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강제 동원 인정한 '고노담화' 계승 언급 계기로 위안부 해결 요구해야"

"중국이 부상하는 가운데 영국·독일 역할 과거와 달라 미국·일본 동맹 격상"

"한국이 동북아에서 중층적 다자 외교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호스트 돼야"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인터뷰=김광덕 데일리한국 뉴스본부장/정리=김종민 기자]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29일 워싱턴에서 전날 열린 미·일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미국과 일본이 글로벌 파트너십과 동맹관계 격상을 대외적으로 과시했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이날 <데일리한국>과 가진 인터뷰에서 "동북아에서 중국이 부상하는 가운데 전통적인 미국의 파트너인 영국과 독일이 과거와 같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셈"이라며 이같이 분석했다.

남 교수는 한일관계 해법에 대해 "역사, 안보, 경제 문제를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연결시켜야 한다"면서 "안보, 경제를 동시에 풀어가면서 역사 문제도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를 빨리 풀자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축소돼서 풀릴 가능성이 있다"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미국에 기대하지 말고 우리가 일본을 상대로 직접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고노 담화 계승을 언급했다"면서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과와 반성이 담긴 고노 담화를 근거로 일본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분명히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미·일동맹이 격상됐다고 해서 단순히 미국·일본 대 중국·러시아 대립 구도로 간다고 볼 수 없다"면서 "한국이 동북아에서 중층적 다자 외교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발표한 공동 성명에는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 '과거의 적대국이 부동의 동맹으로 전환'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지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조속 타결 노력' 등이 들어 있다. 또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인신 매매에 의해 고통을 겪은 위안부에 대해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을 갖고 있으며,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 말했으나 사과 표현은 하지 않았다. 종합적으로 미·일 정상회담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미국과 일본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글로벌 파트너십을 과시하고 미일 동맹 수준을 격상시켰다. 양국이 외교·국방장관(2+2)회담을 거쳐 미군과 일본 자위대의 공동 대응 범위를 '일본 주변'에서 '전 세계'로 확대하는 미·일방위협력지침을 발표했는데,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동맹 수준 격상을 재확인했다. 이에 대해 일본 내부에서 '미국을 따라가서 무엇을 할 것이냐'는 비판론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지만 어쨌든 양국 정상은 이번에 글로벌 파트너십을 대외적으로 과시한 게 사실이다. 그리고 안보 분야도 중요하지만 경제 분야의 틀짜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령 TPP 조속 타결 의사를 밝힌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오바마와 아베의 스시집 회동 분위기가 좋았다는 얘기도 나왔으나 TPP 문제 때문에 분위기가 머쓱했었다."

-이번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이 동맹 수준을 격상하는 등 한층 가까워졌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하지만 양국에 구체적 이익이 되는 내용이 없는 등 '속 빈 강정'이라는 일부 외신들의 비판도 있다.

"미국과 일본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굳건한 미일 동맹을 과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시간을 두고 구체적 내용을 채워가게 될 것이다. 그동안 미국의 글로벌 파트너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던 영국과 독일이 요즘 과거와 같지 않다. 일본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자기 역할을 찾은 것이고, 미국에게는 일본의 이같은 움직임이 반가운 것이다. 또 중국이 부상하면서 미국과 일본은 중국의 현상 변경 움직임을 저지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움직임에 대응해 국제법 등을 토대로 현상을 유지하는 역할을 미국과 일본이 자임하게 된 것이다. 아베 내각은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워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확대하려 하는데, 이 과정에서 국내적 저항이 있을 것이다. 아베 내각은 또 TPP를 추진하면서 경제 측면에서 미일 동맹을 강화하려고 시도할텐데, 이에 대한 일본 농촌 부문의 반발도 예상된다."

-미일 동맹 강화로 동북아 정세가 미국·일본과 중국·러시아 대립 구도로 가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있는데.

"미일 동맹이 굳건해져서 중국 대 미·일의 대치 구조로 가는 것으로만 봐서는 안된다. 중국이 당분간 동북아에서 신중한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최근 반둥회의에서 약간 그런 모습을 보였는데, 너무 몰아쳐서 일본을 미국 쪽으로 붙게 만드는 게 중국에게는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힘의 균형론으로만 보게 되면 우리가 외교 문제에서 판단을 잘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요즘은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는 그런 상황이다. 미일 동맹이 굳어졌다고 해서 중국과 선을 그었다고 보기 어렵다. 중·일 관계가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는 상황이다. 단순히 미·일 대 중·러의 대칭 구도로만 볼 필요는 없다. 유동적인 상황이다. 오히려 2~3년 전까지만 해도 미·일 대 중·러로 단순하게 보는 것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단정적으로 볼 수 없다."

- 정상회담을 전체적으로 보면 미국과 일본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과시한 셈이다. 미국과 일본이 가까워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이 부상하는 가운데 미국이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본은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우면서 미국의 재균형 정책에 호응하는 전략으로 가고 있다. 미국은 자신들의 전략에 일본을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화답하고 있다. 21세기 들어와서 처음 10년이 '중국 부상의 10년'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 맞이하는 10년은 '중국 부상에 대응하는 미국과 일본의 외교 노선 조정기'라고 봐야 한다. 미국과 일본은 가까워지는 게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고 보고 있다."

- 한국과 중국의 계속되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아베 내각이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사죄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베 내각의 종전 70주년 담화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동양에서는 70년은 50년이나 60년에 비해 의미가 약하다. 그런데 이번에 주목받는 이유는 아베가 50년 담화, 60년 담화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히면서 새로운 담화를 내겠다고 말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베의 의도는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하다. 아베 총리는 당초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를 재검토하고 사죄와 반성은 빼겠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베는 결국 고노 담화 내용을 부인할 수 없었다. 미국도 원하지 않는데다 한국과 중국의 눈치도 봐야 하기 때문에 부정하지 못한다. 아베 총리는 최근 반둥회의에서는 고노 담화를 얘기하지 않고 무라야마 담화, 고이즈미 담화를 계승하겠다고만 언급했다. 2005년 종전 60주년 기념일에 나온 고이즈미 담화는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 반성과 사죄를 한다'는 무라야마 담화가 고이즈미 담화로 계승되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최근 '반성'과 '사죄' 중에서 반성 얘기만 하고 있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 중에서 침략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

아베가 침략 전쟁에 대해 반성한다고 했기 때문에 미국이나 중국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과 봉합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우리에게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언급과 '사죄'가 필요하다. 무라야마 담화에 기반해 일본의 행동을 요구해야 해야 되는 것이고, 무라야마 담화에 한발 앞서서 한반도에서 일본이 문제적 행동을 했다는 것을 인정한 고노 담화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끝까지 주장해야 한다. 고노 담화는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강제성을 인정한 담화로서 당시 고노 관방장관은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올린다"고 밝혔다. 우리는 아베 내각에 고노 담화 계승 입장을 재확인해야 한다. 또 고노 담화와 달리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인신 매매'(human trafficking)라고 얘기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면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아베 총리는 이번 미국 방문에서도 '인신 매매'란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는 국가 차원이 아니라 민간업자 차원에서 인신 매매가 이뤄져다는 뜻으로 비칠 수 있다. 또 미국도 이같은 표현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을 통해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죄를 이끌어내는 것을 기대하지 말고 일본을 상대로 직접 과거사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 미·일과 중국 사이에 있는 우리는 변화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외교안보 정책을 어떻게 펴야 하는가.

"일본과의 관계를 다시 정상화시켜야 한다. 관계을 복원하고 재정립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는 우리가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이니 이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일본에 강조해야 한다. 아베 총리가 고노 담화 계승 입장을 워싱턴에서 밝혔으니 이를 실천하라고 일본에 요구해야 한다. 일본이 이같은 요구에 반응하게 된다면 한일관계를 새로운 관계로 재정립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역사, 안보, 경제를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연결시켜야 한다. 안보, 경제 문제를 동시에 풀어가면서 역사 문제도 해결해 나가야 한다. 위안부 문제를 빨리 풀자면서 조급하게 해버리면 축소돼서 풀릴 가능성이 있다. 시간을 두고 궁극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하면서 확실하게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중층적인 다자 외교에서 한국이 중심에 서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일관계뿐 아니라 남북관계도 풀어가야 한다. 또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가야 한다. 미·일과 중·러의 대립 구도로 보는 시각이 국내에 많은데, 단순히 그렇게 봐서는 안된다. 우리가 호스트(주인)가 되어 서울에서 많은 손님들을 위한 외교 무대를 열어야 한다."

■남기정 교수 프로필
서울대 외교학과, 서울대 외교학 석사, 도쿄대학 국제정치학박사- 도호쿠대학 법학연구과 교수-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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