 놓고 결코 양보할 수 없다며 어떤 위험도 감수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다. 난사군도를 통해 동아시아를 장악해야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를 지배한 국가들은 해군력이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2012년 해양강국을 지향한다고 선언한 중국은 해군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인공섬 난사군도에 인공 비행장이 만들어지면 주변국인 필리핀,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등이 1000마일 이내 거리에 들어온다. 동아시아를 거쳐야만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중국이 난사군도에 목을 매는 이유다.

또 남중국해와 안다만해를 연결해 전 세계 물동량의 35%가 지나가는 말라카해협(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섬 사이)의 중요성도 중국이 남중국해를 포기할 수 없는 큰 이유다. 말라카해협에서는 1년에 4만~5만 척의 선박이 왔다 갔다 하는데, 한국에서 쓰는 기름 95%, 일본에서 쓰는 기름의 90%가 이 해협을 통해 운반된다.

중국은 항로 확보와 도련선 설정으로 타 국가의 접근을 막고 천연자원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을 중국이 장악하면 천연자원이 없는 일본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을 영원히 전쟁할 수 없는 나라로 만든 미국이 일본의 재무장을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위기 후 국방비 지출을 줄인 미국이 일본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태평양을 중심으로 전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이 남중국해를 뚫어 태평양으로 나오려는 중국을 좌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약소국 아닌 중견국인 한국, '중첩 외교' 해야

중국은 지난 9월 전승절 열병식을 개최해 막강해진 중국의 군사력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은 대한민국의 성장, 그리고 중국이 생각하는 한국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미국은 한국에 중국과 대화하는 것을 상관하지 않겠다며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 장에서 "중국이 국제규범을 지키지 않으면 한국도 목소리를 내달라"고 주문한 것은 사실상 중국 편을 들지 말라는 요구인 셈이다.

한국은 외교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 고난도 외교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만큼 중국과 미국에게 한국은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제 한국은 약소국이 아닌 중견국이다. 과거에는 하나의 강대국 쪽으로 쏠리는 외교를 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세계 8위 군사대국·세계 경제 10위권에 들어가는 중견국으로서 스스로 안보를 지킬 수 있도록 지혜로운 중첩외교를 이어가야 한다.

국가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국민들의 여론이다. 한일 관계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그냥 넘길 수 없다'는 국민 여론이 비등하기 때문에 대통령도 그 뜻을 따라가는 것이다. 동아시아 정세에 관심을 갖고 시야를 넓혀 여론을 형성하고 정부의 외교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국민들이 되어야 한다.

■ 박관용 21세기국가발전 연구원 이사장 프로필
6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대통령 비서실장, 남북 국회회담 대표, 국회 외무통일위원장, 국회의장 등을 거쳤다. 현재 해공신익희선생기념사업회 회장. 21세기국가발전 연구원(NDI)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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