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샘플러로 다양한 술 종류별로 맛보고 개인의 취향 발견

'핫플레이스' 이태원에서 즐기는 맥주·약주·막걸리 샘플러

크래프트웍스 탭하우스는 7가지 맥주를 작은 잔에 따라 한꺼번에 제공하는 맥주 샘플러를 팔고 있다. 사진=크래프트웍스 탭하우스

[데일리한국 황혜진 기자] "내 입맛에 딱 맞아 즐겨 마시고 싶은 술을 찾아라!" 초보자들은 자신에게 맞는 술을 찾아볼 수 있는, 애주가들은 다양한 술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술 샘플러’를 내놓는 집들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샘플러’(sampler)는 원래 음악 작품의 샘플 모음집이라는 뜻이었다. 레스토랑들은 다양한 메뉴의 음식을 한 접시에 제공하는 음식에 샘플러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했다. 이후 적게는 4가지, 많게는 10가지 종류의 술을 작은 잔에 따라 한꺼번에 제공하는 술 샘플러도 생겨났다.

경리단길, 우사단길, 보석길, 해방촌 등 골목골목의 아기자기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로 최근 핫플레이스의 최강자로 손꼽히는 이태원에는 술 샘플러를 제공하는 술집들이 많다. 맥주 샘플러를 제공하는 가게들의 수가 가장 많은데 약주와 소주, 막걸리를 샘플러로 내놓는 곳들까지 있어서 다양한 주류 샘플러를 맛볼 수 있다. 맛과 향이 다른 술들을 종류별로 시음해볼 수 있어 좋고, 안주까지 맛있어 기분 좋게 계산대로 향하게 만드는 이태원 주점 몇 곳을 찾아가봤다.

전통 증류식 소주 샘플러와 약주 샘플러, 우사단로 '아오이 소라'

우선 가게 이름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가게 이름이 일본 유명 AV 배우의 이름 ‘아오이 소라’이기 때문이다. ‘아오이 소라’는 일본어로 '푸른 하늘'이라는 뜻이기도 한데, 이 주점은 하늘이 푸른 대낮에 술을 마신다는 이른바 낮술 콘셉트를 내세우고 있다. 평소 낮술을 즐겨 마시던 플로리스트 소라 씨와 그래픽 디자이너 홍랑 씨가 자신들의 취향을 현실화한 곳이다. 월·화·수요일에는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낮술만을 팔고 목·금·토요일에는 오후 2시부터 새벽 2시까지 운영한다.

이태원 우사단길에 위치한 낮술 콘셉트 술집 ‘아오이 소라’. 사진=황혜진 기자

이태원 우사단길에 위치한 ‘아오이 소라’는 미처 가게에 도착하기 전부터 우사단길 특유의 빈티지한 분위기로 술맛을 끌어올린다. 이슬람사원에서 도깨비시장까지 이어지는 우사단로 10길에는 젊은 아티스트들의 작업실, 구멍가게 같은 카페와 술집이 오래된 주택들의 1층에 자리잡고 있다. ‘아오이 소라’의 두 대표는 가게 안팎으로 수시로 드나들며 건너가게 주인들이나 동네 주민들과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한가롭고 정감 있는 분위기에 취해 술맛은 배가 된다.

‘아오이소라’의 약주 샘플러를 주문하면 약주 3종과 떠먹는 막걸리 이화주를 맛볼 수 있다. 사진=황혜진 기자

‘아오이 소라’는 와인과 칵테일, 소주와 약주 등 40여 종의 다양한 주류 리스트를 갖추고 있다. ‘아오이 샘플러’라는 이름으로 소주 샘플러와 약주 샘플러를 메뉴에 올려놓았다. 소주 샘플러는 알코올 도수 18도에서 41도까지, 총 4종의 소주를 제공한다. 대중적으로 많이 마시는 희석식 소주가 아닌 우리나라 전통 증류식 소주로 구성되어 있어 깔끔한 뒷맛과 은은한 향이 깊은 맛을 더한다. 약주 샘플러는 약주 3종과 함께 떠먹는 막걸리인 이화주를 제공한다. 청주라고도 불리는 약주는 탁주인 막걸리를 걸러내고 난 맑은 술이다. 입에 머금는 순간 과일향이 가득 차는데 술을 넘기고 나서는 향긋한 곡물향이 입 안에 그대로 남아 그 맛이 일품이다.

안주는 해산물 안주가 주를 이룬다. 매일 아침 장을 봐 와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최소한의 양념만 한다. 가격이 조금 높은 편이지만 그만큼 맛이 있기 때문에 술안주가 아니라 맛있는 요리를 잘 먹었다는 생각으로 가게 문을 나서게 하는 집이다.

7가지 맥주를 한번에, 이태원로 '크래프트웍스 탭하우스'

예전에는 맥주를 사기 위해 슈퍼에 가면 국산 맥주 두세 가지밖에 없었지만 요즘에는 마트에 가면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수입 맥주를 만날 수 있다. 맛과 빛깔, 바디감 모두 천차만별이다. 제조 방식이나 재료의 비율에 따라 맥주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는 것이다.

이태원에 위치한 ‘크래프트웍스 탭하우스’. 사진=크래프트웍스 탭하우스

맥주의 종류는 크게 라거와 에일 두 가지로 나뉜다. 기존의 국내 맥주들은 대부분이 청량감이 크고 황금빛을 띄는 라거다. 라거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에일은 탄산이 적은 대신 맛과 향, 색이 진해 깊은 맛을 내는데 ‘호가든’이나 ‘기네스’ 같은 맥주가 에일에 해당된다. 라거와 에일도 다크 라거나 필스너, 페일 에일이나 스타우트 같은 하위 종류가 많아 각각 10여개 종으로 다시 나뉜다.

라거와 에일을 다양하게 구성한 7가지 맥주를 샘플러로 내놓는 집이 있다. 이태원 중심가에 위치한 ‘크래프트웍스 탭하우스’다. ‘크래프트웍스 탭하우스’는 한국이 좋아 14년째 서울에 살고 있는 캐나다인이 운영한다. 그의 한국 사랑을 대변하듯 맥주마다 우리나라의 명산 이름이 붙어있다. 청량하고 가벼운 바디감으로 산뜻하게 즐길 수 있는 ‘남산 필스너’, 스모크 향이 진하고 목 넘김이 부드러운 ‘금강산 다크 에일’은 이 집의 인기 맥주다. ‘한라산 골든 에일’은 씁쓸하고 구수하면서도 끝맛은 달콤하다. 이 밖에도 바나나 향이 나는 상쾌한 밀맥 ‘백두산 헤페바이젠’, 에일이지만 라거처럼 황금색을 띠는 ‘관악산 퀼쉬’, 이름은 귀엽지만 깊은 맛을 내는 ‘지리산 반달곰 IPA’ 등이 메뉴에 올라 있다.

‘크래프트웍스 탭하우스’의 모든 맥주는 가평에 위치한 소규모 맥주 양조장 ‘카파 브루어리’에서 가져온 크래프트 맥주다. 크래프트 맥주는 소규모 양조장에서 직접 제조한 품질 좋은 독립 맥주를 뜻하는데 ‘카파 브루어리’는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수돗물이 아닌 지하수로 맥주를 만든다. 맛있는 술을 만드는 데 필수인 물맛을 제대로 살려내는 것이다.

팔도 생막걸리 30여 종이 한자리에, 해방촌 '다모토리ㅎ'

녹사평역 2번 출구로 나와 200m 정도 걷다보면 남산 밑에 자리한 언덕 마을인 해방촌의 입구를 알리는 마을 간판이 나타난다. 해방촌은 1945년 광복을 맞아 해외에서 돌아온 동포들과 한국전쟁으로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정착하며 형성된 마을이다. 실향민들의 애환의 흔적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지만 해방촌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모토리ㅎ’는 그런 해방촌에 어울리는 술집이다. 서민의 술, 막걸리 전문 주점이기 때문이다.

용산구 해방촌에 위치한 막걸리 전문 주점 ‘다모토리ㅎ’는 전국 팔도에서 공수해온 30여 종의 생막걸리를 팔고 있다. 사진=황혜진 기자

다모토리는 '큰 잔으로 소주를 마시는 일. 또는 파는 장소‘를 뜻하는 순수 우리말인데 이름과는 다르게 이 집의 소주는 증류식 소주 한 가지밖에 없다. 대신 전국 팔도에서 올라온 30여종의 자연 발효 생 막걸리를 갖추고 있어 막걸리 마니아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다모토리ㅎ’에서 판매하는 30여 종의 막걸리 중 5가지를 골라 막걸리 샘플러로 주문할 수 있다. 5가지 샘플러의 가격은 3000원. 사진=황혜진 기자

메뉴판을 받고 이렇게 많은 종류의 막걸리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초보자라면 막걸리 샘플러를 꼭 맛봐야 한다. 메뉴판에 있는 모든 막걸리 중 5가지를 마음대로 골라 주문하면 된다. 메뉴판에 지역별로 막걸리의 상세한 맛이 정리돼 있다.또 만화 ‘식객’의 허영만 작가가 극찬한 막걸리,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즐겨 마셨던 막걸리 등 막걸리에 얽힌 일화들도 소개되어 있어서 술 고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종류가 너무 많아 무엇을 먹어야 할지 정하기 어렵다면 매주 새롭게 선정되는 베스트 막걸리를 주문하면 된다.

‘다모토리ㅎ’의 모든 안주는 주문하는 동시에 요리가 시작되기 때문에 안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는 편이다. 하지만 먼저 나온 막걸리 샘플러를 맛보며 막걸리의 맛과 빛깔이 얼마나 다채로울 수 있는지 감탄하기도 하고, 또 어떤 막걸리를 병으로 시켜 본격적으로 마실 것인지 즐거운 고민을 하다보면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요리가 나오고, 목 넘김이 부드러운 막걸리에 맛 좋은 안주를 함께하다 보면 분위기도 얼근하게 무르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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