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치(仁治)의 시대에서 제도에 의한 협치(協治)의 시대로 가야"

"현장 지휘력을 가진 강력한 지방정부 만들어야..책임과 권한 줘야"

국민 불신으로 '행정의 위기'...정직, 공정성, 실력 갖춰야 신뢰 얻어

[데일리한국 이선아 기자] 안희정(사진) 충남지사는 17일 '좋은 지도자'의 역할론에 대해 "지도자의 몫은 밭매는 농부 정도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안 지사는 이날 상명대 천안캠퍼스 한누리관에서 열린 2015년 한국행정학회 하계 공동 학술대회 이틀째 특별세션으로 '좋은 행정과 도지사의 역할'을 주제로 대담하면서 "이제 인치(仁治)의 시대에서 제도에 의한 협치(協治)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안 지사는 "당장 큰 공을 세우려고 달려드는 지도자상은 20세기 방식"이라며 "밭을 잘 매면 작물들이 알아서 크는 것처럼 관료, 시장질서, 사회적 질서를 반듯하게 운영하면 그 속에서 성실한 국민들의 땀과 노력을 통해 역사가 발전된다"고 '농부론'을 펼쳤다. 그는 "과거 역사에서 국가는 영웅적 지도자들을 왕으로 추대해 왕조국가를 유지했다"면서 "특별한 사람 중심의 리더십을 형성하면 권력 남용과 부패가 생겨난다"고 분석했다.

안 지사는 이어 "과거처럼 지도자의 개인적 덕성이나 능력에 따라 나라가 좌지우지되지 않고 제도에 의한 협치 안전성을 기한다는 측면에서 '민주주의'가 이 시대의 굉장히 중요한 과제"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안 지사는 "제도에 의한 협치는 주인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이 전제되지 않는 이상 성공할 수 없다"면서 "더 좋은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해선 더 많은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 지사는 "도지사를 하는 동안 가장 핵심은 민주주의를 잘하는 것"이라며 "민주주의를 잘해서 지역사회이든 국가사회이든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총역량을 극대화시켜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안 지사는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현장의 총지휘자로서 지방자치의 한계와 과제를 실감했다"고 밝혔다. 그는 "중앙질병본부로부터 (메르스 의심·확진 환자) 명단을 통보 받아서 우리가 관리하던 중 네 개 시·도의 지사와 복지부장관이 정보 공유를 합의해 명단을 통보 받자 우리가 관리하던 숫자가 두 배 이상 증가했다"는 사례를 거론하면서 "그동안 도는 헛발질을 한 셈"이라고 말했다. 안 지사는 "불길 앞에 서 있는 현장에서 책임지고 결정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면서 "지방정부가 현장을 장악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중앙정부도 일하기 좋고 대한민국이 튼튼해진다"고 말했다. 안 지사는 "지방정부에게 확실한 책임과 권한을 줘서 현장 지휘력을 가진 강력한 지방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현장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 등 구조적 노력를 하는 것과 동시에 지방정부 스스로 책임과 권한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 지사는 정부에 대한 국민 불신으로 행정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행정 불신의 원인으로 ▲시장의 효율성에 비해 무능 ▲법규 집행의 불공정 ▲무책임 ▲부정부패 등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행정 혁신의 출발점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일"이라며 "신뢰를 얻기 위해선 국민에게 정직하고 공정하며 실력이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지사는 정부 혁신 방안과 관련, '작은 정부'와 '지나친 시장 개입'을 모두 배격하면서 "정부는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정부를 줄여서 박수를 받거나 신뢰를 얻는 것이 아니라 할 일을 정확하게 하는 정부를 만들 때 신뢰가 보장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의 무분별한 시장 개입을 지적하며 "정부는 시민사회와 시장이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기초를 마련하는 정도로 역할을 제한하고, 공공의 이익을 담당하는 역할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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