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인사이드] 새정치민주연합이 사는 길
최용식 소장 "중간 지대 선점해야"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정치경제평론가)
※ 편집자주 = 이번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진로와 관련해 '중도선점론'을 주장하는 최용식 소장의 기고문을 기재합니다. 데일리한국은 우리 사회의 토론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이 글에 대한 반론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야당이 건실해야 여당도 정치를 잘한다는 것은 세계사적인 경험이다. 여당이 잘못하면 국민의 가혹한 심판을 받아야 하고 정권도 교체돼야 하는데, 야당이 부실하면 이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아니, 국민은 기댈 곳을 잃고 절망한다. 그러면 정치 불신이 커지고 냉소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며, 나라의 미래는 물론이고 현재마저 더욱 어두워진다. 국민의 절망감이 폭발하면 사회적 소요나 변혁이 일어나기도 한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새정치민주연합의 김한길 상임고문, 안철수 상임고문, 박영선 원내대표, 문재인 의원. 사진=데일리한국DB
새정치민주연합을 보노라면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나아갈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다.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당원은 절망하고 국민은 기대마저 접었다. 당원 참여는 사라져가고 국민 지지율은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어떻게 해야 그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반성이 없으면 실패는 거듭된다

새정치연합의 가장 큰 문제점은 패배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은 새정치연합의 반성과 분발을 간절히 바랐다. 그동안 새정치연합은 패배를 거듭했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도 패배했고, 지방선거에서도 사실상 패배했으며, 최근 국회의원 재보선에선 참패했다.

그럼 당시의 국민 여론은 어땠을까? 그 모든 선거 직전의 여론은 새정치연합에 절대적으로 우세했다. 2012년 총선 때는 김성식 전 의원 등이 탈당할 정도로 당시 새누리당에 대한 국민여론은 나빴다. 지난 대선 직전에는 국민의 절대 다수가 정권교체를 원했었다. 6.4 지방선거 때와 7.30 보궐선거 때는 세월호 참사가 터져 집권당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나빴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새정치연합은 패배를 거듭했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선거 패배를 거듭했다면 뼈를 깎는 반성을 해야 하고, 승리의 길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했지만, 새정치연합은 그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이미 실패했던 야권 연대라는 정치공학적 잔재주만 지속적으로 도모했을 따름이다. 국민을 감동시킬 비전과 그 비전을 뒷받침할 정책을 개발하는 데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현실을 타개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역사에서라도 교훈을 얻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했지만, 이런 노력도 없었다. 그런 노력들은 피와 땀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진보가 우로 가면 승리했고, 보수가 좌로 가면 승리했다

미국 민주당도 우리나라 새정치연합처럼 선거 연패의 늪에 빠진 적이 있었다. 1980년 민주당 소속의 카터 대통령이 물러난 뒤로는 미국 민주당은 대통령선거는 물론이고 상원과 하원 중간선거 그리고 주지사 선거 등에서 1990년대 초까지 패배를 거듭했다. 미국 공화당이 복지 등의 진보적인 정책들을 선점하자, 민주당은 ‘더 좌로, 더욱 좌로’를 외쳤다. 그 뒤부터 연전연패의 늪에 빠져들었다. 진짜로 이것이 연패의 결정적 원인이었을까? 이런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1896년 대선에서 윌리엄 브라이언은 ‘더 좌로’를 외치며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 인민당이 대선 후보를 포기할 정도로 진보적인 색채가 강했다. 당시는 대불황이 끝나지 않았던 때라 집권당인 공화당이 절대적으로 불리했으나, 결과는 민주당의 패배였다. 그는 1900년과 1908년 대선에서도 민주당 후보로 선출돼 ‘더욱 좌로’를 외쳤으나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1912년 대선에서 민주당은 겨우 승리했지만, 그 이유는 공화당의 내분이 격화되어 분당 사태가 터졌기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 민주당이 연패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념적 중간 지대의 지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도적인 유권자들은 민주당을 떠난 뒤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세계사의 사례들을 보면 보수가 좌로 가면 아무리 불리한 선거에서도 승리하곤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미국의 닉슨 전 대통령을 들 수 있다. 공화당 소속이었던 그는 복지 정책 등을 선점하여 불리하다던 선거를 역전시켰다.

반면에 진보가 우로 가면 아무리 불리한 선거에서도 승리하곤 했다. 대표적 사례로는 미국의 클린턴과 영국의 블레어를 들 수 있다. 클린턴은 민주당의 전통적인 노선을 외면하고 ‘재정 적자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당선됐다. 블레어는 '배신자' 소리를 들어가며 ‘제3의 길’을 내세워 승리했다. 한마디로 이념적 중간 지대를 어느 당이 선점하느냐가 선거 결과를 좌우했던 것이다.

요즘 새정치연합에서는 ‘더욱 좌로’라는 목소리만 크게 들릴 뿐이다. 선거 때마다 내세우는 공약은 오직 복지뿐이다. 심지어 득표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공약마저 횡행했다. ‘의료보험 확대’는 그런 대표적인 공약이다. 의료보험 확대의 혜택을 받을 국민은 수십만 명에 불과하지만, 의료보험료를 더 많이 내야하는 국민은 3,000만 명을 훨씬 넘는다는 사실은 외면했다. 의료보험료가 세금보다 훨씬 더 크고, 서민들에게는 이게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현실도 무시했다. 그러니 선거를 연패할 수밖에.

복지는 목적이고 경제성장은 수단이다

물론 복지는 정치의 목적이다. 하지만 훌륭한 목적일수록 효율적인 수단의 뒷받침을 받아야 한다. 돈을 잘 쓰고 잘 살기 위해서는 돈을 잘 벌어야 한다. 돈을 잘 쓰는 것은 목적이지만, 돈을 잘 버는 수단을 먼저 강구하지 않으면 파산하고 만다. 국가경영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이 복지 혜택을 더 많이 누리게 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이라는 수단을 먼저 강구해야 한다. 그래야 복지를 위한 재정수입이 늘어난다. 세계사적으로 성장이 뒷받침하지 못한 복지 확대는 파국을 초래하곤 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경제 성장을 죄악시한다. 이래서야 어찌 새정치연합에 희망이 있겠는가!

나는 늦은 시간에 점심 식사를 하곤 한다. 식당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의 얘기를 듣기 위해서이다. 버스나 전철을 탔을 때는 종종 옆사람에게 얘기를 건다. 그들의 얘기는 한결 같다. 그 중 하나는 ‘먹고사는 게 점점 힘들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불안해서 못 살겠다’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이런 서민들의 목소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불쌍한 너희를 돌봐주겠다’는 지독한 오만이 묻어날 뿐이다. 정치인이 자신감을 보이면 민초는 추종하지만, 오만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에 민심은 등을 돌린다. 새정치연합은 ‘유모 국가’를 내세워 현혹하지만, 이런 것에 속을 국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경제를 살려내야 비로소 먹고사는 일이 해결되고 일자리도 충분히 만들어지며, 이를 위해서는 국민과 기업과 정부가 함께 피땀을 흘려야 한다’고 말하면 새정치연합의 높은 분들은 흔히 외면한다. 하지만 민초들은 ‘그런 지도자가 어디 없느냐?’고 되묻는다. 경제를 살려내는 일처럼 ‘소중한 것은 피땀을 흘려야 비로소 얻어진다’는 것을 민초들은 육감적으로 알고 있다.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시켜야 국민의 불안 심리가 근원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고 말하면 민초들은 고개를 주억거린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이런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한다. 이게 새정치연합의 현주소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국민이 어디를 가려워하고 어디를 아파하는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국민을 감동시킬 국가경영의 비전과 그 비전을 성사시킬 정책들을 발굴해야 한다. 그런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희망이라도 갖지 않겠는가!

■최용식 소장 프로필

전남대 정치외교학과-한전산업 감사-21세기경제학연구소 소장(현) 새빛인베스트먼트 리서치센터장(현)
*최 소장은 2002년 노무현 대통령후보 당시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공약을 적극 건의했으며, 참여정부 출범 이후 노 대통령과 면담해 경제정책 조정 필요성을 거론했다.

[반론 기고] 야권은 집토끼 먼저 결집해야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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