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박근혜 캠프 거쳐 새정치연합 지도부 거론에 궁금증
우파 활동했던 이 교수, 당적 이동 명분 없어 소극으로 마무리

김종민 기자
[데일리한국 김종민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를 국민공감혁신위원장(임시 당 대표)으로 영입하려던 계획은 한편의 소극(笑劇, farce)로 끝나는 것 같다. 당내 반발이 워낙 거세자 이 교수가 "(혁신위원장이 되는 게) 자연스럽게 무산됐다"면서 사실상 포기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당초 안경환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와 공동으로 혁신위원장을 맡기로 하고 수락 의사를 밝혔었다.

오락가락 정치 행보를 보여온 대학교수의 말로를 보면서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이 교수의 정체성과 노선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당초 보수우파 성향을 강하게 보였던 이 교수가 이회창 캠프(2007년)- 박근혜 캠프(2012년)를 거쳐 이번에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로 들어가려 했기 때문이다. 정체성이 다른, 여러 정당 주변을 돌아다닌 이 교수가 지향하는 바가 과연 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DJ정부의 햇볕정책을 강하게 비난했던 그가 DJ의 노선을 이어온 새정치연합 지도부를 맡을 생각을 했다는 점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2007년 1월 한 보수 신문에 쓴 칼럼을 통해 햇볕정책에 따른 대북 지원에 대해 "북한에 전달하는 식량과 현금이 핵 개발로 이어질 것을 알면서 대북 퍼주기를 계속했다면 이적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비난했었다. 이번에 야당 내부에서 '이상돈 카드'에 대해 '자폭형 참사' '당 역사와 노선에 대한 모독' 운운하며 무조건적인 철회를 요구한 것도 이 교수의 과거 행적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 교수는 지난 2004년부터 보수 신문 칼럼 기고 등을 통해 우파 인사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왔다. 2007년 11월엔 전원책 변호사, 유석춘 연세대 교수와 함께 '보수 논객 3인방'으로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들 우파 3인방은 반북·반좌파 노선을 기치로 세운 '대한민국의 내일을 생각하는 모임'의 공동대표(이상돈, 유석춘)와 사무총장(전원책)이었다.

전 변호사는 이번에 이 교수의 행보를 놓고 "이념적 변절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정치권력이 둘로 분명히 나뉘어져 있는 상황에서 배를 갈아 탄다는 것은 정치 도덕적인 타락"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또 2007년 이회창 캠프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는 12일 <데일리한국>과의 통화에서 "그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정통 우파 인사였기에 (우파 3인방을) 선거대책위 자문 역할로 함께 영입했었는데, 이젠 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거론된다고 하니 도저히 내 상식으론 그의 정치 노선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와 노선을 함께 했던 또 다른 인사는 "DJ의 햇볕정책을 겨냥해 사실상의 이적행위라고 비난하고,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던 시절에 좌파와 대적할 전투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싸잡아 욕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의 모습은 어떤 말로도 설명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박근혜 캠프에서 일하다가 공천과 입각 등에서 부름을 받지 못해 섭섭해하는 점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베이스캠프까지 옮기는 것은 전혀 명분이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래도 정치 현실은 도덕 교과서만으로 설명할 수 없기에 '이상돈 카드' 검토 배경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난세의 효웅(梟雄) 조조는 명분과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만으로 사람을 뽑기 위해 노력했다. 박 원내대표도 내심 이런 생각으로 고심 끝에 '이상돈 카드'를 꺼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의회민주주의 정치는 삼국지 상황과는 완전히 다르다. 국민 여론과 선거에 의해 정당이 평가받기 때문에 최소한의 명분과 모양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그같은 카드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한다. 야당 내부에서 반발 기류가 강하기 때문에 이상돈 카드의 실현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상돈 카드는 명분과 실현 조건 모두 갖추지 못했다. 오히려 당내의 계파 갈등만 더 확산시키면서 박 원내대표의 입지마저 더 어렵게 만들었다.

기본에서 벗어난 '꼼수 카드'는 안 꺼내는 것보다도 못한 불행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폴리페서(정치(politics)와 대학교수(professor)를 합성한 조어)란 말에 좋지 않은 이미지가 더 오버랩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 교수가 지향했던 것이 '권력'이나 '자리'가 아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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